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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대로 Apr 06. 2019

공대생이 대기업에서 살아간다는 것

회사가 필요로 하는 인재인가, 아니면 쓰고 버리는 노예인가 

한 번의 대기업 퇴사, 그리고 두 번째 대기업 입사.

입사를 위해 자신의 경력을 끊임없이 포장하여 나열한다(옆에 앉은 지원자보다 뛰어나다는 것을 어필해야 살아남는다)

지방의 한 공대를 졸업하고 이름만 들으면 다 아는 대기업에 입사하여 남들이 보면 꽤나 괜찮은 생활을 보내고 있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의 대기업 일상은 남들이 생각하는 만큼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이렇게 불평불만이 가득한 나에게도 대기업이란 존재는 고마움이 늘 함께하기도 한다. 특히 월급, 복지, 지리적 위치 그리고 사소한 혜택들은 취업준비생들에게는 큰 장점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필자가 다니고 있는 대기업이 제공하는 장점을 살펴보도록 하자.


첫째, 월급

26살 남자, 대학 졸업식에 회사 로고가 크게 박힌 현수막도 달아준다. 매우 자랑스럽다. 주변에서 취업성공에 대한 부러운 시선도 느껴진다. 아직 신입사원 연수 밖에 끝내지 않은 그에게 회사는 3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통장에 넣어준다. 이 돈이면 2년, 아니 1년 반만 모으면 나도 BMW, BENZ 타고 다닐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든다.


둘째, 복지

지방 출신인 나에게 서울이라는 곳은 연고가 없다. 어디에 방을 잡을까. 월세가 저렴하다는 대학 주변 홍대, 신촌? 원룸, 투룸, 오피스텔? 고민할 필요가 없다. 이런 나를 위해 회사에서 기숙사를 제공한다. 물론 기숙사가 공짜는 아니지만 그 어떤 보증금도 필요 없으며 일반적인 월세에 비해 매우 저렴하고, 1인실에 개인 화장실까지 다 있다. 회사에서 아침, 점심, 저녁밥도 다 준다. 기숙사에서 먹어도 되고 회사에서 먹어도 된다. 무료다. 식비 0. 기숙사에서 회사까지 출근 셔틀버스가 있다. 아침에 20분마다 버스가 온다. 교통비 0. 지방러에게 이보다 좋을 순 없다. 가족도 멀리 떨어져 있는데, 타지에서 아프면 어떡하지? 입사와 동시에 건강보험가입이 되므로, 아프면 아무 병원에 가면 된다. 입원해도 된다. 영수증과 환급 신청서만 작성하면 회사에서 돈을 전액 지원해 준다. 심지어 가족까지 커버해 준다.


셋째, 지리적 위치

회사는 광화문에 위치하고 있다. 바로 앞에 경복궁이 있어 한복 입고 돌아다니는 외국인 관광객도 쉽게 볼 수 있다.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이 지키고 있는 광화문 광장에는 각종 행사가 자주 열린다. 작년에는 퇴근하고 나오면 월드컵 열기로 가득함을 느낄 수 있었다. 회사에서 보면 저 멀리 청와대가 보이고 주변엔 북촌 한옥마을, 인사동, 종각, 을지로, 명동, 혜화, 신촌 등 번화가와 가까워 맛집, 카페를 쉽게 접할 수 있다. 또한 멀지 않은 곳에 서울역이 자리 잡고 있어 교통편리성이 매우 좋다.


그리고, 소소한 혜택들

회사를 입사하면 신용카드를 발급해 준다. 그게 사원증이다. 따라서 연회비는 회사에서 대신 납부해 준다. 이 신용카드의 가장 큰 혜택이라 하면 인천공항 마OO 라운지를 무료로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다른 혜택은 유명 대기업 OO렌터카 이용 시 기업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점. OO기업이라고 말하면 엄청난 할인율로 O카, 그O카 등 쉐어링카 보다 저렴하게 이용 가능하다. 그 외 더 있지만 생략하기로 한다.

취업을 준비하면서 누구나 대기업에서 일하기를 꿈꿨을 것이다.

이렇게 나열해 보면 대기업에 다니면 엄청나게 좋구나. '나도 열심히 해서 대기업에 입사해야지' 그리고 '친구들과 친척들에게 자랑해야지'라는 생각 갖게 될 거다. 


결론은 아니다. 틀렸다. 나도 거기에 속았으니까


대학 4학년 취업준비생 시절, 처음엔 아무 대기업이라도 좋으니 합격만 시켜주면 노예처럼 일해도 소원이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어느 대기업에 합격 후, 정말로 노예가 된 나는 항상 노예 탈출을 외치게 되었다. (사람이 참 간사하다는 것을 느낀다) 왜 나는 남들이 보면 부러워할 만한 이곳에서 탈출하고 싶어 하는 가? 

공대생이 대기업에서 살아가면서 바라보는 단점을 나열해 보자.


첫째, 사공이 너무 많다

입사를 했다. 첫 일을 받았다. 나의 첫 번째 프로젝트다. 심장이 두근 두근하다. 저기 밑에 내 사인(signature)도 넣을 수 있다. TV에서 보니, 만년필로 결재를 슥슥하는 게 그렇게 멋있어 보였다. 그래서 사인은 역시 만년필이지 하고 입사와 동시에 만년필도 샀다. 그런데 일을 하려 보니 나 말고는 죄다 부장, 차장들이다. 뭔가 불안했지만 직감은 언제나 그렇듯 틀리지 않았다. 모두에게 업무용 PC는 지급되어 있지만, PC는 관상용이요 인터넷 기사 읽기용이지 절대 업무용이 아니다. 그들에게 업무는 입으로 시키는 것뿐. 엑셀, 파워포인트, 워드는 실행조차 하지 않는다. 아니할 줄 모른다. 자료를 만들어 내야 하는 실무진이 턱없이 부족하다. 그렇게 여러 주둥아리들로 시작된 프로젝트는 어느새 산으로 향하고 있었다.


둘째, 보수적인 사람을 요구한다

서류 작성 및 자료 취합은 나 같은 저 직급자 실무진이 한다. 조금 더 효율적인 방법, 업계 트렌드를 반영한 디자인으로 작성하였다. 나는 그것을 '창의적이다, 혁신을 위한 노력'이라 말하지만 위에 높으신 분들은 그저 '튄다', '기존과 다르니 틀렸다'로 치부한다. 그렇다. 회사는 애초에 사람을 뽑을 때, 우수하고 뛰어난 사람을 뽑는 게 아니라 회사가 삼각형, 사각형 틀로 생겼으니 거기에 잘 맞아 들어가는 사람을 뽑는 것이었다. 간혹 이러한 보수적인 의사결정을 참지 못하고 폭발해 버리는 직원들이 있다. 그렇지만 회사는 그 사람들을 바보로 만든다. 그러면 주변에도 함께 도와주면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지만, 도울 수 없는 환경이다. 왜냐하면 나도 거기에 동참하게 되면 나 또한 무리에서 배척되고 이상한 사람으로 만들어 버린다는 분위기가 매우 팽배하기 때문이다.


셋째, 당연한 희생을 강요한다

앞서 말했듯이 회사에 부장, 차장이 너무 많다. 내가 그들에게 드는 공통적 생각은 단 한 가지. '집에 그렇게 일찍 가기 싫은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집에 갈 생각을 안 한다는 것이다. 회사의 공식 업무 종료는 오후 5시 30분. 사내 메신저를 이용해 오후 5시부터 혈중 알코올 농도를 함께 높여볼 직원을 구해본다. 거절해도 하이에나처럼 정말 질기게 달라붙는다. 더 심한 건, 한 달에 한 번 밖에 없는 공식적인 회식이라며 불참자 없이 전원 참석하라고 할 때이다. 지난주도, 이번 주도 번개 회식을 계속했는데, 뭐가 한 달에 한 번 밖에 없는 건지 도저히 모르겠다. 심지어 주말에는 본부 전체로 등산을 간다. 가끔 돼지 머리를 들고 가서 회사가 잘 되길 바라며 기원제도 한다. 면접 때 '워크&라이프 밸런스'에 대해서 어떠냐고 물어봤다. '라이프'도 중요하지만 '워크'가 기반이 되어야 한다는 말 한 게 지금 와서 보면 나의 치명적 실수라고 생각된다. 덕분에 이런 대기업에서 일하고 있으니 말이다. 요즘은 주 52시간 법이 시작되면서 시스템적으로 업무를 할 수 없게 막아 두었다. 일찍 출근하여도 컴퓨터를 사용할 수 없고, 퇴근시간 이후에는 컴퓨터가 작동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온갖 편법을 동원하여 시스템을 무너트려 계속 일하게 한다. 이쯤 되면 대기업집단이 아니라 범법행위를 자행하는 범죄 집단이라 해야 할 것이다.


넷째, 지들이 최고인 줄 안다

모든 자료에는 항상 동종업계 비교가 들어간다. 업계 대비 xx% 뛰어남. 업무보고에는 항상 개선사항이 난무한다. 당초 대비 변경사항을 반드시 강조한다. 이쯤 되면 기존에 해오던 것들은 단점들만 존재하는 쓰레기였던 건가라는 생각이 든다. 실적을 위한 변경/개선사항이 너무나 자주 있다 보니 매번 찾아보아야 하고, 내 손안에 있는 자료가 정말 최신자료인지 헷갈릴 때도 있다. 임원 회의의 결론은 항상 다음과 같다. 

'업계 통틀어 보니 실력은 우리가 최고'

개선사항 너무 많다. 비교는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결국 내 실적이오, 내 자랑이다.


다섯째, 이 모든 단점을 숨기려 애쓴다

하루는 회사가 시끌해졌다. 알고 보니 이런 불평불만을 누군가 블라인드 앱(익명으로 기업에 쓴소리 할 수 있는 게시판 앱)에 작성했다. 회사가 왈칵 뒤집어졌다. 결국 회사 임원 회의에서 글쓴이가 누구인지 찾아내라는 지시까지 내려온 모양이다. 하지만 찾을 수 없다. 회사는 다른 방법을 쓴다. 해당 게시글을 '부적절 게시물'로 신고하여 다른 사람들이 읽을 수 없게 게시판에서 내리는 것이다. 이 방법에 인사팀과 각종 핵심 부서 사람들이 동원된다. 팀 회의에서는 팀장이 직원들에게 블라인드 쓰냐고 물어보고 직원들에게 회사 내용이 외부로 흘러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당부한다. 상처가 있으면 치료할 생각은 하지 않고 아픈 부위를 도려내고 있으니 여기저기서 불평불만이 쏟아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기업은 취업준비생들에겐 희망이며, 늘 꿈꾸는 곳이다. 나도 그랬다. 멋진 정장을 입고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일하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웠다. 그런데 어느덧 대기업 5년 차.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여기서 계속해서 톱니바퀴로 굴러가다 보면 결국에는 승진하고, 그 톱니바퀴가 닳아서 필요 없어지면 퇴직을 하게 될 것이고, 치킨집 창업을 알아보는 수순을 밟게 될 것이다. 그게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내가 생각한 나만의 미래는 아니다. '회사일 빼면 사회에서 내가 잘하는 게 뭘까?'라는 불안감이 가득했다. 그게 내가 이 글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보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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