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elly Apter
2015년 8월 첫째 주 일요일 오후, 에든버러의 시민들은 거리로 몰려나왔다.
에든버러 축제의 대규모 메인이벤트인 카발케이드Cavalcade를 보기 위해서다. 관객들은 차량이 통제된 거리의 양쪽으로 끝없이 길게 자리를 잡았고, 우리는 스타트라인에서 긴 시간 대기를 하고 있었다.
카발케이드란 사전적 의미로 ‘말이나 자동차의 행렬’을 뜻하지만, 다양한 퍼레이드를 지칭하기도 한다. 에든버러의 가장 큰 이벤트였던 이 퍼레이드는 밀리터리 타투Millitary Tatoo의 군악대 행렬, 백파이프 연주자들의 행렬, 슈퍼카 행렬 프린지에 참여하는 공연 중 사전 선별된 공연팀들의 화려한 볼거리가 끝없이 이어졌다. 2010년을 마지막으로 지금은 볼 수 없게 되었지만, 이 빅 이벤트는 공연팀에게 최고의 홍보 기회를 제공했다.
카발케이드와 함께 축제 초반에 공연을 알리기 위한 중요한 행사로 프린지 오프닝 파티가 있었다. 두 이벤트 모두 그해에 참가하는 공연 중에서 극소수만 선별되어 참가할 수 있었고, 언론과 관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홍보 툴Tool이 되었다.
당시 에든버러 경력 6년 차인 나는 익숙한 프린지 스케줄에 맞춰 준비하며 모든 메인 행사에 공연을 선보일 수 있었다. 몇 년간 함께 손발을 맞춘 현지 홍보대행사와도 매년 같은 루틴으로 홍보계획을 수립했다. 우리는 축제 시작 3~4개월 전부터 축제 측 두 이벤트 담당자와 우리 공연의 의상, 분장, 퍼포먼스의 특이점을 어필하고, 거리 퍼포먼스 구성과 짧은 하이라이트 무대 구성을 설명했다. 두 개의 이벤트 모두 제한된 수의 공연을 선보이므로 볼거리와 차별성이 선발의 중요한 키워드가 되었다.
공연을 홍보하기 위한 체계적인 보도자료 배포와 두 개의 메인이벤트 이외에도 축제 초반에는 인터뷰, 포토 콜Photo call, 현지 유명인사와의 콜라보 등 최대한 주목받을 수 있는 스케줄로 언론과 관객의 관심을 자극해야 했다.
현지 유명인사와의 콜라보 무대 중 우리가 매년 빠뜨리지 않고 진행하는 프로그램으로는 BBC공개방송과 머빈 스타터Mervyn Stutter의 ‘픽 오브 더 프린지Pick of the Fringe’가 있었다.
BBC는 축제기간 동안 팝업 시어터를 세우고 다양한 프로그램의 공개방송을 이어갔고, 그란트와 제니스의 인터뷰는 현지인들에게 공연을 소개하는데 큰 도움이 되곤 했다.
1992년부터 플레즌스Pleasance공연장에서 상연하고 있는 ‘픽 오브 더 프린지’는 영국의 유명 코미디언이자 작가인 머빈의 진행으로 매년 매진 행렬을 이어갔다. 90분 동안 진행되는 이 공연에서 머빈은 선별한 7~8개 공연의 쇼케이스와 함께 특유의 재치 있는 인터뷰와 토크를 선보이며 그 인기를 28년간 이어갔다.
홍보마케팅 계획을 수립할 때 그 무엇보다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건 공연의 첫인상, 메인 이미지다.
이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다.
1999년 1,200개의 공연, 2019년 3,800개의 공연을 선보이는 에든버러에서 공연을 알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노출=비용이다. 온라인 광고든 오프라인 광고든 양껏 할 수 있는 환경이란 없다. 정해진 예산 내에서 선택과 집중을 요하는 아웃도어 광고에 이미지만큼 중요한 건 없다.
축제에는 포스터에 있는 유명 배우와 코미디언의 얼굴만으로 매진Sold-out되는 공연도 있고, 호기심을 자극하는 힙한 이미지로 초반 관객몰이에 성공하는 공연도 있다. 물론 마지막까지 흥행을 이어가려면 결국 공연 자체가 좋아야 한다. 어쨌든, 에든버러에 처음 선보이는 공연이 대중의 이목을 끌기 위해서는 흥미를 유발하고 눈길을 끄는 매력적인 하나의 이미지가 필요하다. 너무나 당연한 얘기지만, 그저 관심을 모으기 위해 공연과 전혀 관계없는 이미지를 사용해서는 안 된다.
3월부터 홍보마케팅 관련 준비를 순조롭게 진행하였고, 축제 첫째 주 가장 중요한 메인이벤트와 프리뷰 기사 작업, 포토콜, 인터뷰도 계획한 대로 진행했다면, 이제부터 승패를 가르는 건 오롯이 작품성이다. 전문가의 리뷰와 공연을 본 관객의 입소문이 축제의 중후반 객석점유율을 좌우한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영향력 있는 언론사로는 스콧츠맨The Scotsman, 가디언The Guardian, 타임즈The Times, 리스트The List, 스테이지The Stage 등이 있다. 온라인 언론이 매년 늘어나 공연을 리뷰하는 곳은 많아졌지만, 정작 메인 언론사들이 공연을 리뷰하는 지면은 매년 줄어들고 있다.
에든버러에서 비평가(리뷰어/Reviewer)는 공연을 관람하고 리뷰를 실으며 별점을 준다. 누군가의 리뷰로 작품을 백 프로 판단해서는 안 되지만, 8월 한 달간 상연되는 공연이 3,800개다… 공식 프로그램의 두꺼운 책자를 넘기다 보면 누구나 백기를 든다. 짧은 공연 설명과 하나의 이미지로 알 수 있는 정보는 제한적이며, 축제기간 공연을 관람할 수 있는 시간도 제한적이다.
8월 한 달간 공연장과 공연장으로의 이동시간을 감안하여 매일 최대 7개의 공연을 볼 경우, 관람 가능한 공연의 수는 200개도 되지 않는다. 단순 계산이 그렇다는 말이며, 한 달간 200개의 공연을 관람한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 2000년대 초반, 하루에 3~5개의 공연을 보던 나의 최대 스코어도 100개를 넘지 못했다.
공연을 좋아하고, 공연이 직업인 사람이지만 그렇게 본 공연은 머릿속에서 뒤죽박죽 섞이기 일쑤다. 이 장면이 이 공연에 나온 건지, 이 캐릭터가 이 공연에 있었던 건지, 메모를 들춰보지 않는 이상 나의 기억은 완벽과 거리가 멀다. 요지는 어떤 공연을 반드시 봐야 한다는 특별한 이유가 없는 이상, 일반 관객이 일부러 별점 3개 이하인 공연을 선택해서 보는 경우는 드물다는 얘기다.
최고 평점은 별 5개이다. 영향력 있는 매체에서 받은 별 4개와 5개는 공연을 홍보할 때 가장 큰 무기가 된다. 이는 에든버러에서만 통하는 게 아니다. 축제에서 받은 언론사 리뷰는 다른 해외투어를 연계하는 홍보의 초석이 되며, 초청을 결정한 프리젠터가 현지에서 공연을 홍보하는 기본 자료로 사용된다.
켈리Kelly Apter는 스코틀랜드 최대 일간지 스콧츠맨The Scotsman의 저널리스트이자 비평가이다. 오랜 시간 무용과 피지컬 시어터의 전문 비평가로 활동해 온 그녀는 시대가 지나면서 아트서커스와 캬바레 등의 예술과 엔터의 경계가 모호한 장르도 커버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따뜻한 시선으로 무대를 보는 사람이다. 그녀의 가슴을 거쳐 나온 글들은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는다. 아티스트와 창작진을 이해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묻어나는 그녀의 비평은 그래서 비난이 아니다. 신랄하지 않다. 그렇다고 별점을 무조건 잘 준다는 얘기가 아니다. 그녀의 별점은 평가의 가이드대로 공정하지만, 별점이 낮을 때조차 그녀의 글에는 연민Sympathy이 묻어 있다. 나는 그런 그녀가 공연을 리뷰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에 안도감을 느낀다.
켈리의 스케줄은 축제기간 동안 가히 살인적이다. 몇 개월에 거쳐 공들여 확정했을 리뷰할 공연의 리스트업이 끝나면 날짜와 시간의 저글링이 시작된다. 공연장과 공연장을 이동하는 시간을 고려해서 스케줄을 완성해야 한다. 운 좋게 같은 공연장의 앞뒤 공연으로 일정을 맞출 수 있다면 공연의 턴어라운드 시간인 30분 동안 빠르게 허기를 해결할 수도 있을 것이다. 기본적으로 그녀의 스케줄에는 한 달간 식사시간이 없다.
그녀의 엄청난 스케줄과 나의 (나름) 바쁜 스케줄을 맞추는 작업은 첩보물이다. 운 좋게도 우리는 매년 만남에 성공(?)해 왔다. 각자 봐야 하는 공연의 스케줄을 공유하며, 가능하면 하루라도 같은 공연을 보려고 애쓴다. 이 경우 줄 서서 입장을 기다리는 시간, 앉아서 공연이 시작되길 기다리는 시간, 공연이 끝나고 다음 공연장으로 이동하는 시간까지 짬짬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밀린 1년간의 질문과 대답을 어느 정도 소화해 낼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지는 것이다. 짧은 접선일 경우, 거리가 가까운 공연장에서 각자 관람해야 하는 공연을 기다리는 15분~30분간의 중간 접선이 전부일 때도 있다.
그녀와 있는 순간은 따뜻함으로 충만하다. 가족의 안부를 묻고, 짧고 굵게 최근 근황을 얘기하고, 축제의 규모는 매년 터질 듯 커져가는 데 리뷰하는 지면은 매년 줄어드는 아이러니를 얘기하고, 좀 더 많은 공연을 소개할 수 없는 환경에 탄식한다. 밥 먹을 시간을 없애 한 작품이라도 더 세상에 알리고자 하는 그녀의 진심은 공연을 만드는 사람에게 눈물이 날 것 같은 감사함으로 전해진다.
3년 전, 켈리는 촉촉해진 눈으로 며칠 전 보러 간 공연 얘기를 꺼냈다.
관객이 나 밖에 없었어. I was the only audience.
비평가들은 프레스 티켓을 예약하기 때문에, 공연팀은 어느 언론사의 누가 언제 우리 공연을 보러 오는지 미리 알 수 있다. 그녀가 본 공연의 배우들도 이미 스콧츠맨에서 리뷰어가 온다는 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객석에 한 사람이 앉아 있었으니, 공연팀의 입장에서도 비평가의 입장에서도 이 얼마나 난감한 상황인가…
“다음에 다시 오는 게 맞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어. 나 한 사람 때문에 공연을 해야 하다니… “
비평가는 오롯이 자신의 판단으로 작품의 리뷰를 하지만 다른 관객의 반응을 살필 때도 있다. 어떤 공연에 어느 연령대의 관객들이 폭발적으로 많은 지,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도 공연 리뷰에 포함되는 경우가 있다.
이내 공연이 시작되었고, 그녀는 작은 공연장에서 배우의 숨소리와 떨림을 느끼며 자신의 숨소리나 작은 움직임이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하며 경직된 몸으로 한 시간을 있었다고 했다. 평소에는 관객 틈새에서 공연의 중간중간 방해가 되지 않을 정도의 움직임으로 메모를 하는 그녀지만 이번엔 아무것도 쓰지 못했다고 했다.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이 경직되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프린지는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이다. 공연장별 네임밸류가 있고 상연하는 방식이 다를 뿐, 프린지의 300개가 넘는 공연장 중 많은 곳에서 아마추어 공연도 상연된다. 도전하는 젊은 아티스트의 열정과 가능성, 신선한 무대언어를 만날 수 있는 곳이며, 1947년 시작된 프린지의 정신이 이어지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모두에게 열려 있는 공간. 말은 멋있지만, 아마추어 공연팀이 맞닥뜨리는 건 관객이 없어 공연을 취소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일 때도 있다.
프린지에서 탄생한 유명한 공연과 배우는 셀 수 없이 많다. 세계인이 사랑하는 배우 로빈 윌리엄스는 1971년 프린지에서 스탠드업 코미디로 자신을 알리기 시작했고, 엠마 톰슨은 1981년 풋라이트라는 공연으로 퍼스트 페리에 어워드를 수상하며 이름을 알렸다. 시트콤의 여왕이라 불리는 미란다 하트는 1994년을 시작으로 2005년까지 프린지에서 공연을 올렸고, 어메리카스 갓 탤런트로 유명해진 ‘테이프 페이스’도 프린지 출신이다. ‘스텀프’의 30년 해외투어 역사의 시작도, ‘난타’의 20년 공연의 시작도 에든버러 프린지였다.
그녀는 가능하다면 자신의 스케줄이 허락하는 한 다양성을 담아내고자 한다. 매튜 본의 공연이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와 스코티시 발레의 신작, 그리고 조앤 롤링의 북 리뷰까지 해야 하는 그녀지만, 적어도 프린지 기간만큼은 아직은 이름 없는 공연들의 이름을 확인하고 불러주려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녀의 글에는 자신이 얼마나 전문적이고 어려운 단어를 많이 아는지를 부러 알리려는 의지가 1도 없다. 읽기 편한 일상적인 문체에 자신의 전문가적 소신을 담은 그녀의 글은 그녀의 10대 딸들이 쉽게 읽고 공연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나눌 수 있을 정도의 배려를 품고 있는 듯 보인다.
by 엔젤라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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