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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Mar 18. 2021

얼굴을 보여줄 수 없는 그녀들과 온라인으로 수업하기

말레이시아 교단 일기: 온라인 수업 편


 어제는 학생들과 첫 수업을 하는 날이었다. 수업 전 날, 학생들과 처음 만난다는 설렘, 첫 수업이니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겹쳐져 잠을 거의 못 잤다. 게다가 그 날 오후에 계약을 마치고 쇼핑몰에서 인터넷 공유기, 베개 등 당장에 필요한 살림들을 구비하느라 개인적으로 정신도 없었다.

 하지만 이를 핑계로 첫 수업 전 날 드러누워 있을 수는 없었다. 수업을 연습해 보며 발화를 점검하고, 세세한 부분들은 수정해 나가며 수업을 준비하였다. 아래는 내 고민의 과정과 결과들이다.


1. 첫 수업부터 진도를 나갈 것인가vs 첫 수업이니 소통 위주로 할 것인가


  원래 1월에 개학을 하는 말레이시아로서는 우리가 3월 중순에서야 파견됐으니 늦어도 한참 늦은 상황이었다. 나는 항상 첫 수업에서는 진도를 나가기보다는 학생들과 서로 자기 소개를 하고, 학급 규칙을 세우면서 분위기를 잡는 편이지만, 내 마음 속의 소심이가 자꾸만 튀어나왔다.


가뜩이나 늦게 파견돼서 학교에 민폐인데, 진도부터 나가야 하는 거 아냐?

 

  그리고 학교에서도 내가 빨리 수업을 시작하기를 바라고 있어서, 덩달아 마음이 급해졌다. 고민 끝에 학교에 첫 인사를 갈 때, 학교 일정과 상황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판단하기로 결심했다.

  교장 선생님과 부장 선생님께 첫 인사를 간 날, 긴장한 탓에 몸에 힘을 잔뜩 준 채 이야기를 들었는데, 수업에 대한 압박을 주시기보다 오히려 따뜻하게 맞아주시고, 학교 일정과 규정에 대해서도 내가 이해할 때까지 차근차근 친절히 설명해 주셨다. 그리고 부장 선생님께서 먼저 이번 주는 첫 수업인 만큼 진도를 체크하고 학생들이랑 이야기 하는 시간으로 보내는 게 어떻겠냐고 의견을 주셨다.

  내 생각과 학교의 생각이 같음을 알았으니, 후자로 수업의 방향성을 잡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수업을 준비하려고 하니 또다른 고민에 빠졌다.


2. 어떤 콘텐츠로 수업을 할 것인가


- 자기 소개하기

  우선, 진도 확인을 통해 학생들이 자기 소개 표현인 ‘저는 ~입니다.’를 이미 배운 것을 확인했다. 여기에 ‘저는~을/를 좋아해요.’라는 표현을 추가하여 짧은 자기 소개를 만들 수 있게 수업을 구성하였다. 그리고 선생님 소개를 학생 소개와 유사한 형식으로 만들어 시범을 보였고 이를 통해 학생들이 쉽게 자기 소개를 할 수 있도록 하였다.

왼쪽 선생님 소개/오른쪽 학생 소개


  선생님 소개를 할 때는 학생들에게 친숙한 명사들을 사용하여 소개를 하였고, 아이돌과 드라마를 언급하며 공감대를 형성하였다. 또한 선생님 소개와 학생 소개가 끝난 뒤 선생님이 무엇을 좋아한다고 했는지, 친구들이 무엇을 좋아한다고 했는지 퀴즈를 내면서, 같은 문형에서 문장의 끌을 올려서 발음하면 ‘OO이/가 무엇을 좋아해요?’ 와 같이 의문문을 만들 수 있음을 지도하였다.

  교사의 욕심으로는 자기 소개를 하면서 ‘저는 노래 듣기를 좋아해요.’와 같이 동사를 명사형으로 바꾸는 법, ‘을/를’이 앞 명사의 받침 유무에 따라 사용을 달리해야 한다는 것도 추가로 지도하고 싶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무리하게 문법적인 부분을 언급하면 진도에도 어긋나고, 학생들에게도 부담일 거라는 생각에 욕심을 내려 놓았다. 대신 학생들이 이러한 부분에서 실수를 했을 경우, 가볍게 언급하며 향후 수업에서 배울 것임을 예고하기로 하였다.


- 학급규칙과 학급 인사 만들기

  학급 규칙과 학급 인사의 경우 학생들이 의견을 제시하면 투표를 통해 결정하기로 하였다. 수업의 주인은 학생이니 규칙 역시 학생들이 세워야 한다는 게 개인적인 생각이다. 학생들에게 직접 학급 규칙 만들기를 제안할 경우, 오히려 학생들이 더 엄격한 기준을 제안하기도 한다. 나 역시 학생들이 규칙을 어길 때 ‘너희가 만든 규칙이니 지켜야 하지 않을까?’라고 말할 수 있으니 내 지도에도 힘이 실린다. 그래서 이번 수업에서도 학급 규칙 만들기를 하기로 결심했고, 여기에 수업 시작 전 학급 인사를 만드는 것까지 추가하여 진행하기로 하였다.

  문제는 학생들이 학급 인사와 규칙을 한국어로 만드는 데 어려움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었다. 고민 끝에, 학급인사와 규칙을 만드는 목적이 한국어 습득보다는 수업 분위기 조성에 있는 만큼, 이 두 활동에 한해서는 구글 번역기와 영어 사용을 허용하고, 피드백을 통해 표현을 다듬어 주기로 하였다. 단, ‘-(으)면 안 돼요’란 표현을 배운 Form4와 Form5는 이 표현을 활용해서 학급 규칙을 만들게 할 계획이다.

  두 번째 문제는 학생들이 의견 제시에 소극적이고, 카메라를 끈 채 수업을 듣는다는 것이었다. 내가 기획한 수업은 학생들이 의견을 제시해야 하는 만큼 학생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발표가 중요한데, 학생들이 종교의 영향으로 의견을 개진하거나 발표하는 데 소극적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게다가 가족이 아닌 타인에게 히잡을 쓰지 않은 모습을 보여줄 수 없어 카메라를 끈 상태로 수업을 듣기 때문에 현장감 있게 수업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이 두 번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한 도구를 고민했고, 그에 대한 답이 패들렛(Padlet)이었다.


3. 어떤 도구로 수업을 할 것인가


  패들렛은 쉽게 말해 포스트잇을 활용한 활동들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는 플랫폼이다. 패들렛 포스트잇이 실제 포스트잇보다 좋은 점은 글뿐만 아니라 사진이나 그림, 영상 링크, 녹음한 목소리를 넣을 수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메모지에 댓글과 좋아요, 투표 등을 할 수 있게 설정도 가능하다.

  서식 또한 다양하게 변경이 가능하다. 자유롭게 포스트잇을 붙일 수 있는 담벼락 형식, 주제별로 포스트잇을 횡/종으로 정렬할 수 있는 형식, 지도에 메모지를 붙이는 형식 등등 수업의 주제와 방법에 따라 다양한 활용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생각하는 특장점은 교사가 가입 후 링크를 제공하면, 학생들은 별도의 가입 없이 곧바로 참여가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이런 장점들 덕분에 우리나라와 세계의 많은 교사들이 온라인 수업에서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는 플랫폼이기도 하다.

  나의 경우 자기 소개를 할 때도 패들렛을 활용하여 자기 소개를 작성하게 하였고, 댓글을 통해 피드백을 주거나 구체적으로 어떤 걸 좋아하는지 묻는 식으로 소통을 하였다.

  또한 메모지 색을 달리하여 자기 소개/학급 인사/학급 규칙을 구분하였다. 투표를 통해 채택된 의견들은 맨 앞으로 메모지를 정렬시킨 후 또다른 색으로 표시하였다.

  패들렛 활용에서 놓치기 쉽지만 중요한 부분은 포스트잇에 학생들 이름을 쓰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해야 학생들에게 피드백을 주거나 발표를 시킬 수 있고, 학생들도 자기 의견을 빠르게 찾을 수 있어 용이하다. 출석 체크의 효과는 덤이다

  학생들도 말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보다 글로 의견을 내는 것을 더 편하게 생각했고, 학생들과 얼굴을 직접 마주하지 않아도 상호 소통이 가능하여 좋았다. 또한, 학생들의 의견을 한 데 모아서 정리하고, 학생 모두에게 개별적인 피드백을 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PDF 파일로 저장하면 위와 같이 잡지처럼 메모지의 내용과 댓글을 정리해 준다.


4. 향후 온라인 수업은 어떻게 발전시킬 것인가


  말레이시아는 4/5일부터 대면 수업이 시작되어 온라인 수업은 학년별로 한 번만 남긴 했지만, 남은 온라인 수업도 패들렛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온라인 수업을 해 볼 생각이다. 특히, 다음 수업에서는 본격적인 진도를 나가기 때문에 보다 적극적으로 패들렛을 활용할 계획이다.

  우선, 학생들 중 한국어 발음을 어떻게 자연스럽게 할지가 고민이라는 친구들이 있어서 다음 번엔 메모지에 음성을 녹음할 수 있는 기능을 활용해 보려 한다. 메모지에 음성을 남기게 하여 발음에 대한 피드백을 개별적으로 줄 계획이다.

  또한, 모둠 활동이 좋다는 의견들을 반영하여 주제에 따라 메모지를 구분할 수 있는 서식으로 모둠별 활동도 추진해 보려 한다.


  첫 수업이라 서툴고 부족한 부분이 보였을 텐데도 잘 따라와 주고, 재밌다고 격려를 보내 준 학생들에게 고마울 뿐이다. 보다 의미 있고 즐거운 수업으로 그 마음을 갚아야겠다. 마지막으로 학생이 써 준 귀여운 메모를 자랑하며 글을 마무리하겠다.

수업 끝나고 애들이 다 나갈 때까지 남아 수업 정말 재밌다고 해 준 귀요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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