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듀서의 기억과 프로듀서의 욕망, 그리고 충실한 구현자로서의 아이돌
※ 이 글은 Bite.works에 기고되었습니다. 더 많은 음악 감상을 보고 싶다면 여기에 방문하시면 됩니다.
새벽에 이 뮤직비디오가 공개되었을 때 SNS에 흐르던 당혹감을 잊지 못한다. 이게 대체 무슨…? 무슨 뜻인지 모를 가사,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Bruce Lee’라는 단어, 다수 대 1의 전투까지 오마주 차원을 넘어 저작권료 지불해야 하는 거 아닌가 걱정되는 수준인데… 그래도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왜냐하면 NCT127이기 때문이다.
그간 NCT127의 디스코그래피는 <소방차>, <Cherry Bomb>, <Simon Says>까지 기존의 ‘노래’라는 단어가 담기에는 벅찬 음악들로 채워졌다. 이들의 음악은 케이팝 단골 소재인 사랑이나 성장, 꿈 같은 인간적인 감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음운을 맞추는 것 말고는 관심 없어 보이는 무의미한 가사와 송캠프 출신임이 여실히 드러나는 마이너하고 완성도 높은 비트가 이들의 트레이드 마크였다(괜히 요한 일렉트릭 바흐의 메쉬업 단골인 게 아니다). 분명히 한국 아이돌인데 한국에서 성공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어야지만 가능한 음악들만 줄창 들고 나왔다. 그래서 때로는 이들의 존재가 케이팝에 대한 거대한 패러디 같기도 했다.
<영웅(Kick it)>은 이들의 독특하다 못해 괴상하기까지 한 색채가 정점에 오른 곡이다. 주 소재인 이소룡은 1973년에 죽었다. NCT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멤버 태일이 1994년생이다. 이렇게까지 멤버들의 입김이 닿지 않았다는 게 명명백백하게 느껴지는 콘셉트도 잘 없을 것 같다. 하지만 아티스트는 영화 한 편 봤으면 다행일 50년 전 타국의 배우를 무대 위에서 충실하게 재현해낸다. 아마 그들보다 더 어릴 팬들은 “이거 <킬빌> 컨셉 아냐? 이소룡이 누군데?”라고 SNS에 쓴다. 영미권의 팬들에게 이소룡이 알 게 뭔가. 무국적에 가까운 K-POP에서 오랜만에 느껴지는 오리엔탈리즘을 색다르게 받아들이지 않을까. 실제로 이 노래는 빌보드 메인 차트에 2주 연속으로 진입하는 쾌거를 올렸다.
그렇다면 과연 대체 누가 이 노래를 완벽하게 이해할까? 아마 이소룡 시대에 창창한 20대 젊은이었던 SM의 이 모 프로듀서일 가능성이 높겠다. 그가 자신의 경험 어디에서 이소룡을 끄집어낼 생각을 했는지는 잘 모르겠다. 그걸 케이팝 무대 위에 이식하겠다는 상상도 어떻게 해낸 건지 모르겠다.
어쨌든 모든 건 결과로 말한다. 다들 당황하긴 했지만, NCT127은 이 노래로 커리어 하이를 기록했다. 이수만이 만들어낸 기이한 판이 이번에도 또 성공했다. 하여튼 이수만은 진짜 이상한 사람인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