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필과 편지_다정한 밤, 편애하는 나의 S에게
편애하는 나의 s, 안녕한 밤인가요?
이곳의 밤은 개구리가 떼창 하고, 농번기에 접어들어 쿰쿰한 냄새가 정겨운 노크를 하는 와중에, 그 많은 별사탕은 누가 먹어치운 건지, 캄캄한 하늘 아래 부족한 낭만은 그대에게 편지를 쓰는 것으로 대신하려 합니다.
우리는 여전히 자주 다투잖아요. 드라마를 보다가도, 잔에 따라진 서로의 알코올 양을 비교하거나 소심한 복수에 낄낄거리면서도, 대화가 난해한 지점을 향해 달려갈 때도 툭하면 삐치고, 화해하고, "내가 싫으냐" 되묻기도 하면서요. 설득이란 걸 해볼라 치면 "어! 이거 가스라이팅 아냐?" 하는 말에 절로 나오는 콧방귀를 흘려보내고 "그런 게 통하긴 하고?"로 응수하는 어제 같은 오늘 오늘 같은 내일이지요.
이렇게나 티격태격할 수 있다니, 재미있을 수 있다니,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니,
아마도 그건, 대지의 기운을 지닌 제가 (뻔뻔하다고 생각하고 있죠? 덕분입니다.) 그대를 몹시 편애하기 때문일 겁니다. 때론 낳아본 적도 없는 다 큰 아들이 생긴 기분으로, 새우깡 같은 그대를 보살피는 기특하고도 애틋한 마음이 있기에 가능한 일입니다. 물론 이런 경우에는 양쪽 이야기를 들어봐야 한다지만 이런 건 대게 쓰는 사람의 특권입니다. 약 오르면 반론해 보시던가요. ✌
편애하는 그대, 반찬 투정 좀 그만해요. 안 먹던 것도 먹어줘요. 불 앞에서 지지고 볶아봤어요? 얼마나 뜨겁게요? 편식 말고 먹어요. 칭찬도 자주 해줘요. 고래만 춤추란 법 있습니까? 저도 춤추고 싶습니다. 그대의 칭찬에는 뼈가 있어, 인색하기가 어휴, 특히 자기 손으로는 라면 밖에 못 끓이면서 음식 맛평이 거의 백종원 선생님 급입니다. 하다 하다 분쇄 후추가 아닌 알 후추를 갈아 넣은 건 동남아 음식 같아 숨참고 인내하며 먹는 기분이라고요? 불과 며칠 전에 지인의 초대로 베트남 필드 고민 중이라면서요? 다 관둬요. 알후추에 예민하게 굴면 거기서 그대가 먹을 수 있는 건 삼시세끼 계란 볶음밥뿐입니다. ᯣ _ ᯣ
하지만 오해는 말아주세요. 그대와 함께 먹을 밥을 짓는 것이 싫다는 것은 아닙니다. 싫기는커녕 콧노래를 부를 정도로 기다려지기도 합니다. 사실 얼마 전 비슷하지만 결이 다른 일로 다툰 후, 요즘도 그때 이야기를 하잖아요. 다툴 땐 맹렬하게 때론 짠맛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는 저지만 제가 그대 눈치를 얼마나 보게요? 그대와 함께하며 깨달은 불변의 진리는 <저 자를 삐치게 하면 나중에 괴로운 건 나>입니다. 뒤끝이 태평양 같은 그대 때문에 가끔 엇나가긴 해도 눈치도 보고, 잔소리도 살살하는 편이니 “나 요즘 왜 이렇게 자주 혼나?” 하는 궁금증은 넣어두세요. 저의 잔소리에는 정성이 있습니다. (삐치고 오래 가면 곤란하니 완급 조절하는 중이랄까요?)
편애하는 그대, 내게 조금만 져주세요. 저처럼 쪼그마한 애를 이겨서 뭐 하겠다고 그렇게 열심히 세요? 제가 감정적으로 우왕좌왕할 때, 논리적으로 쏘아붙이는 것도 것도 그렇지만, 것보다 게임할 때 최고로 너무 합니다. 꼭 그렇게 이를 꽉 깨물고 저를 이겨야 하나요? 한 번쯤 져줄 수도 있잖아요? 패배감의 많은 감정들 중 ‘치욕’이 제게로 올 때면 입꼬리 올라간 그대 입술이 아닌 ‘ㄴ’이 등을 기댄듯한 앞니를 때리고 싶은 욕망이제게로 와 일렁입니다. 그대가 가만 누워 있을 때, 사선에 앉아 살짝 벌린 입술 사이에 드러나는 ‘ㄴ’을 올려다볼 때면 강아지나, 고양이의 하찮은 이빨을 보는 것처럼 귀여워 피식피식 웃다가도 그대가 조금만 미워지면 어김없이 ‘사이좋은 앞니’를 응징하고 싶어 집니다.
비뚤어진 욕망이래도 어쩔 수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생겨먹었으니까요. 도통 그대를 이길 방법이 없으니 꼼수라도 써야겠는데, 타고나길 순발력대장인 그대를 이길 방도가 제게는 정말이지 없네요. 때론 중심을 잃은 깨금발 뛰기로, 회전율 없는 타격감으로, 윙크하는 깜찍한 눈으로 저와의 게임에 임해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겠습니다. 그럼 다가올 게임을 기대해 보겠습니다. 부디 자비를 베풀어주세요. (플리즈으으...( ꃼᯅꃼ ))
한 때는 샤프했지만, 오랜 시간 지켜봐 온 그대는 똑똑한 빙구. 위트 있는 똥쟁이, 얼렁뚱땅 능구렁이, 술꾸러기, 다정한 변태(?) 등등 색채가 다양한 사람이라 그대라는 출구 없는 미로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습니다. 편애하는 그대, 아프지 말고, 건강해요. 다소 잘 삐치긴 해도 지금처럼 다정해요. 또 뭐 있더라? 그래. 말 좀 들어요. 어휴- 시작은 낭만으로 시작했는데 쓰다 보니 어째 포거스를 송두리째 잃은 기분이지만,
나의 주어는 변함없이 그대입니다. 그대가 있어 마음 후달리던 날들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고, 끝없는 잔소리와 위로의 말들과 큰 배움으로 저는 날이 갈수록 뻔뻔하게 귀여워지고 있습니다. 사람은 저 혼자서도 빛날 수 있지만, 곁에 있는 누군가로 인해 조금 더 반짝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다정한 밤- 다정한 그대가 있어 좋은 밤입니다.
오늘 밤도 잘 자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