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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남진 크리에이터 Mar 16. 2019

나의 아름다운 두 번째 나라
뉴질랜드를 위해서

비극이 발생한 모스크 사원 앞     



    

어제 뉴질랜드 남섬의 크라이스트처치에서 끔찍한 테러가 발생했다. 사건은 호주 국적의 20대 백인 남성 등 4명이 모스크에서 기도 중이던 이슬람 계열 뉴질랜드인에게 총격을 가하여 수 십 명이 사망한 것이다. 

살인 등 강력사건의 발생이 거의 없는 뉴질랜드로써는 가장 비극적인 날로 기록될 충격적인 사건이었다. 

내가 뉴질랜드와 인연을 맺은 2005년 이후, 매년 적어도 한 두 번 이상 뉴질랜드를 방문하면서, 모국의 친구 못지않은 절친들이 그곳에 생기는 동안 내가 경험한 뉴질랜드는 이런 비극을 겪을 아무런 이유가 없는 나라이다. 그래서 더 가슴 아프다. 

이 시대의 비극은 전 세계적이고 인과관계와 상관없이 아무 곳에서나 발생한다. 비극이 미치는 슬픔과 슬픔에 대한 연대와 공감 역시 전 세계적이다. 지난밤 트위터는 뉴질랜드에 위로와 연대를 보내는 전 세계 영화인들의 트윗이 넘쳐났다. 영화를 찍기 위해 뉴질랜드를 방문했던 할리우드의 영화인들은 ‘나의 아름답고 평화로운 뉴질랜드’에 닥친 참사에 대해 가슴 아픈 위로를 밤새도록 타전했다. 

나의 아름다운 뉴질랜드는 왜 특별한 나라이고, 이렇게 특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뉴질랜드 사람들은 어떤 노력을 해왔는지를 나누고자 한다.     

뉴질랜드에서는 모든 외교적 공식적 행사에서 먼저 마오리어로 인사말을 한다. 한국에 있는 뉴질랜드 대사관에서도 웰링턴에서 있었던 모든 행사에서 나는 이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마오리 말을 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행사일지라도 그들은 그렇게 한다. 마오리어와 영어와 함께 공식어이기 때문이고 파케하보다 먼저 뉴질랜드에 정착한 마오리족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십수 년 동안 뉴질랜드 사람들을 많이 만나면서 나는 다 한 차례도 그들이 인종주의 발언을 하는 것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들의 마음속까지는 나는 모른다. 그러나 뉴질랜드 사회가 아무리 비천한 인간(어느 나라나 그런 자들은 있을 텐데도)일지라도 그런 소리를 입 밖에 내지 못하게 만들 수 있었다는 점에 경의를 표한다. 여성 비하 발언은 더더욱 들어 본 적이 없다. 알려진 바대로 뉴질랜드 여성은 세계 최초로 여성 참정권을 쟁취했다. 우리의 현실과 비교해서 생각해보면 쉽다. 한국에서는 업무적으로 실력도 뛰어나고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일지라도 인종주의나 여성 비하 발언을 단 한 번도 안 하도록 교육받은 사람을 찾기란 정말 어렵다. 또 지금 같아서는 한국 사회 일반이 언제쯤 뉴질랜드 정도의 수준에 이를지 난망하다.     

뉴질랜드 절친의 아버지(70대 후반)와 자동차 여행을 하고 그분 댁에 머물 기회가 있었다. 그분은 허리 수술을 해서 지팡이를 짚고 다니는 분이다. 그러나 여전히 영국 신사/뉴질랜드 신사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다. 공공주차장에서 장애인 주차구역을 피해 먼 곳에 차를 세우고 지팡이를 짚고 이동한다. 더 필요한 사람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집에 머무는 동안 할아버지는 세끼 식사를 다 차려주면서 휴가를 즐기라고 말했다. 너무 추운 겨울이나 너무 더운 한국 여름이 견디기 힘들면 너한테는 뉴질랜드에 집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말라고 말했고 나는 이런 얘기를 해주는 뉴질랜드 친구가 여러 명이다.     

소 12마리를 키우는 농장과 아름다운 나무와 꽃으로 가득한 정원, 밤이면 하늘 가득 별이 쏟아지는 그곳에서의 기억이 아름다운 것은 천혜의 자연뿐 아니라 이런 따뜻한 기억 때문이다. 나에게 한국의 할아버지와 아버지 세대 사람들은 언제나 여성의 돌봄이 필요하고 그 수고를 당연히 여겨서 감사를 생략(?)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공모전을 통해 웰링턴에 인턴으로 보낸 젊은 여성 디자이너의 고백담으로 이 글을 마무리하려고 한다. 웰링턴 미라 메어에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데 다운 증후군 환자로 보이는 마오리 혼혈 남성이 큰 소리로 떠들고 있었다고 한다. 그녀는 뭔가 불편하여 그 사람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서있었다. 그런데 버스가 도착하자 그 혼혈 남성은 동양인 젊은 여성인 그녀에게 어눌하고 큰 소리로 ‘레이디, 먼저 타세요’라고 말하면서 차 문을 가리켰고 그녀는 오랫동안 자신이 부끄러웠다고 했다.     

큰 슬픔에 빠져있을 뉴질랜드 친구들과 나의 사랑하는 두 번째 나라 뉴질랜드에 사랑을 보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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