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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대로 Apr 06. 2019

공대생이 대기업에 합격하는 방법

공돌이의 참 쉬운 대기업 취업. 그 안에 숨겨진 치명적 단점은?

지방 한 공대를 졸업한 나에겐 대기업 취업은 참 쉬웠다고 말하고 싶다. 합격 공식이 있었기 때문이다(후반부 언급). 물론 개인마다 기준은 다르지만 내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를 '대기업의 경제 구조'를 참고하여 설명하고자 한다. 그리고 그 안에는 입사 전까지 몰랐던 치명적인 단점도 포함되어 있다.


고등학교에서 제일 싫어하는 과목이 뭐냐고 묻는다면 나에겐 '사회'와 '역사'였다. 시대순, 역사적 사건들을 모두 외우는 게 고통스러워서 그냥 이과를 선택했다. 그렇게 고등학교를 졸업하면서 자연스럽게 공대로 진학했다.


주어진 선택권은 공대에서 어떤 전공을 공부할 것인지에 대한 것뿐, 경영학과나 경제학과와 같이 문과를 대표하는 전공을 선택할 생각은 그 당시 한 번도 하지 않았었다(조금 후회하는 부분). 공대에서는 여전히 

'전. 화. 기'가 강세였다. 전자(전기), 화학(화공), 기계. 이들 전공은 취업 3 대장이라 부르며 졸업과 동시에 취업은 당연히 될 것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그중 나는 전자를 선택하였고, 그렇게 남녀 비율 9:1로 슬프게 학교생활을 시작했다.

취업의 시작은 서류전형(자기소개서)으로 시작된다

남녀 비율 5:5(경영대학), 이상적인 캠퍼스 생활을 늘 부러워하던 공대생들도 문과 친구들의 부러움을 받기 시작할 때가 있었다. 4학년 2학기에 취업준비를 하면서부터다. 첫 단추는 서류전형. 기업에서 요구하는 기본적인 인적사항을 작성한 후,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여기에서부터 공대생과 상경계 대학생들의 명암이 확실히 갈린다. 


여기서부터는 앞서 언급한 한국에서의 '대기업의 경제구조'를 함께 설명해야 이해가 쉽다. 

우선 대한민국의 1-10위까지 대기업 그룹을 나열해 보자. 한 번씩 다 들어본 이름일 것이다.

1. 삼성 (삼성전자)

2. 현대자동차 (현대자동차)

3. SK (SK텔레콤)

4. LG (LG전자)

5. 롯데 (롯데백화점)

6. 포스코 (포스코 제철소)

7. GS (GS칼텍스)

8. 한화 (한화화약)

9. 농협 (농업 및 금융)

10. 현대중공업 (조선업)


10개의 대기업을 나열했고, 괄호 안에는 그 그룹을 대표하는 부문을 적었다(예를 들어 LG라고 하면 LG전자를 당연히 먼저 떠올리지, LG생활건강을 떠올리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중 5위 롯데와 9위 농협을 제외한 8개의 대기업 그룹이 제조, 생산을 중심으로 하는 기술 기업이라는 것이다. 다르게 표현하면 공대생 입장에서는 지원할 대기업도 많고, 대기업들 또한 기술이 필요한 직원 채용이 훨씬 더 많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과거에 비해 생산 자동화 그리고 로봇이 인력을 대체하게 되었다곤 하지만, 제조업과 수출로 성장한 한국에서 어떤 재화를 생산하는 데 있어 여전히 기술인력이 많이 필요함은 당연하다.

기술직군 채용 규모가 직종 무관의 일반 행정 직군보다 크니 서류전형의 합격률도 높다

물론 대학교를 갓 졸업한 공대생에게 기업에서 필요로 하는 무슨 특별한 기술이 있겠냐만은(대학에서 무엇을 전공했든 입사와 동시에 처음부터 새로  배워야 하며, 대학교 때 배운 내용은 그저 학문에 지나지 않으므로 실무에 직접적으로 사용되는 일은 매우 낮음. 따라서 사실 문과 출신의 졸업생들을 채용해도 되지만) 최소 공학사라는 학위는 있으니 공대생을 대거 채용하는 것이다. 마치 토익 900점이라 해서 진짜 영어실력이 뛰어난 건 아니지만, 그래도 없는 사람보단 나으니 선호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8조각(기업 수 & 채용 TO)으로 이뤄진 피자 한판에 대략 7조각이 공대생에게 할당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들에게 취업의 문은 문과생들에 비해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고 볼 수 있다. 1조각의 피자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문과생들이 경쟁하는 것에 비하면 말이다.


여기 짚고 넘어가야 될 부분은 '공대생들에게 열린 기회가 더 많기 때문'에 합격하기 쉽다는 말이지, 얼렁뚱땅 최소한의 노력도 없이 지원해서 합격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필자는 지방의 한 공대를 졸업했고, 학점 4.0 이상(4.3만 점), 토익 800점 중반,  스피킹 IM2(OPic)의 점수로 지원했었다. 다른 기사 자격증이나, 인턴경험, 대외활동 경험도 전무하다. 나열해 보면 특출 나는 건 없지만 그렇다고 어디 부족한 스펙도 딱히 없었다(공대생 기준). 그 결과, 지원한 서류 15개 중 2개를 제외하곤 모두 합격했었고, 인적성 시험부터는 날짜 중복 때문에 선택해서 치러 다녔다. 물론 최종 합격도 여러 기업 중 마음에 드는 곳으로 선택해서 갔다.


내가 생각하는 합격 프리패스의 길은 (다른 지원자들보다) 더 깊은 정보력이라 생각한다. 취업준비 시절, 주변에 있는 친구, 동기, 선배, 인터넷 취업카페를 통해서 재직자들을 찾아다녔다. 물론 재직자를 직접 만나지는 못하지만 문자 , 카톡, 인터넷 카페 쪽지, 채팅으로 구체적으로 지금 무슨 프로젝트를 하는지, 업무를 할 때 사용하는 용어들은 무엇이 있는지, 어떤 프로그램들을 쓰는지, 팀 이름은 무엇인지, 같이 협업하는 팀들은 어떤 팀들이 있는지, 회사가 요즘 밀고 있는 구호가 무엇인지, 아침에 출근하면 무슨 일들이 일어나는지 등을 자료로 정리해 두었다.


이러한 것들을 왜 물어봐야 하냐면, 앞에 나열한 것들은 내가 지원하고자 하는 회사에 다니고 있는 사람이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들이기 때문이다. 인터넷 채용사이트에 나와있지 않고, 하지만 재직자들이 아무렇지 않게 일상처럼 하고 있는 것들이며, 이것들을 자기소개서와 면접 때 자신의 이야기에 자연스럽게 녹여서 언급한다면 면접관 입장에서는 이 사람이 정말로 우리 회사에 관심이 많고, 채용을 해야 한다고 강력하게 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 보자. 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에 면접을 보러 가면, 1층 건물 로비에 '반도체인의 정신'이라는 문구가 있다. 하지만 인터넷에 검색해 봐도 삼성전자 반도체 인의 정신 내용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주변 인맥을 활용해서 알아본 다음에, 면접에서 '저는 어떤 어떤 사람이 되겠습니다'라며 '반도체인의 정신'을 자연스럽게 언급해봐라. '이 친구 대단한 지원자군!'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당연히 주변 지원자에 비해 합격할 확률이 두 배, 세배는 높아질 것이다.

 

또 다른 예로는, 현대중공업과 국내 몇몇 대기업은 직원들을 사원이라고 부르지 않고, 사우라고 부른다. 친구라는 의미다. 면접 때, 시키면 열심히 하는 신입사원이 되겠다는 말보다, '시키면 열심히 하는 현대중공업의 사우가 되겠습니다'라는 말이 면접관들을 내 편으로 현혹시키게 될 것이다.

면접은 나의 뛰어남을 뽐내는 곳이 아니라, 면접관을 내편으로 설득하는 과정이다

그렇게, 공돌이의 참 쉬운 대기업 취업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한 달 남짓 즐거운 신입사원 연수를 받고 자신이 근무할 팀으로 배치를 받았다. 아침에는 신선한 원두로 방금 내린 따뜻한 아메리카노 한 잔을 마시며 그간 밤새 쌓여있는 메일을 읽으며 일을 시작했다. 점심시간에는 따뜻한 햇살을 맞으며 회사 근처를 산책했고 그렇게 그토록 꿈꾸던 행복한 회사 생활이 지속되었다.


그런데, 일을 하다 보니 단점들이 하나씩 보이기 시작했다. 공대생으로 입사했을 때 단점은 아래와 같았다.

1. 편하고 편한 자리는 우리들 것이 아닌 그들의 것

공대생으로서 대기업 입사는 비율적으로 쉬웠지만, 회사에서 핵심이 되는 포지션을 차지하기는 어려움.

서울대, 고대, 연대 (SKY)가 좋은 대학인 것을 모두가 아는 것처럼, 회사 안에서도 좋은 자리들 (예를 들어 관리조직이나 전략부서-미래전략실)은 대부분 문과 출신의 일반 사무직이 차지하고 있음

2. 현장 경험이 필요하니깐 사무직을 관리직으로

현장(or 생산공장)을 가더라도, 바쁜 현장 스케줄에 따라 기술직원은 업무의 강도가 매우 심해지는데 반해,  일반 사무직 출신은 기술이 없다는 이유로 기술직원을 관리하는 역할을 주로 함. 그렇게 1년이든 2년을 현장에 관리직원으로 있다가 본사에 돌아와도 현장 경험이라 인정해 주니 기술직 입장에선 상대적 박탈감이 생김

3. 회사 경영임원은 기술직 출신으로는 다른 회사 이야기

임원으로 가는 길이 문과 출신의 일반 사무직에게는 많이 열려있는데, 공대 출신 기술인 입사자는 기술인으로서만 남을 수밖에 없고, 경력이 쌓여 회사에 경영에 참여할 수 있는 (경영) 임원이 될 가능성이 매우 낮다. 만약 임원이 된다 하여도 기술임원이라는 독특한 자리에 오르게 됨


이처럼, 힘들게 공대를 졸업하고 치열한 취업시장에서 문과 졸업생에 비해 상대적으로 쉽게 입사를 할 수 있었지만, 정신을 차려보니 회사 내에서 사무직과 기술직의 처우가 다름을 느꼈다.

한 회사의 같은 직원이지만 보이지 않는 안으로 더욱 단단해지는 그들만의 카르텔이 느껴지고, 갑과 을로 나눠지는 느낌을 받았다.


예전 90년대 후반, 2000년대 초반에 유행하던 사오정이라는 말이 있다.

사십 오세(45) 정년퇴임이란 뜻이었는데 그때 많은 사람들이 아래와 같이 생각했다고 한다.

'기술이 있으면 정리해고는 당하지 않겠지'


2019년 지금은, 기술은 있지만 여전히 쓰다 필요 없어지면 버려지는 소모품일 뿐.

새로 많이 채용하면 되니깐!


글을 마무리하며

변한건 없다. 쉽게 취직하면 더 고생할 뿐. 이런게 말로만 듣던 Trade-off 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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