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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메밀 Apr 19. 2021

말레이시아가 가르쳐 준 실수와 불안에 대처하는 법

말레이시아 교단 일기: 마음 가짐 편


  벌써 말레이시아에 온 지 한 달 반이 지났다. 아직까지도 내가 말레이시아에 사는 게 실감이 나지 않고, 마치 긴 꿈을 꾸고 있는 느낌이다.


  다 지나서 하는 얘기지만 사실 말레이시아 파견이 확정되고,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까지 집에서 매일 울었다. 사람들을 만나 즐거운 시간을 보낸 날은 더 그랬다. 누가 시켜서 간 것도 아니었고, 내가 정말 원해서, 적극적으로 움직여서 쟁취한 것이었음에도 그랬다.


  공고를 늦게 발견해서 준비 기간이 짧았던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준비기간은 짧은데, 준비할 것들은 많아서(요구하는 서류가 자기소개서 + 수업 계획안 + 학급 운영 계획안 + 9 항목의 기타 증빙 서류였다. 면접은 서류 발표 이틀 후 영어 수업과 영어 면접) 최대 효율과 집중력을 동원해서 준비하기도 바빴다. 오히려 준비 기간이 길었다면, 어떤 핑계로든 말레이시아에 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저 긴 서류를 준비하다 지쳐 안 왔을 가능성이 제일 높다.) 막상 합격을 하고 나니, 앞으로 말레이시아에서 어떻게 살아 갈지가 걱정이 됐고, 말레이시아에 다녀 온 후 내 앞날이 막막해졌다. 이 말레이시아행이 내 인생의 변곡점이 되리라는 직감이 날 더 불안하게 했다. 롤러코스터를 타고 고점에 다다랐을 때 설렘과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과 같았다.

딱 이 지점에서 느끼는 설렘과 두려움. 뭔지 아시죠?

  

  여전히 앞이 안 보이고, 막막하긴 하다. 그래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불안을 대하는 자세에 여유가 생겼다는 것이다.


  사실 말레이시아는 업무를 일일이 가르쳐 주는 분위기도 아니고(이건 근데 한국도 마찬가지라 생각한다. 모르면 찾아 보거나, 내가 물어보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전임 선생님께서 워낙 바쁘셔서 인수인계도 제대로 받지 못해 아무리 신경 써도 디테일한 부분에서 실수가 있었다. 그때마다 언어 부장님께서 피드백을 꼼꼼하게 주시며 덧붙이시는 말씀이 있다.


 Not now, Do it next time.


피드백은 정확하게 주면서도, 나의 마음과 상황을 배려해 주는 이 말이 참 따뜻했다. 나도 나중에 상사가 된다면 실수에 질책하기 보다는 기회를 주고, 부하 직원의 발전 가능성을 믿어주는, 그릇이 큰 사람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아이들도 나를 민망할 정도로 좋아한다. 그저 내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나를 좋아하는데, 정말 아무도 못 믿겠지만, 나도 민망하다고 거듭 말하지만, 살면서 다시는 못 겪을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아직도 어색하지만 어차피 다시 한국 가면 깨질 한여름 밤의 꿈인 걸 알기에 즐기고 있다.


  이렇게 나의 가능성을 인정해 주고, 기다려 주는 상사와, 조건 없이 사랑해 주는 학생들과 함께 하다 보니, 나도 내 자신을 좀더 온화한 눈으로 바라보게 된다. 그러다 보니 먼 미래에 불안해 하기 보다는 당장 어떻게 더 일을 잘할 수 있을지, 학생들에게 뭘 더 줄 수 있을지에 집중하게 된다. 불안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법은, 당장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며 조금씩 나아가는 것임을 깨닫고 있는 중이다.


  말레이시아에 오기 전 지도 교수님께 ‘내가 앞으로 어떤 일을 하게 될지 예상이 되지 않는다’라고 고민을 토로하니 해 주신 말씀이 있다.


 “제자들 중에 선진국에 다녀온 사람들보다 한국과 아예 다른 기후와 문화권인 나라에 다녀오면서 더 크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았어. 새로운 사업 아이디어를 얻거나, 생각지 못했던 일을 발견하는 등. 오히려 예측이 가지 않는 삶이 더 가능성 있고 재밌는 삶이지 않니?”


  적당히 현실적이고, 적당히 이상적인 말이 필요했던 내게 가장 힘이 되는 말이었다. 말씀하신 대로 예측이 안 되는 것에 불안해 하기 보다는, 설레 하는 게 이 말레이시아행의 가장 큰 소득이었으면 좋겠다.


매일이 따뜻하고 푸르른 말레이시아. 여기 있는 사람들도 딱 그렇다. 나도 이곳에서 그렇게 순수하고 따뜻한 사람으로 성장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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