화해보다 중요한 건 네 마음이야.
저학년 교실에서 어린이들이 화해하는 과정은 굉장히 깔끔한 편이다. 두 어린이 이상이 의견 충돌 등으로 다툰다. 이후 한 친구가 자기 잘못을 뉘우치고는 혹은 선생님께 꾸지람을 듣고는 사과를 한다. 어디서 배운 건지 모르겠으나 매우 신기한 것은 어린이들이 사과하는 태도. 꼭 상대방의 어깨를 두 번 정도 치며 말한다. "미안해." 그러면 그 사과를 받은 상대방 거의 대부분은 이렇게 말한다. "괜찮아."
작년 어느 날, 교실에서 ㅅ이 나에게 뭔가를 제출하려고 오던 중이었다. ㄱ이 다리를 책상과 책상 통로 사이로 뻗었다. ㄱ의 평소 태도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일부러 그런 것은 아니다. 의도치 않게 절묘한 시점에 다리를 뻗어버린 것. 그 다리에 걸린 ㅅ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미안해하던 ㄱ이 어쩔 줄 몰라 하기에 "이럴 땐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하는 거야."라고 알려줬다. (저학년 중에는 표현이 서툰 어린이들이 더러 있다.)
로봇 같은 어투로 "미안해." 하는 ㄱ의 말에 "괜찮아."하고 말하는 ㅅ. 그러나 표정은 전혀 괜찮지 않아 보인다. 거의 울 것 같은 표정으로 괜찮다 한다. 넘어졌는데, 그래서 다칠 뻔했는데 괜찮을 리가 있는가. 다만, 친구가 사과를 하면 받아들이는 거야 하고 어른들로부터 교육받았기에 "괜찮아."하고 절로 나온 말인 것.
나는 어린이들이 그럴 때마다 마음이 아프다. 어째서 무조건 괜찮다고 해야 하는 걸까? 정작 그걸 가르쳐 준 어른 일부는 괜찮지 않으면 오히려 날을 세우고 상대를 비난하며 삿대질을 일삼는다. 그러나 그들은 어린이들에게는 강요한다. 사람이 미안하다 사과를 하면 괜찮다고 말해줘야 한다고. 그러나 나는 다른 생각이다. 괜찮지 않은데 왜 괜찮다고 말해줘야 하나. 어째서 내 감정을 살피기 전에 왜 사과한 사람의 감정을 먼저 챙겨줘야 하나.
그래서 ㅅ에게 말했다.
"괜찮지 않으면 지금 당장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대신에 네 감정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말하렴. '나 지금 다칠 뻔해서 매우 놀라고 속상했어. 앞으로는 네가 주위에 누가 오는지 보고 행동하면 좋겠어.'라고."
그리고는 반 전체 학생들에게도 말했다.
"괜찮지 않으면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돼. 대신에 너희들의 감정을 화내지 않고도 솔직하게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보면 좋겠다. 지금 어떤 마음인지 드러내지 않고 그저 괜찮다고만 하면, 똑같은 일을 또 당할지도 몰라. 그러니 괜찮지 않은 일에는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도 괜찮아. 괜찮다고 말하지 않는 걸 미안해하지 마. 대신 나중에 시간이 지나서 마음이 진짜 괜찮아지면, 그때 사과한 친구한테 가서 '나 이제 괜찮아.'하고 말해주면 돼."
이후로는 학생들이 다른 친구가 사과를 하면 "괜찮아." 하고 말하기도 하고, "괜찮아. 하지만 다음엔 주의를 해주면 좋겠어." 또는 "알겠어. 나 지금은 화가 많이 나. (또는 속상해.) 나중에 괜찮아지면 말해줄게." 다양한 반응이 나온다. 그러나 열에 일고여덟은 나중에라도 "괜찮아."라고 말한다. 한 번은 괜찮지 않을 것 같은 상황에도 괜찮다고 하기에 따로 물어봤더니 정말 괜찮아서 괜찮다고 얘기한 거란다. 다행이다.
나는 믿는다. 학생들이 하는 작은 표현 하나하나가 쌓이고 쌓여 자기감정을 잘 돌보는 사람으로 자라게 할지, 자기감정은 물론 타인의 감정까지 헤아리지 못하는 괴물로 자라게 할지를 결정한다고. 그래서 교직 기간 동안 내가 만나는 어린이들이 자기감정을 잘 돌볼 수 있도록 돕고 싶다.
*사족
괜찮지 않다고 말하면 지금 당장 화해는 일어나지 않는 것 같아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정말로 시간이 지나서 스스로 분이 풀린 어린이들은 (내가 말하지 않아도) 사과한 친구에게 가서 "나 이제 괜찮아."라고 말한다. 괜찮다고 말하지 않아서 혹시나 그 친구가 속상해하지는 않을까 싶은 미안한 감정에 빨리 전하고 싶었던 건지, 정말로 본인의 마음을 제대로 알리고 싶어서였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꼭 괜찮다고 말해준다. 그리고 상대는 말한다. "아, 다행이다. 아까 내가 정말 미안해. "한다. 그중 몇몇은 잊어버리고 있는 표정 같아 보이기도 했지만..
동화 같은 이야기처럼 들릴지 몰라도, 2학년 어린이들은 그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