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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책이 있는 일상 Aug 31. 2023

좀비 영화와 십자수

병원에서 시간은 지루한 수업시간처럼 흘러갔다.

더 이상 할 수술이 남아 있지 않자 대형병원에서는 퇴원을 종용했다. 해야 할 치료는 모두 끝났으니 이제부터 뼈가 붙고 살이 오르고 상처가 치유되기를 기다렸다가 정기적으로 부르면 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신랑이 다시 걷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얼마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았던 때라 그 긴 시간을 보낼만한 병원을 여기저기 알아보고 있었다. 결혼하기 전까지 살았던 인천에 새롭게 개원한 재활병원이 눈에 들어왔다. 일단 깨끗한 게 가장 좋았다. 게다가 새로 개원했으니 환자들에게 친절할 거란 계산은 자연스러웠다. 예상은 적중했고, 예의 바른 직원이 엠블런스를 끌고 와 우리를 옮겨주었다. 큰 병원으로 정기 검진을 갈 때마다 왕복으로 태워주는 일도 잊지 않았다. 물론 그 모든 것은 보험 처리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지금부터는 시간과의 싸움이었다. 신랑은 다시 일어서도 된다는 의사의 진단이 내려지기까지 할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처방해 준 약을 먹고 시부모님이 공수해 주는 뼈에 좋은 음식과 홍화씨를 열심히 먹었다. 나는 나대로 그의 옆을 지키다가 혼자서 대소변처리가 가능해진 이후로는 간간이 아이를 보러 집에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병원에서 보내는 시간은 나른한 고통의 시간이었다. 자유롭지만 그 자유를 누릴 수 없는 감옥에 갇힌 기분이랄까. 어디를 가도 상관없었지만, 반드시 시간 안에 병원에 돌아와 있어야 했고, 무엇을 해도 상관없었지만, 같은 병실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은 삼가야 했다. 사생활이 보장되지 않는 자유와 보이지 않는 도착지점을 기다리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일이 일상이었다. 그 시간을 버텨야 했기에 우리가 선택한 건 좀비영화였다. 내가 아이를 보러 가는 시간 동안 그의 친구가 되어줄 노트북을 구매했었는데 함께 있을 때는 주로 영화 보는 데 사용했다.



늦은 밤 병실 불이 꺼지면, 커튼을 치고 새어나가는 노트북의 빛을 베개로 막고 이어폰을 나눠 낀 후 좀비영화를 감상했다. 새벽의 저주부터 레지던트이블 시리즈까지 당시 나왔던 좀비영화란 영화는 거의 다 찾아서 봤다. 왜 좀비영화였는지 당시엔 생각해보지 못했는데 지나고 보니 지루함이 지나쳐 시간이 정지된 듯한 병원생활에 활력을 주고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는 격한 감정이 저절로 분출되니, 좀비영화야 말로 병원생활을 보내는데 최적화된 장르였던 것이다. 어떤 행동이든 계속하면 면역이 되듯이 겁이 많았던 내가 좀비영화를 보고 또 보니 웬만한 공포영화에는 심장이 움츠려들지 않았다. 눈을 90프로 정도 가리고 봐야 겨울 볼 수 있었던 장면을 아무렇지 않게 보게 되고, 무서워서 도저히 못 본다고 장담했던 영화들을 찾아가며 다음번 시청목록에 넣어두곤 했다.  물론 면역력이 떨어진 지금은 다시 예전으로 돌아왔지만 말이다.


밤에는 좀비영화로 시간을 버릴 수 있었다면, 밤보다 길고 더 지루했던 낮시간을 버티게 했던 건 십자수였다. 남편의 사고 전에 사두었던 가로 45센티, 세로 50센티짜리 대형 십자수를 병원으로 가져와 보호자용 간이침대에 앉아 한 땀 한 땀 채우다 보면, 어느새 점심 먹을 시간이 또 어느새 저녁 먹을 시간이 되곤 했다. 십자수를 할 때면, 병실 사람들과 불필요한 대화에서 벗어날 수 있었고, 신랑과 있었던 소소한 다툼 때문에 느꼈던 짜증도 가라앉았다.  입원 기간 내내 열심히 하다 보니 십자수는 완성되었고, 지금은 우리 집 벽 거실 한쪽을 장식하고 있다. 이제는 눈이 나빠져 대형 십자수에 다시 도전할 용기가 나지 않지만, 손수 완성한 예술품인 것처럼 볼 때마다 기분이 좋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병원생활은 지루하고 힘들었다. 세상에서 떨어져 나와 외딴 마을에 잘 모르는 사람들과 억지로 살아가야 하는 기분이 오래도록 계속되었다. 약품 냄새와 갇혀 있던 사람들의 우울함과 외로움이 늘 병실 분위기를 장악하고 있었다. 우리 역시 그 감정에 자주 매몰되곤 했다. 지금도 병원이라면 무조건 피하고 싶다. 하지만 좀비영화와 십자수에겐 여전히 고맙다. 덕분에 버틸 수 있었다. 덕분에 즐거웠던 시간도 있었다. 그리고 그 모든 게 추억이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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