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정의가 존재한다. 라틴어에 어원을 두고 있고 personality(인격)이라는 단어가 여기에서 왔다. 하지만 창작, 특히 영화와 관련되어서 가장 좋아하는 것은 ‘배우는 작가의 가면이다’라는 말이다.
아이유라는 가면을 네 명의 영화감독이 어떻게 쓸 것인가, 이 프로젝트의 출발점이었을 것이다. 가수 윤종신이 기획한 것으로 알려진 이 <페르소나> 프로젝트는 4명의 감독이 아이유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그려낸 단편 모음으로 넷플리스를 통해서 2019년 4월 11일 공개되었다. 애초의 공개 일정에서 며칠 연기되었는데 제작진이 밝힌 사유는 ‘강원도 산불이라는 국가적 재난에 동참하는 의미로 연기한다’는 거였다.
사실 엄청난 규모의 산불이 발생했고 아이유 역시 가장 먼저 산불 이재민(어린이를 특정했다고 하는데)을 위한 구호 성금을 기탁한 연예인 중 하나였다. 하지만 산불 때문에 개봉(넷플릭스라고 해도 최초 공개는 개봉이나 마찬가지이니까) 날짜를 연기한다는 소식은 약간 부자연스럽기는 했다. 그런데 이 단편 모음을 본 후 그 결정을 납득할 수 있었다. 하필 단편 하나에 실수로 인한 방화가 원인이 산불이 나온다.
4개의 단편을 만든 감독들은 각기 다른 색깔의 가면을 한 사람의 배우, 아이유에게서 찾아내었다. <Love Set>이라는 단편을 연출한 이경미 감독은 아버지의 애인에 대한 불편한 감정에 시달리는 여고생(적어도 그렇게 보인다) 아이유를 그렸다.
<썩지 않게 아주 오래>라는 특이한 제목의 단편을 연출한 감독은 이 프로젝트에 초대된 감독 중에 가장 경험이 많은 임필성 감독이다. 개성이 강한 작품을 해온 감독답게 이 단편은 가장 멋진 색감과 가장 낯선(?) 아이유를 보여준다. 남자가 기꺼이 자기 심장을 꺼내서(글자 그대로) 바칠 만큼 치명적인 매력의 아이유.
세 번째 단편을 만든 전고은 감독은 <소공녀>라는 멋진 작품을 통해 존재감을 확실히 알린 감독이다. <소공녀>는 기성의 세계, 그리고 ‘꼰대’(이것은 나이와는 별 관계가 없는 삶의 테도 문제라는 것이 잘 드러나 있다)에 대해 통쾌한 한 방을 날린 작품이었다. ‘당신은 공감할 것인가? 가르치려들 것인가? 게다가! 당신이 가르치려 드는 그 원칙이 곰팡내 풀풀 나는 지켜봤자 별 소용도 없는 건데도?’ 전고은 감독이 찾은 아이유는 <키스가 죄>의 가정 폭력에 시달리는 친구와 함께 담배를 피우다 산불을 내고 마는 시골 여고생 아이유이다. (개봉 연기의 빌미를 제공한 작품 되겠다.)
네 번째 작품은 김종관 감독의 <밤을 걷다>라는 흑백영화이다. 누군가가 황망하게 우리 곁을 떠났을 때, 단 한번 만이라도 꿈에서든 나의 환상 속에서든 그를 찾아내어 실컷 묻고 따질 수 있다면, 그렇게 이승과 저승이 붙어있다면 어떨까 하는 상상을 해본 일이 있다. 이 작품은 그렇게 떠난 여자 친구를 만나서 따지는, 혹은 따져봤자 소용없음을 깨닫는 작품이다. 착상이 기발한 만큼 감독이 만난 유령 아이유는 매력적이다.
‘배우는 작가의 가면’이라고 한다. 아마도 이 말은 자기가 모르는 인물이나 세계를 만들어낼 수 있는 창작자는 없다는 점에서 옳다. 배우에게서 어느 한 구석, 나만 아는 면을 찾아서 나에게 당겨오는 노력을 감독이나 창작자들이 한다는 뜻일 것이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배우의 숨겨진 어떤 지점을 찾아 배우답게 (작가답게 가 아니라) 끄집어내 주는 것이 어쩌면 배우-작가의 가장 멋진 공동작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나는 프로듀서와 배우의 관계로 아이유(이지은)를 작품 속에서 만난 적이 있었다. 길고 어려운 작품을 만나 프로페셔널하게 잘 버텨준 배우로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페르소나>를 통해 다양한 매력을 가진 아이유를 만난 것이 참 반갑다. 김종관 감독은 단편영화를 만들던 시절, 그의 작품을 심사하고 뽑은 기억이 있다. 네 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오묘하고 정서적인 아이유를 그려낸 그의 작품이 그래서 더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