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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리 Jan 17. 2021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의 용기 있는 뒷걸음 스즈코

영화 <백만엔걸 스즈코> 덕분에 제가 영화를 보는 이유 한 가지를 더 찾았습니다. '미래'입니다. 

식상한 말로 '영화는 여러 사람들의 인생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좋은 경험'이라고 하잖아요. 이 영화야말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보고 싶은 분들이 꼭 봤으면 하는 영화입니다. 마치 제가 살아보고 싶었던 인생을 대신 살아보고, 그걸 영상으로 찍은 다음에 결말은 이런 거다! 하고 알려주는 메신저 같다는 생각이 드는 영화였거든요. '미래를 알려주는 영화'를 다른 말로 하면 내 인생에 대해 다시 '생각할 기회'를 주는 영화일 것입니다. 내 인생에서 제일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지, 그걸 추구하며 살고 있는지 가만히 생각해볼 계기가 될 겁니다.



누구나 한 번쯤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 새로운 곳에서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상상을 해보잖아요? 이런 상상을 행복하게 그려내면 <월터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가 되고, 현실적으로 그려내면 <백만엔걸 스즈코>가 됩니다.


어떤 점이 현실적이냐면, 주인공의 삶의 만족도 기준이 처참하게 낮아서 현실적입니다. 불행하지 않으면 행복한 인생입니다. 나를 괴롭히지 않고, 나로 인해 아무도 괴롭지 않은 곳이라면 어디든 상관없습니다. 때문에 산이든, 바다든, 도심이든 상관없죠. 심지어 계속 아무도 나를 몰라야 한다는 조건을 지키기 위해 백만엔 우리나라 돈으로 천만원 정도 모으면 다른 곳으로 훌쩍 떠납니다. 쉽게 떠날 수 있기 위해 관계는 단절시킵니다. 그러려면 서로를 최대한 모르는 게 좋고, 그러려면 말도 최대한 안 하는 게 좋고, 그러려면 최대한 조용히 잠자코 사는 게 좋고... 새로운 곳에서는 투명인간으로 살아야 한다는 이상한 결론이 나버립니다. 


더 중요한 건, 그런 무관계의 관계를 유지시키기 위해 '오직 천만원만 모은다'는 생각만 하고 살아야 된다는 겁니다. 감사, 설렘, 즐거움 등 감정의 동요는 최대한 억제하고, 백만엔만 생각하도록 늘 마인드컨트롤 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아야 합니다. 백만엔이 쌓여가는 통장을 볼 때마다 스즈코는 행복했을까요?



영화 속 설정도 지나지게 현실적입니다. 새로운 환경도 어쩔 수 없이 현실 속 세상이라, 인간들 수준도 거기서 거기라는 겁니다. 이 꼴 안 당하려고 도망쳤더니, 저 꼴 당하고 있는(?) 실정인 거죠. 이름도 모르는 사이인데 대뜸 소울메이트라고 고백하질 않나, 네 편 내 편 편 가르는 꽉 막힌 사고방식에, (믿거나 말거나) 널 사랑하기에 널 막대했다는 인간까지... 물론 새로운 동네에서 정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고마운 사람들도 있지만, 정말 등신같은 사람들 때문에 괴롭긴 마찬가지입니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여자 혼자 새로운 환경에서 혼자 살아간다는 게 얼마나 위험 요소가 많은지 느낄 수 있습니다. 사회적 지위(가족 구성원, 학생, 직장 등)라는 보호막이 사라진 무맥락의 인간은 얼마나 많은 위험 요소에 무방비하게 노출되는지 가늠할 수 있었어요.



엔딩은 비현실적 혹은 이상적입니다. 그래서 더, 나만의 미래를 그려볼 여지를 주었던 것 같기도 해요. 스즈코가 도망치는 삶이 아니라 맞서는 삶을 살아보자고 결심하게 된 건 동생이자 보증인인 타쿠야 덕분입니다. 타쿠야가 도망치지 않고 맞설 수 있었던 것 역시 스즈코 때문이었다는 걸 생각해보면, 둘은 대척점인 동시에 등을 맞대고 함께 선 자석 같은 관계가 아닐까 싶습니다. 서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있지만 가장 서로를 존중하고 의지하는 존재였기에, 스즈코가 뒤가 아니라 앞을 볼 또 한 번의 용기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도망칠 용기가 있는 사람은 맞설 용기도 있습니다. 도망, 회피, 헤어짐이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이라면 기꺼이 하면 됩니다. 그 선택이 또다른 선택을 만들 테니까요. 새로운 인생을 사는 방법은 엄청나게 다양하고, 스즈코는 그중 하나를 '실현'할 용기가 있는 사람입니다. 특히 성격이 씩씩해서 좋았습니다. 제가 스즈코라면 긴 시간을 돌고 돌아왔지만, 돌아본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을 것 같아요. 제가 영화를 본 두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것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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