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다음 스텝은 결혼과 출산이어야만 할까?
앞으로 내가 발행할 글에는 '대기업'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할 예정이다. 부끄럽고 창피하게도 내가 가진 타이틀과 소속 중 가장 내세울만한 거여서 그럴거다. 하지만 동시에 퇴사를 유발한 원인이자 역설적으로 망설이게 만드는 조건이니 이해해 주시라.
"이렇게 살아도 되는걸까?"
솔직히 말하면 그간 앞만 보며 열심히 달려와서 그런지 나는 이런 생각이 꽤 최근에서야 들었다.
전날 밤 11시에서야 귀가하고 다시 아침 8시에 출근하는 길이, 팀 크루들과 준비해간 안이 상위 조직장의 기분이나 취향 하나로 논리 없이 엎어지는 날들이, 깊게 고민할 시간 없이 햄스터가 쳇바퀴 돌듯 같은 업무가, 평일엔 출퇴근으로 피곤하단 이유로 개인적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주말로 미루고 그 주말은 다시 평일 출근을 위한 재충전의 시간이, 여러 동료들이 퇴사하고 그 자리를 새로운 나사나 못 바꾸듯 채우는 회사와 그럼에도 잘 굴러가는 날들이 반복되며.
"더 이상 1월이 기대되지 않는 삶은 싫어"
자칭타칭 파워 J. 나는 10월부터 다음 년도의 계획을 짠다. 1월~12월을 왼쪽에, 그 달마다 뭘 하면 좋을지 적는다.
이 회사를 다니기 까지의 나는 'Connecting the dots(과거의 일들이 모여 현재가 된다)'라는 말을 믿으며 하고 싶은 일이라면 우선 하고 봤다. 10대 때부터 꿈꿔왔던 잡지사 어시스턴트, 영화제 봉사활동, 좋아하는 의류 브랜드 알바, 유럽 1년 교환학생, 학보사 기자, 부전공, 배낭 여행 등.
지금의 나? 우선 캘린더를 켠다. 남은 연차를, 이어서 붙여서 쓰기 좋을만한 공휴일과 주말을 확인하고 '이때 여행이나 가야지. 연차 들어오자마자 등록하고, 그 쯔음 은근히 주간회의 때 던져야지.'. 끝. 새해가 더이상 기대되지 않는다. 작년에 살았던 그 날들이 또 반복, 또 반복 되겠지.
글을 쓰다보며 느끼는 건데 어떤 말을 하고 싶어 브런치를 켰는지 모르겠다. '이 회사를 다닌 게 내 인생의 유일한 자랑거리가 되면 어떡하지?'라는 두려움이 오히려 퇴사에 용기를 붙였다.
최근 어떤 분이 나에게 해준 조언도 기억에 남는다.
'그래도 꿈꿔왔던 일인데 한 번 해보기라도 할 걸' vs '그 좋은 대기업 뛰쳐나와서 하는 게 이런 몸고생이라니'. 인생을 살면서 어떤 후회든 문득 한 번씩 들텐데, '어떤 후회를 안고 살아야 그나마 덜 후회가 들까?'를 생각해 보라. 두 삶의 장단이 확실하고, 그 경험을 겪는 동안 영향을 받아 더 나은 나로 거듭나있다면 어떤 환경에 더 나를 노출시키고 싶은지 고민해보라.
퇴사 통보 일정이 다음주로 다가온 지금의 생각도 짧게 적으며 우선 이번 글을 마무리한다.
- 퇴사하고 나서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다(사실 내 성격상 이 등따신 회사 다니면서 사이드잡이다 뭐다 동시에 못(안)할듯)
- 냄비에서 익어가는 개구리가 되서는 안된다
- 이왕 회사를 다닐거라면 내 가치를 알아주는 회사를 가자(어차피 4년이면 이직할 때도 됐다. 최근에 팀장과 충돌이 있었고, 이 과정에서 정이 빠르게 떨어졌다곤 말 못함)
- 이 기회가 꿈만 같다면 잡자
- 내가 인생에서 중요시하는 가치를 우선순위에 따라 단단하게 정하자
- 30대를 앞둔 지금의 내가 2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10년 뒤에 또 반복하게 하지 말자
- 기쁨에 모험을 걸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