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타이틀, 안정적인 생활 그리고 월급을 내려놓고선.
어제,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하반기에 1차에 합격했다는 메일을 받았다.
워홀 호소러는 지난 편의 첫 글인 자기소개 단어 중 하나였다. 나는 2018년 마음 먹었던 워킹홀리데이를 아직까지 가지 못한 3년차 직장인이다.
2015년 3월에 대학에 입학했고, 25살이던 2020년 2월에 졸업했다. 2017년에는 프랑스로 1년 간 교환학생을 다녀왔다. 20년 간 한국에서만 지내온 나에게 그 1년은 (그리고 언젠가 쓸 태국 배낭여행은) 꽤 자극적이고 새로운 경험이었나보다. 귀국을 준비하며 '난 워킹홀리데이로 다시 해외에 나올거야'라는 마음을 먹었으니까.
계획대로라면 2020년에 학교 졸업과 동시에 미국 인턴(J-1)을 갈 예정이었지만 코로나로 인해 모든 일정이 미뤄졌다. 마냥 기다릴 수는 없으니 아쉬운대로 국내 외국계 인턴이라도 하자 해서 지원했는데 붙었네? 인턴을 마치고는 정말 가려고 했는데, 출국 3개월 전까지 실업급여도 못타고 친구따라 대기업 알바나 도전해볼까 싶었는데 또 붙었네? 3개월 계약종료 되면 정말 가려고 했는데, 정규직 전환은 어떻냐네?
그렇게 과제를 잘 마무리하고 정규직 계약서에 싸인을 했다. 처음엔 가지 못했던 워홀에 대해서도 별 생각이 없었다. 취업이 힘들다던 시기에 운 좋게 과제로 정규직 자리를 잡았고, 어디가서 알량한 으스댐을 부릴 수 있는 회사였고, 월급이나 재택 같은 근무 조건도 나쁘지 않았으니까. 어차피 여러모로 규제가 많은 코로나 시기였으니 오히려 잘됐다 싶었다. 경력만 조금 쌓고 나가야지. 정말 나가야지. 그래, 모든 회사 생활이 즐겁고 업무 성장이 눈에 보이던 1년 차 까지만 하더라도.
2년 차에 접어들고 나는 알게 모르게 매너리즘에 빠졌다. 25일 아침이면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 자유로운 회사 분위기, 꽤 괜찮은 회사 동료들, 나쁘지 않게 잘 맞는 업무까지. 물론, 중간 중간 포지션 변화나 파트 이동으로 크고 작게 다시 열정에 불을 붙인 시기도 있었다. 손으로 매일 일기쓰는 걸 좋아했던 내가 노션(Notion)병에 걸려 모든 일정은 맥북에 정리했고, 그 일정은 모두 일과 관련된 일이었다. 친구는 나에게 '예전엔 소설이나 에세이더니 최근엔 맨날 업무 관련 책만 추천하네. 직장인 다됐다'라는 말을 했다. 이러는 사이 워킹홀리데이, 도전, 인생의 의미, 용기.. 이런 단어들은 멀어져갔다.
출근과 퇴근길에서 업무를 쳐내거나, 밤 늦게까지 기획서를 작성하고 카피를 마감하면서는 워킹홀리데이에 대한 욕구가 다시 피어났다가 졌다. 누구도 아닌 내가 나서서 내 자신에게 가면 안되는 이유를 술술 읊고 있었거든.
진짜 워킹홀리데이를 가겠다고?
그래, 가는 건 좋아. 근데 다녀와선? 다시 이만한 회사에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아?
가서 무슨 일을 할 건데? 네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일이야?
단순 서비스직하면 현타나 맞을 걸. 3~4년차가 이직 황금기고, 가장 발전할 수 있는 시기 아니야?
다녀오면 30살이잖아. 그 뒤에 계획은 있고?
일도 일이지만.. 집도 사고, 슬슬 정착도 해야할 시기 아닌가.
'3년을 채우면 안식달이 나오니 그때까지는 버티면서 다시 생각해보는거야.' 라는 생각으로 내 자신을 꾹꾹 누르고 있었다.
D-250, 안식달까지 남은 기간. 그리고 아일랜드 워킹홀리데이 하반기 신청이 떴다.
지금 붙어도 1년 안에만 출국하면 되는거네? 그럼 신청이라도 하고 보자. 어차피 쓴다고 다 붙는 것도 아닌 아일랜드잖아. 비자라도 받아 놓고 고민하는거야. 어차피 신청료도 얼마 안하네. 지오 어학당 끝나면 그때 결판도 정말 내야 하고. 발리 여행에서 정리했던 생각들과 직감을 믿자.
그리고 어제 이메일을 하나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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