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준생에게 그들은 우상이고, 1년 뒤 그 자리에 서 있고 싶을 것이다
공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직한 내가 몇 년간 인적성 감독을 하면서 경험하고 느낀 점 들이다.
'안녕하십니까 선배님, 인적성 감독하실 때 저희 반에 계셨습니다'
그렇다. 작년 10월 내가 인적성 감독을 했던 반에서 시험문제를 열심히 풀던 학생이 합격한 것이다.
신입사원 3명이 우리 부서로 배치받았다. 그중 한 명이 인사를 하면서 나를 '본 적이 있다고 한 것이다'
(사실 작년에도 몇 명이 합격 후 나를 찾아와 본사에서 인사를 하곤 했다)
인적성을 치러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8시 30분까지 입실이지만, 감독을 하는 사람들은 그보다 이른 6시 30분 또는 7시까지 시험장에 도착해야 한다. 아침 일찍 나서야 하기 때문에 감독관실에는 따뜻한 커피와 김밥, 도넛, 에너지바 등 간단하게 먹을 수 있는 간식이 준비되어 있고, 관리감독자 오리엔테이션이 한 시간 정도 이뤄진다. 한 번에 2,000-3,000명의 인원이 동일한 시간과 환경에서 똑같은 시험문제를 풀어야 되기 때문에 감독관들도 순조로운 진행을 위해 사전 교육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설명을 듣고, 각자 정해진 반으로 들어간다. 일반적으로 한 반에 같이 있는 사람들, 그리고 자신의 좌우 옆 반은 자신과 동일한 직무에 지원한 사람들이다. 반에 들어가서 가장 먼저 하는 일들은 결시생 체크이다.
'음 25명 중에서 5명이 시험을 치러 오지 않았군'
이는 다른 경쟁회사 인적성 시험 일정과 겹치거나, 다른 회사 시험에 집중하기 위한 것으로 간주한다. 대충 결시인원을 보면 그 해 연도 취업시장의 어려움이라든지, 우리 회사의 취업 인기도를 가늠할 수도 있다.
9시부터 시작된 시험은 오후 12시가 되어야 마친다. 그 시험시간 동안 감독관인 나는 수험자들의 신분 검사를 두 번 해야 하며, 각 OMR카드에 감독관 사인도 해 줘야 한다. 교탁에 기대어 가만히 있으려 하면, 누군가 손을 들고 '수정 테이프 주세요' 또는 'OMR카드 교체' 등 계속 불러 다녀야만 한다. 특이 행동자에 대한 기록도 남겨놔야 한다. (감독일지에 특이 수험생에 대한 내용을 적지만, 정말 심각하고 특이한 행동을 한 게 아니라면 합격에 영향을 주진 않는다)
그 와중에 카톡 동기 방에서 벌써부터 시험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한가득이다. 다들 이런 시험을 뚫고 왔기에 자신 앞에 인적성 문제가 있으니 눈으로 풀어보고 서로 답을 공유해 보고 있는 듯했다.
이 글을 읽는 독자들 중 몇몇은 인적성 시험을 이미 수 차례 경험해 봤겠지만, 아직 졸업도 하지 않은 4학년 취업준비생들에겐 어쩌면 이번 시험이 인생의 첫 인적성 시험일 수도 있을 것이다. 또 어떤 지원자에게는 그냥 경험 삼아 시험 치러 왔다는 것이 느껴지는 반면에, 1~2년 많게는 3~4년씩 오랜 기간 동안 취업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지원자들)에게는 그 간절함이 시험을 치기 전부터 느껴진다.
나의 첫 인적성 시험은 몇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또렷이 기억난다. 정확하게 말하면 감독관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 인적성을 치고 있는 회사의 심볼 배지를 정장 가슴 왼편에 달고 우리를 감독하고 있었는데, 배지에서 무한한 광채가 나오고, 금빛이 번쩍번쩍 나는 것처럼 느껴졌다. 누군가는 '그게 뭐가 그리 대단한 것인가'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취업을 꼭 하고 싶었던 나에게는 나의 취업성공 바람이 그 배지를 하고 있는 감독관의 모습으로 투영된 느낌이었다.
'나도 합격해서 저 사람처럼 꼭 멋있는 감독관이 되고 싶다'
그 바람은 다음 연속된 몇 번의 인적성 때 똑같은 다짐으로 이어졌다. 어찌 보면 내가 이렇게 느낀 이유가 나만의 바람만은 아녔을 것이다. 인적성 감독을 하기 전에 인사팀의 지침이 내려오는데 '감독관은 지원자들이 가장 먼저 보게 되는 회사 관계자이고, 그 한 사람이 회사 전체의 이미지를 대표하기 때문에 옷(용모단정)에 특히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라는 것이다. 이러한 지침이 대기업 지원자였던 나에게 한마디로 '제대로 먹힌' 것이다.
인적성 감독만 벌써 3년이나 했다. 수험생을 맞이하는 인적성 감독관으로의 마음가짐은 매년 달랐다
1년 차에는 '감독관 해보고 싶었으니깐, 그저 호기심으로'
2년 차에는 '수험생들을 문제 푸는 모습을 보니 누군 되겠고, 누군 떨어지겠군'
3년 차에는 '여기 우리 반에서 시험 친 사람들은 모두 합격했으면 좋겠다'
입사하고 첫 해 봄 여름이 지나 취업의 시즌인 가을이 다가올 때쯤 인적성 감독 요청을 받고 기다렸다는 듯이 수락했다. 그렇다 내 바람이 이뤄졌다. 취준생 시절 멋져 보였던 감독관을 할 수 있으니 말이다. 정말 뿌듯했다. 시험을 치러 온 사람들에게서 나를 바라다보는 초롱초롱한 눈빛이 느껴졌다. 쉬는 시간이나 시험이 거의 끝나 갈 때쯤엔 어김없이 '궁금한 게 있으시면 질문하시면 모두 알려드릴게요'라고 신나게 떠들어 댔다. 시험이 다 끝나고 정리하고 나가는 길에 지원자 중 몇몇이 나를 붙잡아 더 물어볼 때면 나도 모르게 어깨가 으쓱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데 그건 정말 나만의 호기심이었던 것 같다. 3년째 감독관을 하다 보니 이 좁은 취업시장에서 바늘구멍보다 좁은 합격의 문을 통과하려고 피 터지게 공부하고 싸우고 있는 그들인데, 그동안 내가 했던 그저 '멋있게' 보이려 했다는 것을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이 한없이 부끄러워지기 시작했었다. 그래서 그동안의 자만심을 내려놓고 최소한 내가 맡은 반 안에서 시험 치는 사람들은 모두 합격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시험 치러 온 사람들에게 정답을 알려줄 수는 없지만, 오늘 시험 치러 온 사람은 몇 명이고 이 사람들 중에 몇 명이 합격할 것이라는 정보도 최대한 전달해 줬다. 회사의 장점과 단점, 점심시간을 얼마나 주는지 등 나에겐 작은 정보일지 몰라도 그들에겐 희망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만약 인적성을 합격한다면 면접에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빠트리지 않고 알려주었다.
내 앞에 앉아 있는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떻게든 합격해서 그토록 기다리던 합격 소식을 들고 애타게 기다리시는 부모님들에게 빨리 달려가기를 바랄 뿐이다. 감독관을 계속하는 한, 나는 앞으로도 계속 이럴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개인적으로는 대기업의 공채(상, 하반기 공개채용) 시스템이 싫다. 어떻게 보면 가장 공평하다고는 할 수 있겠지. 그런데 대학을 졸업 직전 이거나 갓 졸업한 사람들에게 또다시 수능과 비슷한 내용의 언어 지문 해석, 영철이와 영이의 달리기 속도 비교, 소금물 농도 구하기, 주사위, 도형문제, 삼단논법 등의 문제풀이 능력을 요구하게끔 하는 방법이 잘 못된 것 같다. 이런 게 대체 회사에서 일하는 거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말이다. 4년 동안 대학교에서 전공 공부했는데, 졸업 전 갑자기 인적성이라는 이상한 게 나타났다.
이 문제로 나의 인성과 적성이 당신의 회사에 맞던 가요? 라는 질문을 던저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