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07.30
-. 돌아누운 실이의 뒤통수가 탐스럽고 예뻐서 사진을 찍었다. 자꾸 주무르고 귀엽다고 뽀뽀하는 귀찮은 나를, 믿음직스러운 집사로 인정하고 등을 보인 채 단잠에 빠진 그 고양이가 정말 사랑스러웠다. 확대했다 줄였다 해가며 찍은 사진을 계속 들여다보는데, 문득 카메라 화질이 너무 좋아서 가슴이 덜컥했다.
-. 부모님이 살아계실 때 사진만 말고 동영상을 꼭 찍어두라고 누군가 말했다. 언젠가 혼자가 되고 나면, 멈춰 있는 사진보다 영상 속 부모님의 표정과 목소리와 움직임이 기억을 더듬는 데 훨씬 큰 도움이 될 거라고. 기술 좋은 시대에 태어나서 우리들은 다행이라고 그랬다. 맞는 말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나는 엄마 아빠의 동영상을 선뜻 찍을 수가 없다.
-. 가끔 어떤 연예인을 생각하다가 그 사람이 사고나 자살로 이미 여기에 없다는 사실을 갑자기 깨닫는다. 그들이 어딘가에서 잘살고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을 하고, 문득 그들의 죽음을 깨달을 때마다 또다시 새로운 충격을 받는 것은, 그 사람들의 찬란했던 순간이 호흡까지 들리는 생생한 영상으로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늘 생각해 왔다. 나는 절대로 들어갈 수 없는, 기술이 만든 평행우주 같은 세상 안에서, 내가 사랑했던 존재들이 나에게 말을 걸어오는 것. 거기에 대답할 수 없는 남은 사람에게 그건 썩 아름답기만 한 경험은 아닐 것 같다. 인간에게 주어진 능력을 뛰어넘는 기술은 정말 축복인 걸까.
- 낮에 찍은 사진 안에서 실이는, 모니터만 몇 시간째 들여다보고 있는 나의 관심을 끌기 위해 굳이 책상 위로 비집고 올라와 잠을 자고 있다. 지금 그 자리에는 빠진 털만 수북한데 사진 속에선 아직도 거기서 나를 기다린다. 예쁜 뒤통수를 확대해 보면 회색과 흰색이 섞인 부드러운 털이 한 올 한 올 만져질 것 같다. 심지어 눈으로 보는 것보다 더 생생하다. 지금은 괜히 기분이 이상해지면 당장 달려 나가서 귀찮아하는 실이 배에 이마를 문지를 수 있다. 하지만 언젠가 실이가 옆에 없을 때 우연히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된다면, 그 보송보송한 털들이 못 견딜 만큼 슬플 것이다. 예쁨을 못 이겨 아무 대책 없이 마구 모아놓은 고양이의 사진과 동영상들이 조금 겁이 난다. 적당한 거리가 있어야 슬픔도 적당할 수 있을 텐데, 요즘의 기술은 너무 가깝고 세세하고 노골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