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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린플러그 Jun 05. 2022

두려움1. 그 너머엔 뭐가 있을까?

맞닥뜨리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이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한 손에는 튜브를 끼고 정말 신나게 수영장에 놀러 갔다. 튜브에 내 몸을 띄워 둥둥 떠있는 게 어찌나 좋던지. 아래로 찬 물이 있는데도 포근하기까지 했다. 그러다 다리 한쪽이 가려웠던 것 같다. 튜브 위에서 오른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어? 어?" 갑자기 눈 앞이 파래진다. 아무리 어푸어푸 해도 내 몸이 뜨질 않는다. 몸이 자꾸만 가라앉는 것만 같은데 이상하게도 바닥에 다리가 닿질 않는다. 수영장 깊이가 어른 키 3배는 되는 것 같다. 너무 당황하고 놀라면 "악!" 소리도 나지 않는다. 마냥 팔만 허우적댈 뿐이다. 마침 어머니께서 나를 보셨나 보다. 내 손을 꽉 붙들고 나를 잡아당기신다. (어머니는 이렇게 내게 두 번이나 생명을 주셨다.) 그 후로 난 한가득 모여있는 물은 쳐다도 보지 않았다.


샤워할 때 따뜻한 물을 맞고 있으면 온 몸이 편안해지고 마음 또한 평화롭다. 이렇게나 물이 좋은데, 왜 수영장이나 바다는 무서운 걸까. 그렇다면 나는 물 자체가 무서운 게 아니라 웅덩이가 무서운 거구나 싶었다. 그걸 게으른 여름방학을 보내던 중 깨달았다. 방학이 시작되고 며칠을 스스로를 한심해하다 결심했다. 계속 이렇게 한심한 나로 지낼 수는 없다. 이번 방학을 내 두려움을 이겨보는 시간으로 만들어 버리자! 그리고 저녁 시간에 수영장을 다니기로 했다. 첫날부터 후회했다. 유아풀장에서 숨 참기를 하라는데 얼굴을 담그자마자 온 몸을 부르르 떨며 빼버렸다. 다른 사람들은 잘만 하는데, 나는 어찌 된 게 1초도 채 못 버티는가. 과연 내가 저 허리 깊이만 한 수영장에 몸을 담글 수 있겠는가. (그렇다! 내가 어릴 때 빠졌던 수영장은 여자 어른 허리만큼 오는 깊이였다!) 아득하기만 했다. 그래도 이왕 다니기로 한 것 꾸준히 다녔다. 어느새 나는 숨을 꽤 오래 참을 수 있게 되었고 코에 물이 들어가도 정신을 잃지 않을 경지까지 왔다. 더불어 자유형, 배영도 구사하게 되었다. 이제 나는 물과 꽤 친해졌다(고 생각했다).


정말 다채로운 경험을 안겨준 호주 여행 중 케언즈에서 다이빙 체험을 하기로 했다. 물에 대해 어느 정도 자신감으로 뿜뿜했던 나는 호기롭게 스쿠버다이빙에 도전해보기로 했다. 한참을 뱃멀미에 시달리다 마침내 체험다이빙 지점에 도착했다는 반가운 소식. 몸에 꽉 끼는 다이빙 옷을 어떻게든 끼워 입고 사닥다리를 타고 내려간다. 물색이 신비롭다며 감탄하기도 잠깐. 가볍게 가슴만 눌러주던 수영장과는 차원이 다른 압박감이다. '공기통을 메고는 있지만 이걸로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까? 손가락으로 X 표시를 하고 그냥 올라가 버릴까? 이제 사닥다리도 없이 전문가가 있는 더 아래쪽으로 헤엄쳐 가야 하는데 가고 싶지 않다. 어떻게 하지?' 하던 차에 내 동행은 이미 전문가 쪽으로 간 상황이다. 이렇게 두 가지 선택지만 있을 때 내가 항상 나에게 거는 마법의 주문을 다시 걸어본다. "네가 이 정도로 포기하면 앞으로 네가 원하는 일은 어떤 것도 할 수 없어. 그렇게 살래?" 이번에도 "아니! 해 보자!"라는 답과 함께 온 몸에 겁을 가득 먹은 상태로 전문가에게로 향했다.


체험 다이빙 동지끼리 팔짱을 꽉 끼고 (체험다이빙은 전문가에게 딱 붙어 이동해야 한다. 다이빙 교육을 받지 않았기에) 점점 아래로 내려가자 눈앞에는 상상하지 못했던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졌다. 한참을 망설이던 그때에는 옥색의 물빛과 함께 체험할 사람들만 보였는데. 나의 우격다짐과 같은 질문에 "응. 그렇게 살아도 돼."라는 답과 함께 사닥다리를 타고 익숙한 호흡의 세계로 다시 올라가 버렸다면 보지 못했을 세상이다. 찬란한 열대어와 아름다운 산호. 이렇게나 아름다운 세상이라니! 물을 더 이상 겁내지 않으려 수영 배우기를 잘했다. 무서웠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를 내어 한 걸음 내딛기를 잘했다. 내가 참 기특했다. 그리고 재다짐했다. 무서워도, 두려워도 맞닥뜨려 보자고. 겪어보지 않았기에 몰라서 겁나는 것일 수도 있다고. 용기 내면 이렇게 상상하지도 못했던 멋진 세상을 마주할 수도 있다고.


물속 경험이 정말로 환상적이었기에 나는 그 해 겨울 세부행을 택했다. 스쿠버 다이빙 자격증을 따는데 시간도, 비용도 가장 적게 든다기에. 결국 단 두 번의 다이빙으로 끝났고, 여전히 나는 심해는 무섭다. 그럼에도 누군가가 다이빙 여행을 제안한다면 "응!"하고 기꺼이 함께 갈 수 있다. 두려움, 그 너머에 뭐가 있는지 모르기에 일단은 해 보는 자가 되기로 했다.

오픈워터 다이빙 자격증 과정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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