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는 드라마에 빠져 삼일을 보냈다. 15회짜리 드라마를 삼 일간 몰아쳐서 보니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온 신경이 거기에만 머물렀다. 마지막 화를 보기 전부터 흐르는 눈물을 막을 수 없더니, 오늘 퇴근 후엔 아예 두루마리 휴지를 옆에 두고 팽하니 코를 풀어가며 두 주인공들을 보냈다. 무엇이 그토록 슬펐을까? 어떤 장치들이 이 드라마에 빠지게 만들었을까? 내겐 친구사이에 오래도록 기억할만한 특별한 사건도 별로 없는데 말이다. 그런데 가만가만 기억을 떠올려 보면, 똑같진 않아도 비슷한 경험들이 꽤 있었다.
나보다 공부 잘하는 친구를 이겨보겠다고 밤을 새워가며 열공했던 일, 친구가 가진 자기만의 방이 부러워 시골뜨기가 서울구경하듯이 그 애의 방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던 일이며, 내 손보다도 큰 새우튀김을 먹는 친구에게 어떻게 하면 한 입만 더 얻어먹을 수 있을지 간절하게 고민하며, 그 애가 가진 엄마와 새우튀김이 부러워 풀이 죽었던 일까지. 게다가 그 친구는 피아노 학원까지 다니고 있었으니, 닿을 수 없는 세계.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세상을 나는 그때 보았을지도 모른다. 은중이의 반지하집은 내가 살았던 집과 닮았고, 나 역시 친구를 집으로 초대해 시시콜콜한 농담 따먹기나 라면을 끓여 먹으며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내 삶 속의 나는 때때로 은중이었다가 상연이었다가 그리고 그 둘 중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이기도 했다. 나는 여러 명의 은중과 상연을 친구로 둔 사람이기도 하다. 그리고 영원히 그들을 잃어버린 사람이다. 한두 사람을 깊이 사귀는 편인 나는 누구와 친구가 되든 그 시절엔 그 아이와 최선을 다해 시간을 보냈다. 다른 이는 끼어들 수 없을 정도 단단하게 묶인 우리는 모든 것을 함께 했고 나눴고 공유했다. 그러나 그 아이와 시간이 끝나버리면(새 학년의 시작 같은 일)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거리를 두었으니 그들 중 몇몇은 나에게 상처를 받았을 게 뻔해 보인다. 아쉬워하며 편지를 보내거나 굉장히 반갑게 인사를 걸어오기도 했었는데 나는 새로운 우정에 빠져 그 친구들의 마음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지금 벌 받는 중인 건가? 친구들은 대부분 인천에서 자리를 잡았고 나만 혼자 자방 소도시로 결혼해 왔으니, 이후로 이렇다 할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아이들이 어릴 적엔 아이 친구들의 엄마와 우정이 쌓이긴 했지만, 아이들이 서로 멀어지고 나서 관계는 오래가지 못했다. 처음엔 외로워서 힘들었는데 그런 시간이 길어지니 오히려 혼자인 게 편해졌다. 그 큰 틈 사이로 책이 들어왔고 글쓰기가 자리 잡는 중이다. 인간은 어떻게든 시간을 보내게 되어 있나 보다.
신은 누구에게나 그 사람만의 달란트를 선물해 준다고 했다. 오랜 시간 나에게 준 달란트가 뭘까 궁금해하다가 결론은, "받은 달란트가 없다"였다. 그러다 문득 정말 그럴까? 란 의문이 떠올랐다. 어쩌면 달란트가 있을지도 몰라. 다만 각 개인이 받은 달란트의 가치를 평가하는 건 바로 돈이 되느냐 안되느냐가 중요한 자본주의였을 뿐. 누군가는 외모라는 달란트를 받고 누군가는 인간적인 성숙이나, 손재주를 달란트로 받는데, 지금 세상에서 어떤 달란트가 가장 돈이 되느냐가 중요할 뿐이다. 돈이 안 되는 달란트를 가진 사람은 자기가 가진 게 뭔지도 모른 채 살다가 죽는 게 아닐까? 모두가 공부를 잘할 수 없는데도 그래야 하는 세상. 모두가 키가 클 수 없는데도 그래야 되는 세상. 모두가 잘생기고 예쁠 수 없는데도 그래야만 인정받는 세상. 수만 가지의 달란트 중 살아남는 건 고작 몇십 가지. 나머지 달란트들은 있는지도 모른 체 사라져 가는 중이 아닐까 싶어 슬퍼졌다.
고유한 달란트의 고유성은 인정받지 못하고 돈이 되는 달란트, 삶이 더 나아 보이는 달란트에 부러움 가득한 시선을 보내며 초라하기 그지없는 나란 사람을 더 작게 만들며 살아온 것 같다. 은중은 상연이를 상연은 은중이를 부러워하며 자기가 가진 빛나는 달란트를 잊어버리곤 했다. 미지막에 가서야 서로에게 없던 것이 서로가 가진 것으로 채워지는 관계였음을 알게 되지만, 인생은 드라마가 아니니 나는 끝까지 내가 가진 달란트가 뭔지 모른 채 이 삶을 마감하지 않을까.
도대체 나에겐 뭘 주신 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