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 이야기 #1.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
지난해, 어느 진 빠지는 수요일 아침이었다. 주차 후 교실에 들어오는 것도 정말 온 힘을 다해야 할 정도로. 교실에 아무도 없었다면 바닥에 매트를 깔고 드러누워 한잠 자고 싶을 정도로 피곤한 날. 그러나 문을 열고 들어온 교실에는 받아쓰기 문제지를 들고 공부하는 어린이들만 이미 일곱 명이다.(매주 수요일 아침에는 받아쓰기 시험을 쳤다.) 옹기종기 모여서 문제를 말한다. 아홉 살 나이에도 미간에 살짝 힘을 주며 골똘히 생각한다. "아!" 하더니 손가락에 온 힘을 주고 입으로 한 자 한 자 말하며 친구가 불러준 문제를 또박또박 받아쓴다. 나른하게 책상에 앉아서 아침부터 치열하게 사는 어린이들을 바라보며 생각한다. '대단한 열기네. 오늘은 받아쓰기 시험 안 치고 싶었는데, 쳐야겠구나.'
멍하니 어린이들이 열공하는 모습을 한참 바라보는데, 느닷없이 I 어린이가 이러는 것이 아닌가.
"뭐지, 이 기분은?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어."
사실 열공하는 어린이들 사이에 나 홀로 나태하게 앉아 멍하니 쳐다보는 것이 약간은 부끄럽기도 하고 소외된 것 같기도 했는데, 이 소리가 어찌나 반갑던지.
흐뭇하게 웃으며 "I야, 선생님도 지금 너와 같은 기분이야.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하고 대꾸하려는데, I와 함께 받아쓰기 공부를 하던 W가 선수를 친다.
"I야, 그건 게으름뱅이의 기분이야."
'엥, 게으름뱅이라고?'
어린이들 앞에서 게으름뱅이 교사로 보이고 싶지 않았던 나는 결국 I의 말에 호응하지 못했다. 대신 벌떡 일어나 교실을 한 바퀴 돌아보며 어린이들이 어떻게 공부하는지 둘러본 후 책상으로 돌아와 받아쓰기 문제 순서를 정했다. 이만하면 부지런해지고 있나 생각하며.
그때로 돌아가면 이제는 I에게 꼭 말해주고 싶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은 기분이 들 때가 있노라고, 그건 잘못된 기분이 아니라고, 그런 기분이 들면 아무것도 안 하면 된다고, 이상할 것 없다고. 받아쓰기 시험 점수는 너의 삶을 결정해주지 않지만, 네가 가진 그 기분과 감정은 너의 삶에 굉장한 영향을 끼치니 내면의 소리에 귀 기울여주는 네가 참 잘하고 있는 거라고.
그리고 W에게도 꼭 말해주고 싶다. 언제나 열심히 하는 너의 모습이 참 대견하고 기특했다고. 그런 네가 때로는 게으름뱅이의 기분을 만끽하는 여유를 충분히 가지면 좋겠다고. 그것이 삶을 더 충만하게 만들 수 있게 될 거라고. (사실 이건 나 스스로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기도 하다. 교사는 부지런해야만 한다는, 부지런하게 보여야만 한다는 압박감에서 벗어나 보는 건 어떨까?)
군더더기.
학교를 옮기고 3개월이 지났다. 지난해 어린이들이 여전히 그립다. 볼 수 없으니 더 그리워하나 싶기도 하다. 내일은 선생님 한 분께 이제는 3학년이 된 어린이들 사진 좀 보내주실 수 있냐고 부탁해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