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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자로사 Sep 25. 2023

꽃동네

봉사활동, 8살 어린아이에게 인생을 알려주다.

내가 유치원 시절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추억이 있다. 모르는 사람이 많겠지만 꽃동네는 한 신부님이 설립한 충북 음성에 있는 사회복지시설이다.

천주교 신앙을 갖게 된 후 부모님을 따라 꽃동네에 종종 다녀왔다. 내 기억엔 오랜 기간 봉사를 한 건 아니지만 1-2년 동안 같은 신앙을 가진 사람들끼리 여러 차례 버스를 대절해서 갔던 것 같다. 꽃동네를 갈 땐 언제나 새벽같이 일어나 비몽사몽 부모님 손을 잡고 버스에 올라탔다. 가는 길 내내 꾸벅꾸벅 졸면서도 고사리 같은 손에 쥐어진 묵주알을 연신 굴려가며 묵주기도를 함께 했다. 그때는 그 길이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을 하러 가는지 몰랐다. 어린 마음엔 꽃동네 가는 길은 콧바람 쐬러 가는 소풍길이었다.



꽃동네에 가면 먼저 미사를 드리고 그곳에서 일손이 필요한 위치에서 봉사활동을 하곤 했다. 노인 분들이 계시는 곳에서 식사를 돕거나 시설을 청소하거나 세탁하는 일들... 봉사자들은 곳곳에서 기꺼이 땀 흘려가며 도움을 주었던 것 같다. 나는 엄마 옆에 졸졸 쫓아다니며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것들을 했다. 가끔은 그냥 가만히 있는 게 부모님 봉사에 도움이 될 때도 있었다. 그런 때는 부모님의 봉사활동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동생과 함께 앉아서 기다리거나 졸려서 자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린 내가 꽃동네에 갔을 때 몸이 불편하신 분들이 많았다. 그래서 건물 안에 들어가 그분들과 마주하는 게 무서웠을 때도 있었다.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분들, 전신마비 거나 일부 신체가 마비된 분들을 보는 게 조금은 힘든 나이여서 그런 감정을 갖기도 했던 것 같다. 하지만 부모님의 모습을 보며 금세 그분들 옆에서 말동무를 해드렸다. 꽃동네에서 살고 계신 분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표정이 어둡거나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단 한 명도 없었던 것 같다. 오히려 웃으며 본인 몸이 아프고 힘들고 불편해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고 있었다. 어떤 분은 자신의 신체가 뒤틀려 불편한데도 전신마비 상태인 친구를 위해서 수저에 밥을 떠서 입에 넣어주기도 했고 어떤 분은 친구의 입에 흐르는 침을 손수건으로 연신 닦아주기도 했다. 서로에게 기여해 주는 마음이 넘치는 분들로 가득했다. 사랑이 가득했다.



어느 날은 지루함에 어른들이 봉사활동 하는 건물 앞에 동생과 함께 나와 서 있는데 꼬마 여자 아이 한 명을 만난 기억이 있다. 해맑은 표정의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단발머리 아이는 꽃동네에 머물고 있는 아이였다. '안녕'하면서 어색한 인사를 나눴다. 그때 나는 그 아이의 한쪽에 집중하게 됐다. 한쪽 손의 손가락이 한 두 개 남고 다 잘려나간 상태였다. 어린 나는 단발머리 친구를 보며 태어나 복잡한 마음을 느꼈다. 태어나 처음 본 온전치 않은 손의 모습에 너무 놀라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고, 부모님도 없이 꽃동네에 살고 있는 아이가 외롭고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아이는 나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자신의 모습을 의식하기보다 오히려 세상 맑은 웃음을 짓고 행복해했다.




가끔 그때 만났던 꽃동네 사람들이 생각난다. 몸도 아프고 어디 하나 성치 않은 사람들, 가족에게서 사랑을 받지 못하는 사람들, 다양한 이야기를 가진 그들에게서 세상이 말하는 부와 명예를 가진 사람들에게 볼 수 없는 티 없이 맑은 웃음을 발견할 수 있었다. 세상의 잣대를 대면 신체나 정신, 환경이 부족하기 짝이 없는데 어떻게 그렇게 빛이 나는 미소를 지을 수 있을까?



나는 인생을 바라보는 안경에 어떤 렌즈를 끼우느냐에 따라 내 삶을 여러 가지 색상으로 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꽃동네에서 내가 만났던 분들도 자신의 어려운 환경과 멀쩡하지 않은 몸과 마음에 집중했다면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분들은 자신이 가진 것에 집중했다. 자신이 가진 것에 감사하고, 부족하지만 나눌 수 있음에 감사했기에 세상 어느 누구보다 그렇게 빛나는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그때의 꼬꼬마 나는 봉사의 가치를 몰랐었다. 시간이 흘러 어른이 되고 진정한 봉사의 가치를 알았다. 봉사는 나보다 '부족한 것이 있는 타인'과 비교한 '가진 자'의 위로가 아니었다. 봉사라는 활동을 통해 되려 내가 그분들에게 위로받았다. 그리고 꽃동네 사람들이 삶의 진정한 행복의 본질이 무엇인지 내게 몸소 가르쳐 주셨다. 사십이 되어서 보니, 학교에서도 직장에서도 배울 수 없었던 인생의 가장 중요한 부분을 알려주신 건 그때 만난 꽃동네 식구들인 것 같다. 내게 인생을 살아가는 데 있어 힘이 될 수 있는 깨우침을 주신 그분들에게 늘 감사하다.



누군가 '세상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아요.' '세상을 사는 것이 너무 힘들고 버거워요'라고 말한다면 꼭 주변을 둘러보고 한 번이라도 봉사를 가보라고 권하고 싶다. 그곳에서 우리 인생의 진짜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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