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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LY Jan 20. 2022

경찰에 아빠를 신고했다.

그리고 다시는 되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나는 도망쳤다. 교환학생은 정말 좋은 구실이었다. 학창 시절부터 꾸준히 이루고 싶었던 꿈인 동시에, 학업을 중단하지 않아도 되면서, 상대적으로 느긋한 생활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이런 나와는 달리 한국에 남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나의 엄마이다.


    나와 마찬가지로 엄마 역시 아빠의 피해자였다. 다른 친구들을 보며 이상적이고 정상적인 가정이 어떤 형태인지 알아가던 순간부터 나는 항상 엄마가 왜 이혼하지 않는지 궁금했었다. 아빠는 경제적 능력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며, 강박적으로 가족들의 생활을 통제했고, 조금이라도 마음에 들지 않으면 위협을 가하며 집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러댔으니까. 친구를 집에 데려와서 귤을 대접했다는 이유로 나에게 죽여버리겠다고 협박하는 아빠의 전화를 받고, 초등학생이었던 나는 엄마에게 왜 아빠와 같이 살아야 하는지 물었다. 엄마는 나를 위해서 아빠가 있는 정상적인 형태의 가정을 유지하고 싶다고 했다. 어린 나는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주변의 그 어떤 친구네 집보다 이상한 우리 집을 정상적으로 유지하기 위해서라니. 게다가 이게 겁에 질려 집에선 편안히 눕지도 못하던 나를 위한 것이라니. 하지만 가족의 형태를 지키는 것보다 우리가 느끼는 위협을 제거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논하기에 나는 너무 어렸고, 어설픈 논리와 겁에 질린 목소리가 뒤죽박죽 섞인 아이의 외침은 어른들에게 닿지 않았다. "너는 아빠가 쓸모없다고 생각하니?"로 시작해 "자식새끼 키워봐야 쓸모도 없으니 내다 버리든지 해야지"로 끝나는 아빠의 길고 긴 신세한탄과 협박을 듣게 되었을 뿐이었다.


    그렇게 딸을 위해 당신이 참고 사는 게 최선이라 여기던 엄마에게 변화가 생긴 것은 내가 교환학생으로 해외에서 몇 달을 지낼 시절이었다. 어느 날 엄마에게 전화가 걸려와서 하는 말이, 집 안에 아빠와 같이 있는 게 답답해서 도저히 견디지를 못하겠다는 것이었다. 하루 종일 집에만 있는 아빠가, 무능력에서 벗어나려 노력조차 하지 않는 아빠가 진절머리 나게 싫다고 했다. 매일같이 저녁을 먹고 나서 약속도 없이 집 앞 공원에 나와 몇 시간씩 멍하니 앉아있거나 유튜브를 본다고 했다. 그렇게 나와 엄마는 세 시간씩 전화를 했다. 나는 드디어 엄마가 아빠와 이혼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른이 된 나는 서투르게나마 엄마를 설득할 수 있었고, 우리의 긴 통화는 내가 한국으로 돌아오고 나서도 이어졌다.


    문제가 발생한 건 그즈음이었다. 어느 날 아빠는 나에게 연락도 없이 갑작스럽게 서울에 왔다며 나를 찾아왔다. 최근에 엄마가 수상하게 행동한다며, 엄마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 것 같다는 오해를 한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엄마와의 통화 기록을 보여주며 나와 전화를 한 것이며, 엄마는 집 바로 앞 공원에 가면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알려주었다. 그러나 꽤 예전부터 의처증 증상을 보이던 아빠는 나의 말을 전혀 믿지 않았다.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엄마를 미행하기 시작했다. 급기야는 엄마가 아닌 사람을 엄마로 착각하여 차 번호판을 찍고 쫓아가기까지 했다.


    이런 날들이 이어지던 어느 날, 엄마가 엄마의 친구분의 차에서 내리는 걸 보고 아빠는 엄마가 남의 차에서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화를 내기 시작했다. 엄마는 아빠가 화를 내도 자신은 떳떳하니 괜찮다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아빠의 태도가 심상치 않음을 느낀 나는 엄마에게 계속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의 시도 끝에 엄마가 전화를 받았고, 엄마는 갑자기 자신이 아빠를 오해했던 것 같다며 아빠랑 이야기를 더 나눌 것이라고 태도를 바꿨다. 엄마의 말이 너무 이상했고, 급하게 전화를 끊으려는 것이 이상해 나는 시간이 될 때 다시 연락을 달라고 부탁했다. 그렇게 몇 분이 지나고, 엄마에게서 다시 전화가 걸려왔다. "니 아빠한테 맞았어. 이가 부러진 것 같기도 하고... 잠시만, 니 아빠 들어온다 끊을게."


    엄마가 맞았다. 생각이 멈췄다. 눈물이 멈출 줄을 몰랐다. 엄마의 괜찮다는 말에 애써 부정했던 진실이 내 눈앞으로 들이닥쳤다. 엄마가 맞은 건 처음이 아니었다. 내가 수학여행을 떠나 며칠간 집을 비웠을 때, 학원에 다녀온 사이, 어린 시절 엄마가 나를 두고 집을 나가기 직전 엄마는 맞은 것이었다. 나는 어른이 되었고, 나 하나만으로도 벅찼던 삶을 핑계 삼아 외면했던 진실을 마주했고, 이전과는 다른 결과를 만들어내야 했다. 손가락을 덜덜 떨며 집에서 가장 가까운 경찰서에 전화를 걸었다.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아 횡설수설했다. 경찰관이 침착하게 내 말을 들어주었다. 한 번 출동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며 주소를 알려달라고 했다. 고맙다고 연신 인사를 했다. 엄마를 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혹시나 아빠가 막더라도 엄마를 데려와달라고 부탁했다. 그럴 수 있을까, 경찰이 그 정도까지 개입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전화를 끊고 엄마의 연락을 기다리는데 아빠 생각이 났다. 전화를 다시 걸었다. 아까 신고했던 사람인데 내가 신고한 건 비밀로 해줄 수 있냐고, 비겁하게 그렇게 부탁했다. 나도 똑같이 맞을까 봐, 보복을 당할까 봐 두려웠다. 경찰관은 안심하라며 절대로 말하지 않을 거라고 했다. 바보 같았다. 이런 상황에서 나의 안위만을 챙긴 것 같았다. 그 순간 나는 여전히 어른들의 뒤로, 엄마의 뒤로 숨는 아이에 불과했다.


    몇 분을 기다리자 경찰관에게서 다시 연락이 왔다. 엄마를 데리고 나왔고, 안전한 곳으로 데려다줬다고 말해주었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하나 더 전했다. 엄마가 이 일을 사건화 시키지 않기를 원한다고 했다. 경찰관은 엄마를 설득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며, 내일까지 얘기하면 사건화 할 수 있으니 엄마와 이야기를 잘 나눠보라고 했다. 그리고 마침내 엄마에게서 전화가 걸려왔다. 엄마는 자신은 이제 괜찮고, 사건화는 물론이고 이혼도 하지 않을 것이라 했다. 어쨌든 당신의 남편이자 나의 아빠인 사람이라며, 경제적 무능력자인 아빠를 내치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처사가 아니냐고 했다. 나는 아프고 정신없었을 엄마에게 화를 냈다. 아빠한테 맞고도 그런 생각이 드냐면서 큰 소리를 냈다. 그랬으면 안 됐다. 하지만 나도 너무 아팠다. 스스로 나의 아빠를 경찰에 신고하는 건 나에게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화를 하는 내내 가족을 저버려도 되는 걸까 하는 생각을 끊임없이 했고, 이대로 가족이 산산이 부서져 이전으로는 절대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에 힘겹게 신고를 한 것인데, 엄마는 다시 그 자리에 머무르려 하고 있었다. 힘겹게 내디딘 한 발을 다시 제자리로 돌릴 수는 없었다. 그 무엇보다 내가 이 상황을 다시 겪을 자신이 없었다.


    다음날이 되고, 다행히 엄마는 사건화를 하기로 결정했다. 경찰서에서 조사를 시작했고, 엄마는 보호를 위해 관련 여성 센터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보호받지 못했다. 엄마는 이 이후에도 몇 번이고 이혼을 하지 말까, 다시 사건화 시킨 걸 취소할 수 있을까에 대해 이야기했고, 아빠는 끊임없이 엄마를 말려달라고 부탁 혹은 협박을 하며 전화를 걸어왔다. 둘 중 누구도 나의 말을 들어주지 않았다. 나 혼자 그런 두 사람을 감당할 수는 없었다. 다시 한번 도망치고 싶었다. 그래서 또 도망쳤다. 이번에는 중도 휴학을 했다. 하루 종일 방 안에서 엄마와 아빠의 전화만을 받는 날들이 이어졌다. 이게 최선이라 믿으며 침대 위에서 몸을 웅크렸다. 그렇게 겨울이 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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