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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Oct 06. 2022

자아 - 이별 후에 무엇을 하나요?

3일간의 하염없는 굶기와 울기의 반복

* 대화의 장에서 만든 대화 카드의 질문에 대한 진솔한 답변을 작성합니다. 



    사랑했던 사람이 있었다. 내 짧은 생애를 통틀어 사랑이란 단어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단 한 사람이 있다. 21살부터 25살까지, 4년을 함께했다. 나의 대학생활의, 성인이 되고 난 삶의 거의 모두를 함께 했던 사람이었다. 



    나는 사랑을 몰랐다. 정확히 말하자면, 애증이 아닌 조건 없는 사랑을 몰랐다. 내 어린 시절은 온통 검은 사랑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랬다. 집에서 나는 짐덩어리에 불과했다. 기준점에 닿지 못해 키우는 보람을 찾지 못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이기에 폭력의 그림자에 가리우게 둘 수 없는 존재가 나였다. 어느 날 너에게 "왜 나를 좋아해?"라고 묻자, 너는 생각에 잠겼다. 사실 그 대답이 잘 기억나진 않는다. 다만, 눈이 시리도록 깨끗한 너의 답에 참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던 장면이 스쳐 지나갈 뿐이다. 



    "대체 왜 너여야만 했는지 매일 다른 이유를 말해줄게"라는 가사를 좋아한단 나의 말에 너는 매일 나를 좋아하는 새로운 이유 하나씩을 더해주곤 했다. 우리 둘 모두가 자연스레 이 일과를 잊어버릴 때까지 어느 날엔 사소한 이유를, 또 다른 날엔 마음이 내려앉는 이유를 말해주었다. 때때로 나는 웃었고, 자주 나는 울었다. 잠겨 죽어도 좋으니 너는 물처럼 밀려오라고 했던가. 나는 너라는 바닷속에서야 숨을 쉬었다. 진부하지만 그래, 너는 나의 세상이었다. 한 치 앞이 보이지 않는 빽빽한 늪에서 살아온 나에게 오직 너만이 부드러운 햇살이 드는 바다였다. 내가 너라는 바닷속에서 잔잔히 헤엄 칠 동안, 너는 내 마음의 늪을 강한 파도로 씻어냈다. 그렇게 내 세상은 넓어져갔고, 나는 감정을 배웠다. 



    여느 연인들이 그렇듯이, 시작은 사소한 말다툼이었다. 반복된 싸움은 널 지치게 만들었고, 너는 나를 떠났다. 어느 정도 알고 있었다. 사실은 네가 나를 떠나 주기를 바랐다. 혼자서도 스스로를 지탱하며 살아보고 싶었다. '단단한 나'라는 환상에 빠져 있었다. 많이 성장했기에, 그 성장의 고통을 오롯이 혼자 감당해야 했던 너의 존재를 망각했다. 그렇게 네가 떠나간 순간, 끝없이 펼쳐질 것 같았던 나의 바다는 메말라버렸고, 나는 다시 늪으로 빨려 들어갔다. 



    3일간 하염없이 굶고 또 울었다. 마음이 뻥 뚫렸다는 흔한 노래 가사를 그때서야 이해했다. 혼자서는 서 있을 수 없었으며, 눈은 부어서 잘 떠지지도 않았다. 매달리는 나를 쳐낼 수 없었던 너는 나의 연락을 다 받아주었다. 매일 나의 안부를 묻고, 약을 먹었는지 확인했으며, 잘 자란 인사를 했다. 바뀐 것은 관계의 이름과 무너진 나의 마음뿐이었다. 그때서야 나는 내가 받은 사랑과 내가 배운 감정의 무게를 깨닫게 되었다. 너라는 바다 위에 둥둥 떠다니던 그 무게는 늪에선 내 등을 짓누르며 나를 가라앉혔다.



    굶고 울었던 시간이 3일이었던 이유는 하나다. 네가 3일 만에 나에게 돌아와 줬으니까. 네가 돌아오자마자 나는 빠르게 원래의 모습을 되찾아갔다. 하지만 모든 게 원래대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나는 이 비대칭적인 관계에 의문을 품기 시작해버렸고, 혼자서 스스로를 지탱하지 못하는 모습에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직감했다. 그렇게 이기적인 나는 또 다른 이별을 마음속으로 준비했다. 바다에서 걸어 나와 땅을 밟고 꽃을 심었다. 시간이 조금 더 흐르자 나무가 자라기 시작했다. 단단한 뿌리는 굳은 땅을 더 굳게 만들었고, 그 앞에 철썩거리는 파도 위로 그림자를 드리웠다. 어느새 그 나무에 꽃이 지고 열매가 열릴 시간이 되었다. 나는 너에게 안녕을 말했다.



    이기적인 나의 인사에 너는 빠르게 나를 단념했다. 나의 나무와 시들어가는 꽃과 그곳에 자리잡기 시작한 열매를 봐버렸기에 그랬을지도 모른다. 꽃비가 흩날리는 나무 아래에서 우리는 마지막 인사를 했다. 아름다운 이별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하지만 너의 입장에선 전혀 아니었다. 연리지로 자라지 못한 그 나무는 오직 나만의 것이었다. 너의 자리를 남겨두지 않은 채 꼭 맞게 자라 버린 나의 나무는 너를 바다 아래로 빠뜨렸다. 그곳에서 한동안 숨 막혀하던 너는 다른 먼 곳으로 시체처럼 둥둥 떠내려가며 멀어졌다. 



    미안해. 나는 새로운 이별을 할 때마다 너를 생각하며 새로운 나무를 심어. 너의 바다색을 닮은 이파리가 파랗게 돋을 때면 나는 더 강해져. 이 모든 게 너의 흔적이고, 너에게서 얻은 새로운 생명이야. 언젠가 이별의 순간이 아닌 새로운 사랑의 순간에 다정한 덩굴나무를 키워낼 수 있을까? 아직 나와 함께 엮여갈 나무를 키울 사랑을 찾지는 못했어. 어쩌면, 너를 닮은 푸른 나무만을 가득 키워내다가 언젠가 숲을 만들어낼지도 몰라. 그것도 나쁘지 않네. 나의 세상을 창조해줘서 고마워. 영원히 사랑해. 


- 네가 한눈에 알아본 Lily라는 닉네임을 여전히 쓰는 나로부터의 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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