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 속에서는 아빠와 저, 오직 두 사람만 도드라져요(p.15).
부모와 자식. 서로가 서로의 우주인 시절이 있다. 그러나 모든 자식은 언젠가는 부모의 품을 떠나 홀로 나아간다. 마치 지구와의 교신을 멈춘 채 먼 우주를 유영할 보이저(Voyager)호처럼.
김영하의 단편소설 「오직 두 사람」은 아버지를 떠나가는 딸의 이야기다. 이 소설은 2017년 문학동네에서 발간된 동명의 소설집 표제작이다. 지난해 출간된 SF 장편소설 『작별 인사』(복복서가, 2022)에서는 휴머노이드라는 소재를 통해 인간성과 미래에 대한 김영하의 사유를 엿볼 수 있었다. 『오직 두 사람』은 이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독자에게 다가온다.
「오직 두 사람」은 아버지의 죽음을 앞둔 주인공 현주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그녀는 아버지의 병실에서 지나온 세월을 돌아본다. 그녀의 아버지는 교수였다. 학교 공부 외의 교양을 소중하게 여기고 지덕체를 고루 갖춘 지식인. 그런 아버지의 사랑을 현주는 다른 형제들보다 더 유난하게 받으며 자란다. 취향도, 대학도, 전공도, 장래 희망도 아버지의 뜻대로 정해 온 그녀. 자식들의 진학과 취업, 아버지와 어머니의 이혼으로 인해 가족은 흩어지고 결국 아버지 곁에는 현주만 남는다. 그리고 그녀는 ‘교양인’ 아버지의 여러 이면을 보게 된다. 하지만 아버지와 거리 두기가 쉽지 않다.
저에게는 아빠가 모국어예요. ...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아니에요. 그냥 운명 같은 거예요(p.53).
현주는 아버지라는 ‘모국어’의 문법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고 그것을 유일한 언어로 지켜왔다. 하지만 아버지와 나누던 밀어(密語)가 사실은 소멸을 앞둔 폐어(廢語)였다는 것을 알게 된 후, 그녀는 이제 새로운 언어를 배우려 한다. 그것은 곧 “한 번도 살아보지 않은 삶(p.58)”이다. 그래도 그녀는 뚜벅뚜벅 나아가보려 한다.
어른이 되어 부감으로 부모를 바라볼 때 그제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아버지와 물리적 거리라도 두어보려 한국을 잠시 떠났을 때. 누구라도 답답해할 남의 부녀 이야기를 들으며 기시감과 당혹감을 동시에 느낄 때. 그리고 어떠한 고백도 화해도 없이 병상에 누운 아버지의 작고 초라한 몸을 멀찍이 바라볼 때. 그때 현주는 자기 자신을 상실해 온 과거를 돌아본다. 그리고 아버지의 위성으로서의 운행을 멈추고 홀로 나아간다.
우주를 탐사하던 보이저호는 지난 1990년에 잠시 카메라를 돌려 지구를 포함한 태양계 여섯 개 행성의 가족사진을 찍는 데 성공한다. 61억 킬로미터 떨어진 거리에서 본 지구는 그저 ‘창백한 푸른 점(Pale Blue Dot)’에 불과했다. 그리고 보이저호는 다시 기수를 돌려 원래의 항로대로 나아갔다.
이 소설은 아버지의 인력과 중력에서 놓여나는 딸의 이야기다. 그리고 이 세상 모든 ‘보이저호’들에게 문학이 보내는 묵묵한 응원이다.
* 인용문의 페이지 번호는 큰 글자책 기준입니다.
** ‘보이저호’와 ‘창백한 푸른 점’의 은유는 이를 아이의 성장을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에 대입하여 서술한 천문학자 심채경의 『천문학자는 별을 보지 않는다』(문학동네, 2021)를 참조하여 쓴 것입니다.
*** ‘보이저호’는 보이저 1호를 가리키며, 참고로 보이저 1호가 지구와 통신을 지속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마지노선은 2030년이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