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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Jul 01. 2022

올여름 수시로 고개가 떨어지는 것에 대해서

올여름은 온통 그립다. 서두를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그립다. 지나치게 그리운 바람에 수시로 당신의 얼굴을 그리게 된다. 한때 수시로 보고 싶었던 얼굴. 사랑했던 이의 이름을 지어다 며칠 먹었다는 시인처럼 수시로 지어먹었던 얼굴. 한껏 웃으면 볕이 드는 것 같았던 얼굴. 근래 도중에 덮어버린 책이 제법 되었는데 진부한 낱말들을 어색하게 늘어뜨린 문장들 때문이었다. 아니, 실은 그보다 뒷말을 길게 늘어뜨리는 말투가, 군데군데 박힌 낱말들이 당신이 자주 쓰던 말 같아서 나는 수시로 덮어야 했다.      


슬픔을 공부하는 평론가의 말을 빌려오면 상실과 과실은 함께 있다. 이 둘이 함께 있을 때 회한이라는 감정이 만들어진다.* 뉘우치고 한탄하는 감정. 지난겨울에는 당신을 떠나보냈고, 올봄엔 땅을 엎어 씨앗을 몇 줌 뿌렸지. 그리고 나는 앞선 몇몇 글에 적은 대로 초여름의 녹음을 보며 기억뿐인 당신의 얼굴을 떠올렸다. 농익은 과실을 수확해 먹으면서는 그때 그 계절의 오류를 곱씹었고. 평론가의 의견을 교과서처럼 학습하고 있는 나는 이별 노래를 찾아 수시로 트는 일을 회한의 과정으로 이해하게 되었다.      


당신을 끈질기게 쫓아다니는 부사와 당신의 관계를 곱씹는다. 부사는 형용사나 동사, 부사를 꾸며 문장을 실감 나게 만들지만 자칫하다가는 본 의미를 지운다, 고 누군가 말했었지. 당신이었던가. 표준국어대사전에서는 ‘수시로’라는 부사의 의미를 ‘아무 때나 늘’로 명기했다. 아무 때나 늘. 책을 읽다가, 동네를 걷다가, 담벼락에 솟은 풀을 바라보다가, 밥을 먹다가, 노래를 듣다가, 부사를 생각하다가. 이렇게 아무 때나 당신을 떠올리다 보면 나중엔 아무리 쥐어짜도 그리지 못할 정도로 당신의 얼굴이 지워지고 마는 걸까. 음, 그건 좀 피하고 싶다. 다만, 당신과 그 부사의 관계가 여름에 장마가 따라붙는 일관성 같은 걸 가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가슴이 미어터지는 것은 슬픔이나 회한이 가슴에 들어차 답답한 상태를 의미한다. 그런가. 그러고 보니 그리운 것을 그립다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고 호언하면서 답답한 표정을 짓게 되던 거, 조금은 알 것도 같다. 다음 여름도 답답했으면, 올여름의 나는 기도한다. 왜인지 고개가 무겁다.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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