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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an 28. 2022

맞으면서도 여자들이 집으로 돌아가는 이유를 알았다.

가정폭력 보호센터는 엄마를 보호해주지 못했다.

    아빠에게 맞은 날, 근처 호텔에서 하루를 보냈던 엄마는 다음 날 가정폭력 피해자를 위한 보호센터로 보내졌다. 가해자인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없는 보호센터에서 며칠을 보내던 엄마는 일정 기간 이상은 거기에서 머물 수 없으며 따라서 곧 퇴소해야 한다는 통보를 받는다. 퇴소 이유는 엄마의 직장이었다. 


    보호센터의 논리는 이랬다. 엄마가 직장이 있으면, 그 직장의 위치를 알고 있는 아빠가 엄마를 미행해 보호센터가 외부로 드러날 위험이 있었다. 만약 그렇게 된다면, 해당 센터에 머무르고 있는 다른 분들의 가해자들이 그 시설로 찾아올 위험이 높고, 따라서 사실상 센터의 운영이 중단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정리하자면, 엄마 하나때문에 보호센터의 문을 닫을 수는 없으니 이만 나가달라는 거였다. 만약 더 머무르고 싶다면, 아빠가 모르는 새 직장을 구하거나, 아니면 기존에 다니던 직장을 아예 그만두고 오라고 했다. 


    이 얘기를 전해듣자마자 어이가 없었다. 현실적으로 당장의 직장도 불안정한 50대인 엄마가, 지금과 비슷한 정도의 경제적 능력을 갖출만한 새 직장을 빠른 시간 내에 구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직장을 그만두게 되면, 정말로 엄마는 당장 살아갈 방법이 없는 경제적 무능력자가 되어버린다. 그러니까, 내 귀에는 보호센터의 논리가 이렇게 들렸다. "사회적, 경제적 지위를 모두 버리고 온다면 물리적으로 살려는 주겠다. 그렇게 하지못하겠다면, 가해자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라."


    물론 나라고 보호센터측의 입장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아니다. 내부의 한사람으로 인해 보호소의 위치가 드러나 그곳의 모든 사람들에게 피해가 갈 수 있고, 다른 피해자들의 가해자들로 인한 2차 피해까지 합친다면 사실상 시설이 존폐위기에 놓일 수도 있을 것이다. 보호시설의 또다른 피해자들을 위해서라도 그들도 최소한의 위험 요소만을 떠안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생각을 거듭할수록 이건 결국 재정적인 지원이 뒷받침된다면 해결된 문제라는 생각을 지울수가 없었다. 하나의 시설에 많은 사람들을 한꺼번에 수용하려다보니 생긴 문제이니까, 피해자에게 각자 거리가 떨어진 곳에 원룸을 구해줄수만 있다면 해결될 문제이다. 그렇게되면 만약 위치가 한군데가 드러나더라도 다른 피해자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을 수 있으며, 만약 가해자가 미행해 해당 원룸의 위치를 알아낸다고 하더라도 횟수 제한을 두고 조금 떨어진 거리에 있는 다른 집들로 옮길 수 있게 해주는 등 어느정도의 기간동안은 보호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된다면 보호센터의 여성들도 한동안은 직장을 유지할 수 있을 것이고, 적어도 적당한 직장을 알아보고 이직할 시간 정도는 벌 수 있을지도 모른다. 


    결국 직장을 그만둘수 없었던 엄마는 곧 보호센터에서 나와야했다. 엄마의 경우는 다행히도 친구분의 도움을 받아 한동안 지낼 곳을 구할 수 있었고, 아빠가 있는 집으로 돌아가지 않아도 되었다. 이 이야기를 하면서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여자들이 왜 그렇게 맞으면서도 집으로 기어들어가는지 이제야 알겠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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