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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침대 위 취준생 Nov 21. 2019

23개월, 나의 소방일기(2)

침대 위 취준생의 23개월간 의무소방 일기

CPR(심폐소생술 : cardiopulmonary resuscitation)

 심정지 환자 발견 시 가장 먼저 행해야 하는 것. 여러 기업이나 학교 등 다양한 단체에서 교육을 받은 경험들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학교에서 교육을 받은 경험이 있었고, 훈련소 생활에서도 그리고 소방학교에 와서도 질리도록 받은 교육이다. 하지만 질린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해도 모자람이 없는 것이 CPR 교육이다. 막상 눈앞에서 사람이 쓰러져 숨을 쉬지 않고 심장이 뛰지 않는다면 교육을 받은 사람들도 머릿속이 하얘지고, 어쩔 줄 몰라 덜덜 떨 수 있다. 혹은 방법은 잘 알고 있으나 올바른 자세와 충분한 힘으로 CPR을 하는 사람은 드물다.


 오늘 들려 드릴 일기는 나의 의무 소방 생활 중, 가장 뿌듯했던 날의 기억이다.


 정확한 날짜는 기억이 나지 않지만, 출동 후 서로 돌아가는 길 아이스크림을 잔뜩 샀던 것을 보면 아마 여름이 아니었을까 싶다. 정확히 소방서 바로 앞 사거리에서 출동 무전을 받았다.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있는 풋살장에서 심정지로 의심되는 환자가 발생하였다는. 조금 전까지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행복했던 나는 곧바로 AED(자동제세동기 : Automatic External Defibrillator)를 챙겼다. 심정지 환자는 골든타임이 중요하기에 반장님께서는 사이렌을 켜고 빠르게 달리셨다.


 그나마 현장이 가까워 우리는 3분이 채 되지 않아 도착할 수 있었다. 다만 어떤 이유에선지 풋살장 내부로 들어갈 수 있는 문이 자물쇠로 잠겨있었고, 들것을 옮길 수 있는 통로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다. 다급했던 나와 반장님은 먼저 필요한 장비만 챙겨서 철장을 넘어갔고, 다른 반장님 한 분은 들것을 들고, 풋살장 관리인과 잠긴 문쪽으로 향했다.


 환자는 풋살 도중 갑자기 쓰러졌다고 했다. 반장님은 곧바로 CPR을 시작하셨고, 나는 바로 옆에서 AED를 사용할 준비를 하였다. 다행히 그 사이에 잠겨있던 문은 열렸고 늦지 않게 들것도 도착하였다.


'제세동 필요! 제세동 필요!'


 AED는 심정지 환자를 확정하고, 제세동의 필요를 외쳤다. 주변 모든 사람을 환자에게서 떨어뜨린 후 반장님은 AED를 작동시켰다.


벌컥!


 환자의 팔다리는 잠시 흔들렸고, 이번엔 내가 바로 CPR을 하였다. 그 이후로 한 번 더 AED를 사용한 후 들것에 환자를 옮긴 뒤, 구급차에 실었다. 구급차로 가는 동안 나의 손은 환자의 가슴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CPR은 절대로 멈춰서는 안 되기에, 이동 중에는 올바른 자세가 나오기 힘들지만, 지속적이게 흉부를 압박하였다. 대학병원으로 이송 중에도 반장님과 나는 흔들리는 차량 안에서 번갈아가며 환자에게 CPR을 하였다. 급한 이송이기에 주변 차량을 피해서 가느라 구급차는 심하게 요동쳤고, 그 과정에서 뒷자리에서 반장님과 나는 차에 머리를 여러 번 부딪혔다. 그러나 아픔은 전혀 느껴지지 않았고, 단지 환자의 상태를 알려주는 AED에서 심장이 다시 뛰게 되었음을 알려줄 그래프가 출력되기만 바랐다. 빠른 조치 덕이었을까, 병원 초입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결과는 제세동 필요 없음. 즉, 환자의 심장은 다시 뛰기 시작했다. 환자는 재빠르게 응급실로 향했고, 나는 그제야 구급차 뒤에서 잠시 앉아 숨을 고를 수 있었다.(CPR을 연습할 때와 현장에서 시행할 때는 체력소모의 차이가 크다. 진짜 힘들다.) 그 후로 얼마나 흘렀을까, 병원 측에서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환자는 다행히 큰 문제 없이 회복 중이라고 하였다.


 환자 분은 정말 운이 좋았다. 현장이 소방서 바로 근처였던 것, 다행히 구급차가 돌아오는 중이었던 것(신고현장 내의 서에서 이미 출동 중인 경우, 떨어진 곳에서 출동을 나오므로 시간이 더 걸린다.), 그 덕분에 환자의 발견과 조치가 빨랐던 것. 그 환자는 그날, 시간에게 특별히 선택받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2016.03.10. 심폐소생술로 환자를 살려 받은 표창장


생명의 탄생과 죽음


 삶에서 가장 중요한 두 단어. 그 중 '죽음'을 바라보기에 나는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이 많았다. 그래서 그 사람이 살았다는 것에 더 기뻐했던 것 같다. 소방관은 아니었지만, 나름 많은 현장을 대원분들과 다니면서 마음 한구석에는 정의감과 소신이란 것이 생겼기에 나의 손이 닿았던 사람의 마지막이 결국 죽음이라면 무언가 허탈하고 괜한 죄책감이 들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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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모든 사람을 살릴 수는 없었다.


 다음 일기는 내가 살리지 못한, 아니 살릴 기회도 없었던 죽음에 관한 이야기. 아직도 가끔은 생각이 나서 흠칫하게 하는그날의 이야기를 해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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