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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침대 위 취준생
Apr 14. 2020
그들은 가끔 나보다 어려졌다.
나의 아버지 그리고 어머니
[
소년의
경우
]
27
살
,
지금의
내
나이
,
이보다
더
전에
아버지는
벌써
가족을
부양하였다
.
가족과
떨어져
혼자
사는
나는
나를
책임지기도
버거운데
,
그는
묵묵하게
우리를
짊어졌다
.
아버지에게
내가
가지지
못한
능력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으며
,
그렇다고
엄청난
부를
배경으로
가진
것도
아니었다
.
그저
가족들이
조금이라도
더
행복할
수
있게
그가
닿을
수
있는
곳까지
열심히
걷고
,
걷고
또
걸었을
뿐이다
.
내가
고등학교
3
학년이
되어
수능을
준비할
무렵
,
가정
형편이
조금
좋지
않았다
.
나는
다니던
학원과
과외를
그만두게
되었고
(
사실
나는
학원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철없게
좋아했다
.),
막내는
딱히
먹을
게
없던
냉장고
문을
여닫을
뿐이었다
.
아버지께서는
그
모습에
절망하셨다
.
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던
나에게
기회를
주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
한창
클
나이에
더
많은
것을
막내에게
먹이지
못했던
것에
대하여
그는
자책하였다
.
어느
날
늦은
밤
,
잔뜩
취해
집에
들어온
아버지는
자는
나를
흔들어
깨웠다
.
나는
현관문이
열리는
소리에
이미
깨어있었지만
,
그에게서
풍기는
술
냄새에
애써
자는
척을
하였다
.
몇
번
흔들어
깨워도
내가
일어날
생각이
없자
그는
가만히
옆에
앉아
잠드는가
싶었다
.
조용함에
나는
실눈을
뜨고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
시작은
조용한
떨림이었으나
떨림은
점차
심해지더니
결국
그는
눈물과
함께
터진
마음을
잠든
나에게
고백하였다
.
‘
미안하다
...
미안하다
...’
나는
상상할
수도
없었던
아버지의
눈물이
덮쳐오자
어찌할
바를
몰랐다
.
항상
진지하고
엄하시며
눈물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던
그가
통곡하며
나에게
미안하다고
하고
있었다
.
시간이
지나자
그의
목소리는
점점
희미해졌고
이내
내
옆에서
잠이
들었다
.
나는
창밖이
푸르스름해질
때까지
잠들지
못했고
,
다음날
눈을
뜨자
아무렇지
않게
식탁에서
해장하시는
아버지를
볼
수
있었다
.
다시
내가
알고
있던
그로
돌아오셨다
.
전날
밤
그가
흘린
눈물은
나만
알고
있는
비밀이
되었다
.
가끔
나는
그때
아버지께서
흘리신
눈물을
떠올린다
.
그
눈물의
무게를
두고두고
간직하기
위하여
나는
소년처럼
흔들리던
아버지의
등과
젖은
눈
그리고
‘
미안하다
.’
는
말을
하기
위해서
내려놓은
그의
시간을
기억한다
.
[
소녀의
경우
]
우리
가족은
여행을
잘
다니질
못한다
.
아버지는
휴가를
내기
어려우시고
둘째
아들은
서울에서
나는
부산에서
각자
살고
있으며
막내는
공부하느라
가족
모두가
모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
그래서인지
어쩌다
여행을
가면
지으시던
엄마의
표정이
잊히질
않는다
.
차가
좀
막혀도
,
날씨가
좋지
않아도
종일
웃음을
붙잡아두셨다
.
요즘은
부쩍
막내와
오붓하게
시간을
보내는
일도
느신
것
같다
.
멀리서
안부
전화라도
자주
드리는데
무슨
걱정이
그리도
많으신지
밥은
먹었나
,
반찬은
안
떨어졌나
,
여수엔
언제
내려오나
물어보신다
.
지난번에
본가에
내려가서
괜히
엄마에게
영화나
한
편
보러
가자고
말했더니
날씨가
좋지
않아
집에서
쉬자고
하셨다
.
옛날엔
비가
오더라도
나가는
걸
즐기신
거
같은데
나름
젊다고
생각한
그녀도
나이가
들었나
보다
.
그런
모습을
가까이서
챙겨
드리지
못하는
게
죄송하다
.
가끔
회식이나
친구분들과
모임은
꾸준히
가시는데
노래방에서
재미있게
노시는
모습을
보면
한시름
놓이기는
한다
.
지금
나는
여수로
내려가는
버스
안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
얼마
전
엄마가
내게
줄
것들도
있고
반찬도
좀
가지고
가라고
하셨는데
,
딱히
그
이유
때문은
아니라
그냥
오랜만에
집에
가고
싶었다
.
평소에는
그냥
잘살고
있다고
하면
‘
그래
,
알았다
.’
고
하시던
엄마인데
이번
주에
오라고
하시는
걸
보면
오랜만에
아들내미
얼굴이
보고
싶으신가
보다
.(
그냥
내
착각이라면
내가
엄마를
보고
싶은
거로
하겠다
.)
나는
휴대폰에
엄마를
‘
어무니
’
라고
저장해놨지만
‘
엄마
’
라고
부른다
.
아버지는
아빠보다
아버지로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
같지만
,
이편이
조금은
더
엄마를
표현하는
말
같다
. ‘
아버지
’
라는
단어가
존중의
의미라면
‘
엄마
’
라는
단어가
친근함을
의미한다고
생각하기에
그
포근함을
매번
그렇게
부르고
싶었다
.(
그렇다고
엄마를
존중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
엄마
,
아직은
젊고
싶고
,
나
때문에
또
동생들
때문에
포기해야
했던
것들이
많으신
엄마
.
그래서
우리가
쉽게
즐기던
하나하나에
더
많은
기쁨을
느끼고
즐거워하신
엄마
.
요즘은
하루에
한
번씩은
괜히
연락을
드린다
.
전화가
연결되면
엄마의
첫마디는
항상
‘
왜
?’
였다
.
혹여나
무슨
일이
있어서
전화했나
싶어서
물어보시면
내
대답은
‘
그냥
.’.
매일
똑같은
대답을
전하는데도
전화가
오면
괜히
걱정되시나
보다
.
내
‘
그냥
’
은
그냥이
아닌데
,
나는
열심히
일하러
다니고
있고
,
끼니도
잘
챙겨
먹고
,
놀기도
잘
놀고
있다고
.
그러니
내
걱정할
시간
줄여
좋아하시는
것들
하시라고
,
나
때문에
놓친
시간
이제는
내
시간을
드릴
터이니
가져가시라고
.
없는
연락에
걱정하실까
내가
먼저
연락을
드리는
것이니
당신은
마음
놓으시라고
.
내
‘
그냥
’
은
그냥이
아니었다
.
‘
소녀하다
.’
라는
동사는
없지만
,
우리
엄마는
소녀한
엄마다
.
노래하기를
좋아하시는
,
여행을
즐기시는
,
영화
보기를
좋아하시는
,
내가
모르는
엄마가
젊었을
적
즐기셨던
모든
것들을
아직도
꿈꾸고
좋아하시는
엄마
.
아직은
그리고
앞으로도
내가
보는
엄마는
언제나
젊고
소녀다운
엄마로
남아계실
테니까
.
[
소년과
소녀
]
나는
그의
눈물에서
소년을
보았고
,
그녀의
웃음에서
소녀를
보았다
.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어린
모습을
숨길
줄
알았고
,
우리를
위해
어른으로
살아야
했다
.
언제나
강하고
믿을
수
있는
아버지가
되기
위하여
여린
눈물을
숨겨야
하였고
,
우리들의
웃음을
위해
어머니는
자신의
웃음을
희생하였다
.
그들은
어른이자
나의
부모님이셨지만
,
가끔
나보다
어려졌다
.
다행이었다
.
단단한
마음이
부러져
그가
절망하기보다
소년으로
돌아가
눈물을
흘리고
다시
마음을
다잡을
수
있었음이
,
모든
것을
희생하여
표정이
사라지기
전에
소녀로
돌아가
웃음을
지을
수
있었음이
.
그들은
가끔
어려져
소년과
소녀로
보였지만
,
이는
그들이
가족을
위해
더
큰
어른이
되기
위한
것임을
알았다
.
언제고
그들이
더
늙고
,
나에게도
아내와
아이들이
생기면
그들이
걸었던
길처럼
가끔은
누구보다
어린
소년의
모습으로
나타나리라
.
그것이
내가
가족을
위해
,
더
큰
어른이
되기
위해
해야만
하는
일이라면
더욱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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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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