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부자로사 Oct 03. 2023

마음의 불씨

로사리아!


맛있는 과자 한 박스와 빨간색 바탕에 녹색 한지로 만들어진 카드.

크리스마스 분위기 답게 빨간색 색지를 반으로 접고 녹색 한지로 데코를 한 멋진 성탄절카드를 받았다. 녹색 한지 위에는 검정색 붓펜으로 명언 한 구절이 적혀있었다. 10살 어린이 로사리아는 진하게 쓰여진 글을 보면서 마음이 따뜻해지고 풍요로워짐을 순간적으로 느꼈다. 친구들 모두 카드는 제쳐두고 과자 박스를 열어 먹느라 정신이 없는데 로사리아는 그대로 멈춰서서 카드에 쓰여진 글귀를 손으로 매만지며 웅얼웅얼 계속 읽었다.



세상을 사는데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룩하는 데 있다.
토스토 예프스키






로사리아는 나의 천주교 세례명이다. 내가 태어난 달이 로사리오 성월이라 대모님(종교적 부모님 지지자 같은 분을 일컫는다.)이 내게 권해주신 세례명이다. 모태 신앙은 아니지만 고모의 영향으로 종교를 갖게 되었다. 항상 조용하시던 고모가 어느 날 갑자기 휘리릭 수녀가 되시겠다며 입회하시고 이후에 우리 가족은 수녀가 되는 길을 택한 고모의 수도생활을 응원하기 위해 가족 초대행사를 기회로 수녀원에 간 적이 있다. 그 때부터 맘에 끌려 천주교를 다니고 나는 로사리아라는 의미있는 세례명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다. 성당을 가는 일은 늘 즐거웠다. 내 눈에 비치는 크고 멋진 적벽돌의 외관은 마음을 두근거리게 하고 성당 입구에 있는 성모마리아상은 언제나 날 따뜻하게 맞이해주었다.



추운 겨울 어린이 미사를 마치고 우리 학년을 담당하는 마리아 선생님이 우리를 불러모았다.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했다며 맛있는 과자와 카드를 한 명 한 명에게 전달해주었다. 내 기억에 이 때 크리스마스 카드를 처음 받아보았다. 그리고 눈에 가득 들어온 한 문장이 있었다. 아직 어린 나는 그 말이 정확히 어떤 의미인지 몰랐지만 천천히 또박또박 작은 소리로 '세상을 사는 데 있어서 가장 큰 기쁨은 남들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룩하는 데 있다' 몇 번이고 읽었다.



그 시절 나는 아직 어린 10살 로사리아지만 '삶이 엄청 퍽퍽하구나'라고 이미 알고 있었다. 지금 사는 가정환경이 평범에서 한참 벗어난 것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또래들 사이에서 뭔가 마음 한 켠이 부끄러움과 비교로 가득하고 불편했다. 어려도 좋고 나쁨은 다 알지 않나? 눈에 보여지는 것은 편한 것이 없었기에 내겐 안식처같은 성당을 다니는게 너무 즐거웠다. 본당 안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빛이 내리비치면 형형색색의 무언의 말씀들이 성당을 가득 채워 일렁인다. 그 때마다 내 마음은 알 수 없는 벅차오름과 환희를 느꼈던 것 같다.저 글귀를 보면 가슴에 따뜻한 공기가 한 가득 내 몸 속을 돌고 돌아 차가운 마음이 데워지는 것 같았다. 내가 좋아하던 빛에 비친 스테인드글라스가 떠올랐다. 행복해진다.




저 글귀가 어떤 의미로 내게 자리잡을지는 몰랐다. 시간이 흐르면서 좌우명을 적게 될 때마다 나는 불현듯 저 문구가 항상 떠올랐고 줄곧 저 명언을 내 좌우명이라고 소개하고 그렇게 믿기 시작했다. 신기하다. 어렸을 적 남들이 자신들 마음대로 재단하고 우리 가족에게 뱉었던 '뱁새가 황새따라가다 가랑이 찢어진다' 분수에 맞게 살라는 그 말들을 내가 뒤엎었기 때문이다. 난 뱁새에서 황새가 되어가는 중이다. 아님 지금 황새일수도.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간과 환경 속에서 타인이 정해준 기준과 한계를 나는 넘어섰다. 그러고나니 이제서야 마리아 선생님이 내게 주신 빨간 성탄절 카드의 문구를 완벽히 이해할 수 있었다. 마리아 선생님은 자라기도 전에 꺾이고 밟혀질 뻔한 새싹이었던 로사리아의 마음에 희망의 불씨를 놓아주신 것이다.



나는 아직 이루고 싶은 것들이 더 많다. 그리고 이룰 수 있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를 알고 세상을 사는 기쁨이 뭔지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말이다. 


오늘 이렇게 글을 쓰다보니 내 마음의 불씨를 놓아준 마리아 선생님이 보고싶다.



작가의 이전글 추억은 행복을 싣고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