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책이 있는 일상 Jun 29. 2023

망가진 다리가 드러나다.

소독실에서 남편의 다리를 보았습니다.

 수술은 총 8번이었습니다.


수술시간이 임박해 오자. 응급실 레지던트는 신랑을 소독실로 옮겼습니다. 당시 소독실은 응급실 바로 옆에 있었고 보호자도 함께 들어가 소독과정을 볼 수 있게 해 주었지요. 레지던트는 신랑의 양쪽 다리를 단단하게 감고 있던 붕대를 가위로 자르기 시작했습니다. 사고 이후 내내 두 다리를 감춰줬던 붕대가 풀리자 살아있는 사람의 다리라고는 볼 수 없을 정도로 처참해진 그의 두 다리가 드러났죠. 피를 얼마나 쏟아냈는지 핏기 없이 하얀 다리는 죽은 사람의  같았습니다. 양쪽 발은 뼈가 부러지지 않고서야 만들 수 없는 방향으로 휘어져 있지요. 다리상태를 보자마자 쏟아지는 눈물과 눈물 때문에 일그러지는 얼굴을 손으로 가리고 화장실로 뛰어들어갔습니다. 그 자리에 쓰러져 울 순 없었으니까요. 아무도 없는 화장실에서 숨죽여 울다가 아내 설움이 폭발하며 큰소리로 울고 말았습니다.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망가진 두 다리를 보고 나서야 현실을 인식한 거죠. 그전까지는 그렇게 많이 다친 줄 모르고 있었던 겁니다. 눈으로 보지 못했으니까요. 울고 있자니 시어머님이 화장실로 들어오셨지요. 왜 여기서 울고 있냐고 하셨지만, 마음은 저만큼 아프셨을 겁니다. 잠깐 서로에게 기대어 울었죠. 아마도 결혼 후 처음부터 지금까지 어머니와 가장 가까웠던 시간은 그때가 아니었을까 합니다.


소독실로 돌아온 저는 그의 다리를 다시 천천히 살펴보았지요. 우선 왼쪽 다리는 무릎 아랫부분에 커다란 홀이 하나 있었어요. 그 홀 안으로 슬픈 빛깔의 뼈가 보였어요. 그 홀을 메우고 있었던 살덩이는 어디로 떨어져 버렸을까요. 그 커다란 상처가 어떻게 메워질까 걱정하며 시선을 아래로 더 내렸습니다. 네 번째 발가락과 세끼 발가락의 상태가 좋지 않았어요. 첫 번째 마디 중간정도까지가 베어지고 흐르던 피가 굳어 시뻘건 딱지를 이루고 있었죠.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더 심각했습니다. 발목과 무릎을 연결해 주는 뼈가 살갓을 뚫고 밖으로 나와 있었죠. 유리병이 깨질 때 만들어지는 뾰족한 가시처럼 살갓을 뚫고 나온 뼈는 거칠어 보였습니다. 복사뼈 근처에는 꽤나 넓은 부위의 피부가 벗겨져 상처가 심했죠. 밖으로 나온 뼈 바로 위쪽의 살점도 떨어져 나가 작은 홀이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 안으로는 또 슬픈 빛깔의 뼈가 보였어요. 저는 보다 울고 울다가 보고 가만히 보고 또 가만히 울며 남편의 다리가 소독되는 과정 내내 곁에 있었습니다.  밖으로 드러나진 않았지만 그의 넓적다리를 지탱해 주던 대퇴골 역시 유리파편처럼 으스러져 있었어요. 그건 수술 후 레지던트가 엑스레이를 보여주면서 설명해 줘서 알게 되었습니다. 수많은 조각으로 쪼개진걸 일일이 찾아서 붙였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커다란 뼈가 얼마나 큰 충격을 받은 걸까요?  그의 다리가 받은 충격에 그의 마음은 또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을까요?


레지던트는 스무 병이 넘는 소독약을 그의 다리 구석구석에 뿌렸습니다. 맨 처음 뿌렸을 때 그는 통증 때문에 몸을 살짝 움직이기도 했어요. 그렇지만 이내 아무 느낌이 없는 사람처럼 누워있었죠. 통증이 사람의 의식을 이길 만큼 강해지면, 의식은 꺾이고 마는 것 같았습니다. 저는 두려운 마음에 그가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발가락을 움직여보라고 했어요. 죽은 다리가 살아있는지 확인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는 희미한 힘으로 두 발의 발가락을 움직여 보았어요. 희망이 온통 거기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우리는 그의 움직이는 발가락에 안도하며 마음을 쓰러 내렸습니다. '그의 발가락이 움직여. 살아 있어. 살아 있는 다리야'


소독을 하던 레지던트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습니다. 소독약을 따고 붓고 또 붓고 또 붓는 기나긴 시간 동안 그도 애를 많이 써준 것이지요. 소독을 마치자 깨끗한 붕대로 두 다리를 다시 봉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수술이 시작될 그 시간을 항해 일분을 십 분을 한 시간을 떠나고 있었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 내가 있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