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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Jan 30. 2021

달걀 한 알을 남기는 일

내가 저지른 죄에 대해서 - 식생활

 냉면을 먹고난 뒤, 식당에서 서비스처럼 올려 준 달걀 한 알이 남았을 때, 그걸 먹지 않고 버리는 일이 힘들었다. 입이 짧은 탓에 음식을 남기는 경우가 종종 있었지만, 다른 것 보다도 꼭 달걀 한 알을 남길 때가 가장 미안했다.

 음식으로 식탁에 오르기 위해 부화하지도 못하고 뜨거운 물안에서 삶겼을 생명에게 죄를 짓는 기분이었다. 이미 생명력을 잃어버린 뒤임에도 매끈한 모습 그대로 완벽하게 둥그런 달걀의 모양이 죄책감을 더욱 무겁게 만들었다. 다시 어미가 품는다면 언제고 삐약거리면서 병아리가 태어날 것 같은 생김새. 내가 그 병아리를 직접 죽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주문한 냉면 위에 화룡점정이 되기 위해 죽었으니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기 위해서는 배가 불러도 꼭 위장에 집어 넣어야만 할 것 같았다. 그래서 역시나 배가 부른 동행에게 제발 한 입이라도 내가 남긴 계란을 베어먹어달라는 이상한 부탁을 한 적도 있었다.




 달걀 한 알을 버리는 일에서부터 느껴진 죄책감은 비건이 되기로 결심한 그 순간에 눈덩이처럼 불어났다. 서서히 비건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어느 날 갑자기 비건이 되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은 탓에 집에 사 둔 모든 음식이 한 순간에 죗덩어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나 나를 괴롭게 한 것은 냉동실에 쟁여 둔 덩어리 고기들이었다. 역시나 내가 죽인 것은 아니지만 내가 죽게 만든 소와 돼지가 자꾸만 떠올랐다. 먹자고 해도 마음이 아팠고 버리자고 해도 마음이 아팠다. 나 같은 사람이 별미랍시고 그들의 살을 구매하려 하지만 않았더라면 죽어서 부위별로 조각나 냉장고 안에 들어갈 일도 없었을텐데.

 그래서 처음에는 눈을 꾹 감고 사다놓은 고기라도 먹어보려 했다. 그러나 그렇게 맛있던 돼지불고기는 구역질이 났고 그 이후로 김치볶음밥에 썰어 넣은 햄 조각을 젓가락으로 일일이 골라냈으며 결국 큰 맘 먹고 사 둔 한우는 며칠을 묵혀뒀다가 음식물쓰레기통으로 직행했다. (채식을 하지 않는 사람에게 무상으로 줘 볼까 생각도 했으나, 주변에 아는 사람이 없고, 이런 시국에 잘 모르는 사람이 무료 나눔하는 고기를 선뜻 받는 사람도 없을 것 같아 이런 불경을 저질렀다.)




 냉동실에서 고깃덩어리들을 치우고 나면 괴로움이 훨씬 덜어질 줄 알았다. 사실 하루 정도는 마음이 가벼웠다. 그러나 다음 날 '간단하게 라면이나 끓여 먹어 볼까?' 하고 5봉 묶음으로 사 둔 라면 봉지를 뒤집어 본 순간 다시 내가 저지른 죄와 직면했다. 소고기 함유. 김치볶음밥에서 일일이 골라냈던 햄 조각처럼 건져 내서 먹을 수도 없는 소고기였다. 이미 잘게 갈려 조미 스프 안에 들어갔을테니.

 라면 뿐만이 아니었다. 고깃덩어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수많은 음식 안에 소나 돼지의 살이 가루처럼 들어가 있었다. 쌀로 만든 떡국의 육수에, 채소가 들어간 야채 만두 속 안에. 이름만 들어서는 꽤 채식 같이 느껴지는 99%의 제품 안에 고깃덩어리가 조각조각 난 채 들어있었다.

 얼마 전 박스 채로 사 둔 유기농 우유는 말할 것도 없이 동물 착취로 얻어진 것이었다. 유제품 문제는 생각보다 꽤 심각했는데, 당연히 채식(적어도 비육식)일 거라 생각했던 각종 빵이나 과자, 야채스프까지 모두 논비건이었다. 송아지가 먹고 자라야 할 것을 인간 어른들이, 내가 빼앗아 먹고 있었다. 내가 먹을 우유를 위해 갓 태어난 송아지는 엄마 소와 분리되어 곧바로 송아지 스테이크가 되거나 젖 짜는 기계로 길러졌으리라.

 이 외에도 전혀 상상할 수 없었던 음식 안에 고기, 우유, 생선이 가득가득했다. 우리 집 냉장고 안이 마치 동물들의 무덤처럼 느껴졌다. 와인이나 맥주 같은 술이나 매일 먹는 영양제에조차 동물성 성분이 쓰였다니 대체 동물을 착취하지 않고 먹을 수 있는 음식은 없단 말인가.




 문제는 이 모든 사실을 알았음에도 음식들을 버릴 수가 없었다는 사실이다. 배가 불러서 도저히 입 안에 넣을 수 없는 통통한 달걀을 내려다보며 느꼈던 그 죄책감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고기가 되기 위해, 라면 스프가 되기 위해, 인간이 마실 우유를 위해, 와인의 불순물을 걸러내기 위해, 인간의 균형잡힌 영양을 위해 (그들이 원하지 않았음에도) 희생당한 수많은 동물들을 쓰레기 취급하며 내다버리는 것은, 그런 음식물을 소비한 첫 번째 죄에 이은 두 번째 죄였다. 먹지도 않을 거면서 죽였다! 그들은 쓰레기가 되기 위해 죽었다!

 또, 처음 고깃덩어리를 버리고 나서 들었던 죄책감도 이유였다. 물론 그 고기들은 (공장식 축산 시스템에 의해) 이미 항생제와 병균이 범벅이 되어 있을 것이므로 다른 사람에게 넘겨 주는 것조차 미안한 일이었겠지만, 그래도 굶고 있는 누군가에게는 소중한 식량이 될 수도 있었을 것이었다. 그 세 번째 죄를 더는 짓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지금 남은 달걀 한 알을 꾸역꾸역 먹는 일을 계속하고 있다. 비건을 지향하고, 너무나 비건이 되고 싶지만 사실 현 상태로는 락토 오보나 페스코 정도밖엔 못 될 것 같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지금 먹는 음식에 들어 있는 동물성 재료들은 덩어리 고기처럼 눈에 원 형태가 들어오지 않아서 처리 하는 데 어렵지 않다는 점이다. 한편으로는 이처럼 그 동물성 재료가 원래 '어떤 동물'이었는지 알 수 없게 하는 현대의 식품제조법이 사람들로 하여금 동물을 죽이는 일에 무감각하도록 만들고 있구나 싶어 씁쓸하다. 덩어리 고기는 생각만 해도 구역질이 나는데, 가루가 된 동물을 먹는 것은 맛있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다시 한 번 다짐을 해 본다. 이번에 냉장고를 비우고 나면 다시는 동물을 음식으로 소비하지 않으리라. 이미 저지른 죄가 있다고 해도 회개(?)하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으니. 보송보송한 병아리로 태어날 수도 있었을 달걀을 음식물 쓰레기로 만드느냐 분변으로 만드느냐의 기로에 세워두지 않으리라.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아 보인다. 비건에 대해 정보를 모으면 모을수록 내가 저지른 죄는 식생활을 넘어 삶 전반에 퍼져 있었음이 보인다. 건조한 겨울에 얼굴을 보호하겠다고 바르는 화장품, 하루 세 번 이상은 사용하는 치약, 현대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옷에서까지 나는 죄인이었다.

(고해성사는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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