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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Jun 22. 2023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곳에 내가 있었다.

인생은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일을 예고 없이 방영한다.


갓길을 이용한 앰뷸런스는 1시간 20분 만에 병원에 도착했다.

 응급실에는 담당 의사와 아가씨의 남편이 기다리고 있었다. 전화로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던 병원은 다시 나를 부르며 사고 경위를 물어왔다. 사고는 상대편의 100프로 과실이었다. 중앙선 침범, 역주행이었으니깐. 코너길이였고 일 차선 도로였다. 코너를 돌자마자 남편은 자기차 앞으로 달려오고 있는 차량을 발견했지만, 핸들을 돌릴 시간조차 없었다고 했다.  상대편 차는 앞이 기다란 리베로형 트럭이었고, 신랑은 일반봉고였다. 범퍼가 기다란 차가 앞이 짧은 차를 들이받으니 그의 차는 형체를 분간하기 힘들 정도로  찌그러졌고, 찌그러진 차량은 그의 다리를 사정없이 뭉게 버렸던 거다. 약 1~2초간은 멍했다고 한다. 그리곤 태어나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통증이 그를 엄습해 왔고, 그는 수분 간 정신을 잃었다.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그를 살폈지만 구경만 하는 듯한 모습에 그는 119를 부르라며 소리쳤다 한다.


" 씨발. 119 불러!! "


누구인지도 모를 사람들에게 그가 내뱉은 말은 두려운 현실을 잊고 싶은 외침이었으리라. 사고를 낸 사람은 나이 지긋한 어르신이었는데, 갈비뼈 몇 개만 부러지고 다른 상처는 없다. 왜 중앙선을 넘어왔는지. 끝내 이유를 밝히지 않으셨다. 졸은 것도 아니고 음주운전도 아니라니.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해할 수 없으니 분노가 치밀었다.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게 인생이라는 걸 깨닫기까지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돌이켜보면, 막내딸인 내가 태어난 지 1년 만에 엄마가 돌아가신 일도, 일곱 해가 지나 아버지마저 돌아가신 것도 모두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우리는 때때로 설명할 수 없는 일이 설명되기 바라지만, 어떤 것도 밝혀내지 못한다. 그 일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겪고 견뎌만 하는 시간은 불편한 방문객처럼 불쑥 찾아온다.


그러나 사고 난  남편의 두 다리를 자세히 보지 못했기 때문에 우리는 설명과 납득이 가능한 삶 속에 있다고 믿고 있었다. 응급실 도착 후 확실했던 건, 상대방과실 100프로, 가해자 차량이 종합보험에 가입되어 있다는 것, 그로 인해 병원 측에서는 우리를 받아들이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그 둘 중 하나라도 모자랐다면 우리는 또다시 다른 병원을 찾아 헤매야 했을지도 모른다. 병원은 환자로 돈을 버는 곳이니, 확실히 돈이 되냐 아니냐가 우선순위였다. 남편에 관한 인적 사항을 기록하고 수술이 준비되기까지 응급실에 대기하고 있어야 했다. 당시 의식이 오락가락했던 남편은 의식이 돌아올 때마다 화장실을 가야 한다고 상체를 번쩍번쩍 들어 올렸다. 으스러진 뼈들이 잘못될 수 있는 상황이라 절대 움직여서는 안 될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남편은 자신의 상태를 인식하지 못했다. 어머님과 나는 그런 신랑을 진정시키기 위해 상황을 설명해 주려고 애썼다. 그럴 때마다 그는 다시 눕곤 했지만, 몇 번이고 화장실을 가야 한다며 일어나 화를 내거나, 소리를 질렀다.

 

그가 가만히 누워 몽롱한 의식을 유지하고 있을 때, 응급실이 갑자기 소란스러워졌다. 몇 명의 의사와 간호사들이 급박하게 이동식 침대를 끌고 들어왔고, 그 뒤쪽엔 가족들이 겁먹은 표정으로 따라왔다. 한두 명은  흐느끼고 있었다. 의식을 잃고 쓰러진 사람이었다. 이미 숨이 멎은 상태, 의사들은 큰소리로 떠들며 CPR를 실행했다. 한 번, 두 번, 세 번, 세 번의 시도 끝에 환자의 호흡이 돌아왔다. 가족들은 그제야 안도했고, 그때까지 울지 못하고 겁을 먹고 있던 사람은 그제야 눈물을 터뜨렸다. 몇 분이 지나자 또 다른 환자가 실려왔다. 아까와 같이 의사들은 긴급한 목소리로 CPR를 시도했다. 한 번, 두 번,,,,,세 번. 그러나 이번엔 아까와 같은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 환자의 숨은 그대로 멈췄고, 죽음이 그 사람의 몸으로 들어와 모든 것을 정지시켜 버렸다. 가족들은 오열했다. 응급실 분위기는 더없이 침울해졌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그곳에 내가 있었다.


 어제만 해도 아무 일 없이 옆집 친구와 수다를 떨고 11개월 된 아들과 숨바꼭질을 하고, 게임방에 다녀온 문제로 남편과 실랑이던 내가. 서울의 한복판, 대형 종합병원 응급실에서 그가 흘린 피가 덕지덕지 뭍은 옷을 입고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른 채 .


수술이 언제 시작될지. 내 앞에 일어난 일이 진짜인지, 언니네 집에 맡겨두고 온 아이는 괜찮을지. 신랑의 고통은 얼마나 클지하는 생각들이 수없이 머릿속을 헤집고 다니는 동안 나는 어떤 표정으로 그곳에 앉아 있었을까? 신랑폰으로 간호사가 전화를 걸었던 오후 2시 10분 전까지만 해도 똑같았던 일상이 사라지고 완전히 다른 시간대로 이동해 버린 나와 그의 삶이 원래자리로 돌아오기까지 더 긴 시간이 더 긴 아픔이 기다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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