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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Feb 29. 2020

나는 왜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을 쏟을까?

“살면서 이익이 되는 일만 하는 건 아니잖아요?”




  요즘 브런치와 유튜브에 각각 글과 영상을 올리는 일에 빠져 있다. 이런 나를 보며 문득 자본주의적인 생각이 들었다.


이게 돈이 되는 것도 아닌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하지?


  그리고 한 친구가 떠올랐다. (A라고 하겠다.) 소위 말하는 연예인 덕질을 하는 친구인데, 정성이 대단하다. 포스터를 받기 위해, 싸인회 기회를 얻기 위해 연예인이 광고한 제품을 사고, 다량의 앨범을 구매한다. 심지어는 직접 굿즈를 만들어 나눔을 한다. 파는 것도 아니고 팬들과 공짜로 나눠 갖는 것이다. A를 가까이서 지켜보면서 ‘아가페란 이런 것일까?’ 하는 존경심까지 든다.


  한편으로는 이해가 잘 안 가기도 했다. 그릇이 작고, 게으른 내게는 이해하기 힘든 열정이었다. ‘저 사람이 해 준 게 뭐가 있다고 그런 수고를 하는 거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A에게 그렇게까지 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물었다. 그러자 친구는 본인이 좋아서, 행복해서 하는 거라고 했다. 존중했지만 여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런데 최근 유튜브와 브런치에 빠져 있는 나도 A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유튜브도, 브런치도 수고가 따르는 일이지만 수익이 되지는 않는다. 운 좋게 영상 조회수가 잘 나와서 수익을 얻을 수도 있고, 출판 기회를 잡을 수도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와닿지는 않는다. 설사 그런 기회가 온다 해도 기회를 잡을 만큼 내 실력이 충분하지 않다는 자기 객관화도 되어 있다.


  내가 유튜브와 브런치를 열심히 하는 이유는 ‘좋아서’라는 말 말고는 설명이 안 된다. 이런 걸 취미라 한다면 내게 난생 처음으로 취미가 생긴 것이다.


  예전에는 누가 취미를 물어 보면 할 말이 없었다. 정말로 취미가 없었다. 20살 때 처음으로 소개팅하기 전날 고민한 게 ‘아 왠지 취미 물어볼 것 같은데, 뭐라 하지?’ 이거였다. (진짜 물어봤다. 그래서 셀카 찍기가 취미라 답했다. 아마 자기애가 엄청나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체력이 거의 할머니 수준인 내가, 다른 데 에너지를 쏟기란 쉽지 않았다. 지금도 집에 있으면 침대에 붙어 거의 일어나질 않는다. 그런 사람이 취미를 가질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런데 유튜브와 브런치는 누워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유튜브 영상도 어플로 편집할 수 있고, 브런치도 어플이니 누워서 할 수 있다. 내가 침대에서 일어나지 않아도 할 수 있으니 내게 꼭 맞다.

 

  글을 쓰고 영상을 찍는 일도 내게 즐거운 일이다. 생각이 많고, 말도 많은 나는, 찍고 싶은 영상도, 쓰고 싶은 글도 많다. 혼자서 소소한 영상을 만들기도 하고, 글도 쓰곤 했는데 어디에 올리진 못했다. 간신히 용기를 짜내어 이것 저것 올렸을 뿐인데, 주변에서도 응원해 주고, 모르는 사람들도 반응해 주니 왜 진작 안 했지 싶다.


  SNS에도 몇 번 글을 올리긴 했지만 항상 올리고 나면 마음 한 켠에 불안함이 있었다. SNS 계정은 나를 애매하게 아는 사람들도 보다 보니 눈치가 보였다. 글만 보고 나를 판단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분량도, 노출 수준도, 주제도 한정되어 있었다. 그러나 유튜브와 브런치는 나와 정말 가까운 사람들에게만 공개해서 친한 사람 아니면 아예 모르는 사람만 볼 수 있다. 애매한 지인들은 볼 수 없으니 눈치 보일 일도 없다.


  게다가 누가 하라고 시키는 것도 아니고 안 하면 책임져야 하는 것도 아니다. 시작도 끝도 내 마음대로, 과정도 다 내 마음대로다. 세상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이 몇이나 될까? 수고가 따르긴 하겠지만, 살면서 하나쯤은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일을 만드는 것도 나쁘지 않다.


  요조씨의 인터뷰가 생각난다. 유명 인디 가수였던 그는 현재 제주도 인적 드문 동네에 책방을 운영하고 있다. 언뜻 보면 이해가 잘 되지 않는 일이다. 많은 수고가 따르면서도 돈이 되기는 힘든 일인데, 왜 그런 일을 할까? 원래 하던 가수 활동에 집중하는 게 더 많은 돈을 벌 수 있는 길일 텐데 말이다.


  인터뷰어가 “책방 운영은 잘 돼요?”라고 물었다. 그 말의 뜻을 간파한 요조씨는 이렇게 답했다.


시인님도 살면서 이익이 되는 일만 하시는 건 아니잖아요.


  그 말에 많은 것들이 함축되어 있을 것이다. 눈에 보이는 이익이 아니어도 얻는 것들이 많기에 기꺼이 수고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돈이 되지 않는 일에 열정을 쏟는 사람들의 마음을 알 것 같다. 그리고 나도 그런 사람이 되어 기쁘다. 돈이 되지 않아도, 별다른 반응이 없어도 내가 하는 수고가 아깝지 않다. 내가 만든 것들이 차곡차곡 쌓이는 뿌듯함이 좋다. 내가 만든 영상과 글이 혼자만의 것으로 남지 않아서 좋다. 가끔씩 내 영상과 글에 좋아요와 댓글을 남겨주는 사람들의 다정함이 좋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다. 돈이 되진 않아도 많은 것을 얻는다.


  이 글을 읽는 사람들 중에서도 이익이 되지 않는 무언가에 열정을 쏟고 있거나 쏟아본 적이 있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런 당신을 누군가가 힐난했다면 괜히 의기소침해지지 않길 바란다. 나도 지금 생각하면 A에게 괜한 무안을 줬던 것 같아 미안하다. 내심 부러워서 그랬던 것 같다. 삶의 낙이 있다는 건 부러움을 살 만한 일이니 말이다.


  지금은 A에게도, 당신에게도 이렇게 말해 주고 싶다.


우리 OO이 하고 싶은 거 다 해!

  

 

*요조 인터뷰 전문

https://www.google.co.kr/amp/s/m.mk.co.kr/news/culture/view-amp/2018/04/25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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