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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트윈픽스의 빗치 Mar 07. 2022

버킷리스트

2019.5.14

 버킷리스트 같은 것을 한 번도 만들어본 적이 없는데, 문득 내가 죽기 전에 해보고 싶은 게 뭘까 생각이 들었다.

참 찾아내기가 힘들고 또 무섭다. 거창한 소원 여러 개를 적어뒀다가 그걸 못 해보고 죽으면?  아니, 하나가 남아서 그게 너무 큰 한이 되면?  아니면 꼭 해보고 싶어서 적었는데, 그걸 할 용기조차 없는 비겁하고 약해빠진 나와 직면하게 된다면?

 괜히 사서 고생하는 게 버킷리스트를 만드는 게 아닐까.

 쉽게 용기는 안 난다. 그래도 생각날 때 하나씩 적어둬라도 볼까 한다.


 우선, 애인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과 해외여행 떠나보기. 혼자 떠났다가 (일본 도쿄로) 국내선을 타고, 홋카이도에서 국제선으로 도착한 당시 연인을 만나본 적은 있다.

 하지만 그것보다는 함께 휴가 날짜를 맞추고, 비행기 표를 함께 끊고, 같이 계획을 짜는 그 행복한 시간이 궁금하다.

 다른 건 진짜 생각이 안 난다.


 얼마 전에 홍구와, 홍구가 쓴 글에 대해 짧게 댓글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다시 태어나도 나는 내가 만들어온 결정과 같은 결정을 내리고, 이렇게, 내가 살고 있는 모양으로 살고 있을 것 같다고.

 아니, 다시 태어나도가 아니라 과거 어느 순간으로 돌아간다면, 이 전제였던 것 같다.



 며칠 전에는 T와 땡스북스에 갔다가 재미난 카드를 발견했다. 한 장 씩 뽑으면 그 위에 무슨 질문이 적힌 카드 뭉치였다.

 T가 뽑은 카드에는 '당신의 현재 삶이 최선입니까?' 라고 쓰여있었고, T는 이것을 서툰 한국으로 읽어 물었다.

 나는 놀랍게도 1초도 망설이지 않고 'Yes'라고 대답했다.

 나 스스로도 무척 놀랐다. T는 '최선'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Best'라고 대답해 줬다.



 나는 행복한가보다. 내 분수를 잘 아는 현실적인 눈을 가졌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버킷리스트를 쓸 수 없는 것도 이 때문인지 모르겠다. 딱히 죽음을 조건으로 두고서까지 간절하게 바라는 게 내겐 없다.

 내가 바라고 노력하면 행복할 소재는 내 주위에서 쉽게 발견되고, 나는 그런 작은 것의 행복을 모아서 내 인생이 꽤 괜찮게 흘러가고 있다는 결론을 찾아내게 될 것임을 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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