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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Feb 10. 2022

민중의 지팡이는 내 앞에 선을 그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다는 게 그들의 답변이었다.

    아빠는 나에게 종종 협박 전화를 걸었다. 경제적 능력이 전혀 없던 아빠는 이혼하면 밥줄이 끊길 거라는 생각에 엄마를 설득해달라며 온갖 방법으로 나를 협박했다. 전화는 시도 때도 없이 이어졌다. 학교에서 수업을 들을 때도, 며칠 만에 겨우 잠을 청하려 할 때도 전화 벨소리는 끊길 줄을 몰랐다. 어느 날은 연락도 없이 불쑥 서울로 나를 찾아오기까지 했다. 엄마가 이혼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하자 그 정도는 더 심해졌다. 이러다 언젠가 우리 집에서 맞아 죽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보호해줄 장치가 필요했다. 


    경찰서에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법률 상담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방문했다. 거기엔 두 사람이 있었다. 여성 경찰관은 내 등장이 못마땅해 보이는 눈치였고, 그 눈빛에 당황해 여기에 들어와도 되는 것인지 확신이 서지 않는 나에게 남성 결찰관이 앉으라고 말했다. 왜 왔냐고 시큰둥하게 묻는 여성 경찰관의 말에 법률 상담을 받고 싶어서 왔다고 했다. 나는 가정 폭력의 피해자이고 이어지는 가해자의 협박에 대해 조치를 취할 수 있는 게 있을까 하고 여쭤보러 왔다고. 그간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와 엄마는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올 아빠에게 맞아 죽어도 왜 이상하지 않은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잠깐의 침묵 끝에 돌아온 답변은 지금 당장은 할 수 있는 것이 없으니 증거를 모으고 최대한 아빠를 피해 숨으라는 것이었다. 연락이 오면 녹음을 하고 문자가 오면 캡처를 해놓으라는 뻔한 정답만을 말해주었다. 미행을 하는 아빠를 미행당하는 엄마가 직접 발견하기 전까지는 직접적인 조치를 취할 수 없다고 했다. 아빠가 엄마를 미행해서 엄마가 탄 친구의 차종과 차 번호를 알아내 문자로 보낸 것을 증거로 제출해도 부족하단다. 이런 상황을 견디기 힘들면 휴대폰 번호를 바꾸고 이사를 가고 직장을 옮기고 학교를 떠나야 했다. 그러니까, 가해자가 아닌 피해자가 도망 다녀야 한다는 말이었다. 


    사실 어렴풋이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막상 말로 들으니 예상했던 것보다 더 슬펐다. 나를 위해 최선의 방안을 제시해주는 경찰관 앞에서 뭐라도 해달라고 떼를 쓸 수는 없어 입을 다문채 가만히 있었다. 정적을 깬 건 내가 이야기를 하는 내내 가만히 듣고 있던 여성 경찰관이었다. 부부의 연은 끊을 수 있어도 부모 자식 인연은 평생 가는 거라고, 내 마음대로 법적으로 끊을 수 있는 게 아니랬다. 그 사람이 꺼낸 첫마디에 마음 안에서 꾹꾹 눌러 담았던 눈물이 결국 밖으로 흘러나오고 말았다. 나라고 그걸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런 뻔한 말을 들으려고 경찰서까지 찾아간 것은 더더욱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방어할 최소한의 수단이 있는지 궁금했을 뿐이었다. 그러나 나에게 돌아온 것은 세상 물정 모르는 내가 답답하다는 눈빛과 내 사정은 어떻게 해결하려고 시도조차 할 수 없다는 말이었다.


     당신의 일이 아니라서 아무렇지 않게 내뱉을 수 있는 그 말이 나에겐 너무 날카롭고 아팠다. 낯선 장소에서 낯선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같잖은 연민의 시선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는 것 외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남자 경찰관이 계속 나에게 자신은 정말로 도와주고 싶지만 그럴 수 없어서 미안하다고 했다. 하지만 그 말은 내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나에게 잔인한 말을 퍼부었던 여자 경찰관이 뒤늦게 이 방에 들어온 다른 남자 경찰관과 나누는 이야기만 들렸다. "진술서를 쓰는 것도 아니고 확인 절차 받는 건데 왜 굳이 여경이 필요하냐, 요즘 성범죄가 예민한 사안이라고 신경 쓰라고 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까지 하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다, 그 피해자 여성이 너무 예민한 것 아니냐." 당신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을 듣기만 해도 눈물을 주체할 수 없는 나를 눈앞에 두고도 생판 모르는 남성에게 피해를 당한 여성에 대해 선입견 섞인 말을 하는 그 사람이 미웠다. 공기처럼 어디에나 실재하는 폭력 속에서 불안에 떨며 살아가는 여성들을 유난 떠는 사람들로 만들어버리는 그 사람이 미웠다. 그 사람이 여성청소년과 소속이라는 게 미웠다. 그 말을 하는 그 사람도 여성이라는 게 더 미웠다. 내가 이 상황을 타개할 만큼 힘 있는 사람이 아니란 게 분했다. 성공해야지, 이런 바보 같고 유치한 말만 머릿속을 맴돌 뿐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었다. 


    자신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며 다른 가족이나 친척은 있냐, 상담센터 같은 곳엔 가봤냐고 묻는 남자 경찰관에게 나는 외동이며 친척과는 남보다도 못한 사이고 이미 병원은 다니고 있다고 최대한 무심하게 대답했다. 몇 초 간의 침묵이 흐른 후 그 자리에 더 이상 있으면 안 될 것 같아 급하게 눈물을 닦고 누가 봐도 어색한 태도로 그 방을 빠져나왔다. 머리카락에 가려 양 옆이 보이지 않을 만큼 고개를 숙이고 경찰서 건물을 빠져나왔다. 더 이상 울지 않을 수 있다고 믿었는데 길가에서 꺽꺽거리며 울어버렸다.


    사회적으로, 제도적으로 내가 보호받을 수 없을 것이란 건 어느 정도 예상했던 바였다. 나는 아빠한테 맞았다고 경찰서에 신고한 적도 없고, 성인이 된 후에는 언어적이고 정서적인 폭력만을 받아왔을 뿐이니까. 이것도 폭력의 한 형태이지만 경찰서에서 담당하기엔 비교적 사소한 문제일 것임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무려 경찰서에서 모든 피해는 내가 고스란히 감당해야 한다는 말을 들을 줄은 몰랐다. 그럼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하지? 모든 것은 나의 개인적인 일로 남았다. 스스로 방법을 찾아내서 뭐라도 해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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