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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Apr 14. 2022

살인기계

2022.4.14

  내 꿈 안에는 잊을만 하면 다시 나타나는 살인기계가 돌아다닌다.

늘 똑같은 명랑한 경고음, London bridge is falling down이 점점 가까워지면서 미끄러지듯 등장한다.

  스타워즈 시리즈의 알투디투와 비슷하게 생긴 모습인데 크기가 저금통만하고 이리저리 굴러다닌다.

  워낙 크기가 작아서 처음엔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그 레이저같은 빨간 불빛을 바라보고 섰던 누군가가 총에 맞듯 죽는 것을 본 이후, 나는 그게 등장하면 내 꿈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숨도 쉬지 말고 움직이지도 말라고 알린다.

  그걸 만만하게 본 사람도 있었다. 저런 장난감 로봇이야 밟아버리거나 뻥 차버리면 그만이라고 그랬다. 그리고 그가 정말로 그 기계를 발로 찼을 때 알투디투는 그 자리에서 폭발했고 피투성이로 멀리 튕겨져나가던 나는 억지로 잠에서 깼다.

  그 기계는 상하좌우 360도로 돌아가는 센서를 가졌고 너무 명랑해서 끔찍한 그 멜로디를 내며 레이저로 공간을 샅샅이 훑으면서 죽일만한 사람이 있는지 확인한다. 아직도 그 기계가 인식하는 게 사람의 열기인지 움직임인지 소리인지 찾아내지 못했다. 그 동요 알람음이 멀리부터 들리기 시작하면 나는 우선 책상 위든 어디든 올라가서 실눈을 뜨고 알투디투의 빨간 외눈을 마주치지 않으려 혼신의 힘을 다한다.

  기계가 등장하기 전에 전조 현상이 있다면, 역시나 꿈 속에서 계속 발견하는 특정한 어떤 바닥을 찾아낸다는 것. 그게 교실이든 회사든 어디든, 덮여있는 카페트나 책상들을 치워내고 보면 항상 같은 바닥이 드러난다.

  가장자리는 최근에 시멘트로 덮었지만 가운데는 오래된 타일들로 대충 덮어놓은 바닥이다. 지금은 단종되어 구옥에서나 볼 수 있다는 그 하얗고 파란 욕실용 타일. 그리고 나는 그 아래에 뭐가 묻히는지 그 현장도 봤었다.

  새 꿈이 다시 시작되면 나 빼고 다른 사람들은 아무도 그 바닥에 대해 알지 못한다. 내가 그 바닥을 발견하고 겁에 질린 표정을 지으면 대체 왜 그러느냐고 다들 묻는데, 그걸 설명할 겨를도 없이 알투디투가 나타나서 사람들을 물색하고 죽인다.

  오늘 새벽에도 나를 포함해 다섯 사람이 있는 방 안에 알투디투가 들이닥쳤고, 나는 사람들에게 입모양으로 뻐끔거리며 절대 움직이지 말라고 말했다. 사람들은 영문도 모르고 나를 따라 각자 바닥에서 발을 뗐다. 그것이 분명 고개를 올려 빨간 레이저 눈으로 책장 위에 올라간 나를 쓸고 지나갔는데 하고 생각하던 순간 갑자기 잠에서 깼다. 자면서도 꼼짝못한 상태로 굳어있었는지 팔다리에 쥐가 났다.

  이 기계가 꿈 안을 돌아다니기 시작한 게 벌써 몇 년 전이다. 그동안 그냥 악몽 쯤으로 생각했는데 오늘은 갑자기 우크라이나 생각이 났다. 잠시 문을 열었다가 그대로 저격 사살당해 시체가 며칠이나 문틈에 끼어있었다던 어떤 우크라이나 남자와, 그 집 안에서 굶어죽었을 게 뻔한 그의 지체장애인 여동생의 뉴스를 본 게 기억났다.

  집 안에서 버티다가는 아사할 것이고 거리로 나서면 대체 어디서 나를 (재미삼아) 저격하고 있을지 모르는 총을 두려워해야 하는 날들. 소리내서는 안되고 움직여서도 안되고, 그냥 숨도 쉬면 안 될 것 같은 느낌. 존재 자체를 포박해버리는 것 같은 압박감은 대체 어떤 걸까.

  알투디투가 꿈에 나올 때는 눈을 뜨는 순간 이게 꿈이라는 사실에 너무나 안도한다. 하지만 아무리 자고 일어나봐도 그들을 노리는 거대한 알투디투는 현실일 것이다. 그저 운이 좋아서 시간, 공간적으로 전쟁에서 살짝 비켜난 세대라고 생각한다. 쭉 이대로 악몽에서 무사히 깨어난 것에 감사하는 삶을 살고 싶다.


2022.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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