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교준 Aug 03. 2022

예언

심리학을 공부한 적이 있다. 그중 어떤 개념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되었는데 ‘피그말리온 효과’가 그에 상응한다. 우리말로 자기 충족적 예언이라고 불리는 것. 한 조각가는 자신이 창조한 여인상을 사랑하게 되고, 그리스 여신은 그의 진심을 인정하여 여인상을 진짜 여인으로 만든다. 바라면 이루어진다. 나는 그때부터 그 용어를 곧잘 써먹는다.      


며칠간 장마가 끊이지 않았다. 작은 쪽창으로 처마가 보였고, 빗방울이 처마의 굴곡진 능선을 타고 늘어졌다. 동네 어르신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로는 저 처마 너머로 보이는 기와집이 동네에서 가장 유복한 집안이었다. 대대로 유지 역할을 했다고. 그런데 왜인지 그 집을 보고 있으면 섬이 떠올랐다. 넓은 부지의 담벼락부터 기와지붕까지가 하나의 맥을 이루는 웅장하지만 외딴섬. 가만히 보고 있으면 묘한 기시감에 나는 응당 그래야 하는 것처럼 고개를 갸웃거렸다.      


기와는 초가의 대체품으로 만들어진 건축 자재로써 반년에 한 번 지붕 갈이를 해야 하는 초가보다 수명이 월등히 길다. 제작 과정부터 적잖은 품이 들어 양반이나 부유층에서만 널리 쓰였다. 그 말은 기와를 올릴 만큼 살림이 넉넉하지 않았던 서민들은 굼벵이가 떨어지는 볏짚 아래를 벗어나지 못했다는 걸 의미한다. 너른 초가들 사이에 홀로 선 기와집의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이상하게도 나는 그 대목에서 당신과 나를 떠올렸다. 끼니를 걸러본 적 없다는 당신과 목 부근이 헤진 카라 셔츠 차림의 내가 나란히 서 있는 장면은 여전히 낯설었다. 그날, 내가 당신을 버리고 가난을 택했던 날에, 당신의 약지에 남은 하얀 줄이 사형선고를 받았던 날에, 나는 당신이 나를 영영 잊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름도 표정도 장면도 기억나지 않았으면 하고 빌었다.      


그 응답이었나. 며칠 전 당신이 다른 사람을 만난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진 속의 당신은 내가 잊고 있던 표정을 지었고, 여유가 있었다. 나는 다행이라고 여겼다. 잘된 일이라고. 이제 나는 내 삶을, 당신은 당신의 삶을 살면 되니까. 복잡할 건 없었다. 왜인지 호흡이 낯설어졌지만, 손이 저렸지만, 카라 셔츠를 버리고 싶었지만, 아무튼 그것은 여러모로 잘된 일이었다.     


빗소리가 둔탁하다. 곱절로 촘촘해진 비는 처마 너머 풍경을 통째로 삼켰다. 나는 미련하게도 그 시절을 화두에서 내리질 못한다. 자격지심 때문이었나. 당신이 말한 대로 당신은 정말 나만을 필요로 했고, 나는 그 말을 철저히 배격한 거였나. 내가 정말 외면하고 싶었던 건 당신이 아니라 당신의 배부른 외로움이었나. 두 눈을 감고 손을 모은다. 당신은 나를 잊었을 것이다. 아니,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이 있었다고 그리워했으면 좋겠다. 늘어난 카라를 보고 묘한 기시감에 어떤 표정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넉넉한 살림을 정리하다가도 불현듯 내 이름을 발음했으면 좋겠다. 나는 예언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어느 해 여름, 출구에서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