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단상집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금교준 May 05. 2023

어느 초여름에 소나기

기껏해야 책 크기만 한 쪽창으로 빗소리가 들이친다. 나는 특별할 것 없는 초여름의 소나기를 이불을 덮은 채 듣는다. 가만히. 그러고는 불현듯 상기되는 것들을 상기한다.


돌이켜보면 각별한 것을 잃은 계절은 매번 겨울이었다. 그탓에 무슨 연유에서든 첫눈, 눈으로 덮인 골목, 두 쌍의 발자국, 크리스마스, 아무튼 겨울을 대표할만한 낱말들이 떠오르는 날이면 눈꼬리가 자꾸만 뭍으로 쳐졌다. 아래로, 더 아래로. 서글픈 눈빛. 초점을 잡지 못하는 눈빛. 어떤 얼굴을 애써 기억해 내려는 눈빛이 으레 그래야만 한다는 듯 지어지는 것이었다.


그 뒤로 자연히 따라붙는 것들도 있었다. 누군가 애용했던 향수내음, 춥다고 챙겼던 장갑 대신 맞잡았던 손의 온기 같은 것들. 이루어지진 않았지만 기어코 그렇게 될 거라며 주고받았던 모종의 미래들. 그들이 머리맡에 근접할 때마다 나는 그들을 양손으로 콱 붙잡듯 부러 곱씹었다. 그래야만 그동안 해소되지 못했던 감정들이 조금이라도 공감을 얻고 다시 쌓일 준비를 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문제는 서두부터 두서없이 꺼낸 이 내밀한 이야기로는 겨울도 아닌 초여름에, 함박눈이 아닌 소나기가 펑펑 내린 날에 내게 일어난 일을 설명할 수 없다는 것이다. 불현듯 당신이 기록된 글을 찾고, 당신의 얼굴을 눈앞으로 꺼내고, 당신의 냄새를 맡아보려는 시도를 왜 하고 있는지를 논리적으로 풀어낼 수 없다는 것이다. 물론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겠지만.


나는 한 번 더 시도해 보기로 한다. 두 눈을 감고 두 손을 맞잡는다. 온기를 가늠한다. 두 귀를 열고 하루 여분의 소리들을 밀고 들어오는 빗소리를 듣는다. 감긴 시야로 잠깐씩 비치는 실지렁이를 둘둘 뭉쳐 얼굴을 빚는다. 그러나 그것은 비정형의 덩어리로만 완성될 뿐 당신이라고는 도무지 표현할 수 없다. 


다시.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 생각한다. 이름, 그나마 기억하는 두 음절을 더 확실히 기억하기. 그 이름과 맺은 약속을 끝까지 이행하기. 적어도 노력하기. 마침내 다른 생각은 하지 않기로 한다. 


어느 초여름에, 소나기가 눈처럼 펑펑 내린 날에 나는 뭍으로 향한 눈빛으로 새삼 다짐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예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