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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교준 Apr 01. 2023

옳다고 믿었던 것들을 곱씹어볼 때

[단편소설] 녹, 공현진을 읽고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글에는 다른 종류의 글보다 강한 힘이 있다. 한국 순수문학에 이끌리는 이유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성찰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대중문학과 차별점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아무튼 나는 오늘 그런 작품을 만났다. 2023 동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 <녹>이다. 


화자는 대학에서 시간 강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혼녀로서 남편에게 양육비를 받았다. 그러나 약속한 만큼 꾸준히 양육비가 들어오는 것은 아니었다. 화자는 그 상황에 스트레스를 받았고, 베이비시터의 고용비에 대해서도 덩달아 고심이 깊어졌다. 그때 요주의 인물 '녹'이 나타났다. 녹은 기존 베이비시터 비용의 절반만 받으면서도 자신이 일을 잘하겠단 제안을 건넸다. 화자는 처음부터 녹의 제안을 덥석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여차저차해서 둘의 인연은 고용주와 피고용주의 관계로 이어졌다.


그렇다고 모든 일이 술술 풀려가지만은 않았다. 녹은 시간이 지나며 자신의 아이인 '바잇'을 화자의 승인 없이 화자의 집으로 데려왔고, 화자의 자녀인 '태오'에게는 '너 왜 안 똑똑해' 등의 부정적인 말을 일삼았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태오도 녹도 사랑스럽게 웃고 바라보는 형태였지만 화자에게는 곱게 보이지 않았다. 그리고 녹의 자녀인 '바잇'은 태오를 은근 무시하는 태도로 대했다. 화자는 그러한 모습을 보면서 녹과 바잇이 미워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은 행동으로까지 이어지기에 이르렀다. 


그러한 일상들이 제법 지나고 사건이 발생했다. 바잇이 사고를 당해 생명을 달리 한 것이었다. 그 바탕에 화자의 잘못이 직접적으로 개입된 것은 아니었지만, 화자는 생각했다. 자신의 잘못이 아예 없지만은 않은 것 같다고. 그런 내용이 소설 자체에 드러나있지는 않다. 그러나 등장인물 각각의 입장을 곱씹고 대입해 보면 화자가 그 일을 온전히 자신에게서 떨어뜨려놓지는 않는다는 것을 어렴풋이나마 느낄 수 있다. 


가장 인상 깊은 부분은 끝에 있다. "말들이 멋대로 쏟아졌다. 비처럼. 내가 선 자리에서 물결쳤다. 태오는 으깬 감자를 좋아한다. 바잇은 좋아하지 않는다. 태오는 카레를 좋아한다. 바잇은 좋아하지 않는다. 녹이 삶은 감자를 부수고, 큰 솥에 카레를 끓인다. 카레가 조용히 끓는 동안 바잇은 태오를 미워한다."


끝에 있는 이 문단에서 나는 느꼈다. 내가 옳다고 믿는 것들이 오롯이 옳은 것은 아닐 수 있다. 내가 그렇다고 믿는 것이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내가 모르는 사이 누군가는 나로 인해 상처를 받고 있을 수 있다. 나는 완벽하지 않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니 겸손할 것. 누군가가 잠시 부족해 보일지라도 무시하지 말 것. 상대를 업신여기지 않을 것. 사람 대 사람으로 대할 것. 존중하고 좋아할 것이라고.


[신춘문예 2023/단편소설 당선작]녹|동아일보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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