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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말하는대로 Dec 27. 2022

대기업 퇴사하기 더 나은 삶을 위해

나의 첫 직장 퇴사하기

취업난이 한창일 때였다. 하지만 남들하는 만큼은 기본적으로 노력했고, 그 이상을 했다고 믿었고 그걸 알아봐 주셨는지 대기업 공채에 떡하니 합격했다. 그것도 서로 다른 두 곳의 대기업이었다. 골라서 갔다. 그런데 퇴사를 했다. 나는 여기 있을 사람이 아니라 생각했다. 아니 나는 더 안정적이고 싶었다.


1. 4학년 2학기 취업시즌

2014년 9월에 대학교 마지막인 4학년 2학기가 시작되었다. 대부분 대학생들이 그렇겠지만 취업을 위해 4학년 1학기 까지 미리 학점을 최대로 들어놓고 마지막 학기는 취업을 위한 시간으로만 사용하기 위해 마지막 학기는 교양 2과목과 Capstone Design (캡스톤 디자인, 졸업 작품) 수업을 듣는게 전부였다.


개학과 동시에 공채일정에 맞춰 10월 초 중순까지 자기소개서를 작성하고 인적성 공부와 1차, 2차 면접을 보고 드디어 12월 초 최종합격 발표를 확인하고 인생의 봄이 찾아왔다고 생각했다.


2. 대기업 합격

연봉 5200만원, 기숙사 생활, 아침점심저녁 제공, 휴가 1년에 22일 등..

역시 대기업의 복지는 달랐다. 무엇보다 12월 최종합격 발표를 하게 되면 각 기업에서는 최종 선발된 신입사원들이 복수 합격으로 다른 경쟁 회사로 가는 것을 붙잡아 두기 위해 집주소로 이것저것 선물을 보내준다. 과일 바구니부터, 꽃바구니, 편지, 그리고 삼성의 경우 금색으로 된 신입사원 명함 등.


3. 신입사원 연수

그리고 1월 1일 신년이 지난 다음 날 연수원으로 소집이 되어 교육을 받는다. 이때 해당 기수로 입사한 모든 공채 사람들과 함께 교육을 받는다. 회사마다 연수의 기간은 다르다. 그룹사의 경우 그룹사 교육, 그 이후 각 개별 회사 자체 교육을 받기도 하고, 그건 회사 그리고 자신이 소속 될 팀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1-2개월 정도의 신입사원연수라고 불리는 교육을 받는다. 이 기간동안 어떤 일에 대해 배운다기 보다는 회사에 대한 충성심을 심어주는 기간이고 회사의 문화를 자연스럽게 익혀서 앞으로 30년, 40년동안 일하게 될 곳에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 주는게 신입사원연수의 목표다.


4. 대학교 졸업식과 현수막

그렇게 교육을 끝내고 나면 2월 중순에 팀에 배정을 받고, 신입사원으로 정신없이 지내면서 2월에 있는 대학교 졸업식도 하루 다녀오게 된다 (유급 휴가, 일한 날로 계산 된다는 의미)

졸업식에 가도 근무한 것으로 계산된다
대기업에 취직해서 졸업식에 가면 실제로 회사에서 현수막을 보내서 걸려있다. 내 자신이 자랑스러울 수 밖에

학교 졸업식에 가서 학사모를 던지고, 그간 고생했던 친구들과 사진도 함께 찍고, 부모님들과 사진도 찍게 되는데 주위를 둘러보면 대기업에 취직한 경우 각 회사에서 신입사원 이름까지 넣어서 현수막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나또한 내 이름이 걸려있었다. 우리 부모님과 주변의 부러운 시선을 정말 느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모두가 내가 다니고 있는 이 회사는 정말 좋은 회사구나. 내가 드디어 대기업에 다니면서 친구들 모임에 가도 내 자신이 너무 뿌듯하고, 보통 2월에 있는 설 명절에도 친척들의 부러운 시선도 함께 즐기다 보면 총 6년 (대학교 4년 + 군대 2년)의 시간을 헛되이 보내지 않았구나. 난 참 잘났구나 라는 생각이 든다. 그냥 무한히 회사에 대해 좋은 점만 바라다 보게 된다.


5. 하나 둘씩 떠나가는 동기친구들

장밋빛 인생같았던 내 회사생활은 그리 오래 가지 않았다. 우선 연수를 받던 도중에 다른 더 좋은 회사로 부터 추가합격 소식을 들은 친구는 연수를 도중에 그만두고 새로운 회사로 갔다. 나는 아무렇지 않았다. 3-4개월이 흘렀을 까, 입사 동기 1-2명이 다른 업종의 기업으로 새로 입사해서 퇴사를 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아무렇지 않았다. 하지만 그 무렵 국제 오일 가격이 급속도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내가 다니던 회사에도 안좋으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내가 다니던 곳은 흔히 말해 기름값에 굉장히 민감한 회사였다. 기름값이 오르면 자가용을 타고 운전하는 사람들은 울상이지만, 우리 회사는 웃음이 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오일 가격 급락과 회사 내 악성 프로젝트들은 신입사원인 우리들 마저 걱정을 하게끔 만들었다.


6. 결정적인 계기, 좋은 곳이 아니였어

분명 내 눈에는 좋은 것들만 보이던 회사였는데 회사 안에 들어와서봤더니 허울만 좋았지 내실은 그리 좋지 못했던 것 같았다. 심지어 월급날에는 새벽 6시에면 통장에 꽂혀 있던 돈이 회사 사정이 좋지 않다면서 아침 9시, 낮 12시로 점점 밀리더니 나중에는 오후 5시 퇴근 시간이 되어서야 월급이 입금되기 시작했다.

아니 무슨 대기업이라는 곳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지, 이제는 내가 여기 있으면서 불안하기도 하고 내가 기대 했던 만큼 좋은 곳이 아니라는 것을 냉철하게 느끼게 되었다.


7. 반수가 있듯이 중고 신입으로 다시 지원

괜찮아. 우린 아직 26살이잖아. 아직은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입사한지 9개월만인 2015년 9월 부터 5시 30분에 퇴근을 하고 회사에서 주는 저녁을 먹고 저녁 7시에 회사 기숙사에 있는 독서실로 갔다. 그리고 몇일 전 교보문구에서 주문한 인적성 책을 새로 폈다. 이미 한 번 공부해본 인적성이라 몇번 풀어보고 감만 되찾으면 될 것이라 생각했다. 2주-3주 정도 인적성을 공부하면서 컴퓨터에 있는 수많은 자소서를 간단히 수정작업만 하고 다시 여러 회사에 지원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남들과 똑같은 평범한 신입사원으로 출근을 했다.


몇일이 지났을 까, 주말에 인적성을 보고 왔고, 10월과 11월에 있는 면접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휴가를 쓰고 다녀왔다. 주변 대리 과장님들이 '신입사원, 면접 보고 온거 아니지~?' 라고 물어볼 때면 당연히 '무슨 면접이요? 요즘 면접이 있어요?' 라고 시치미를 툭 뗐다.


8. 회사생활 적응 완료 이제 면접은 정말 너무 쉬워

면접은 너무나 쉬웠다. 대학교 4학년 2학기때 면접을 볼 땐 면접관들 앞에서 떨리기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앞에 앉아 있는 면접관들은 내 옆에 같이 일하고 있는 과장님, 부장님 같은 분들이야' 라고 마인드 컨트롤을 하고 들어갔더니 마음이 너무 편했다. 짧은 9개월, 10개월의 신입사원 회사생활이긴 하지만 어쨌든 회사에서 터득한 사회생활이 자연스레 몸에 베인 나에겐 면접은 그냥 앞에 앉아서 편하게 하는 미팅수준에 불과했던 것이다. 면접을 보면서 면접관에 나에게 말했다. '지원자 OO씨는 우리회사와 업계 지식에 대해서 굉장히 잘 알고 계시네요. 멋집니다' 나는 이 말을 듣고, 아 합격 했구나 싶었다.


9. 그래도 떨리는 합격자 발표

보통 대기업 공채 합격발표는 금요일 오후 5시즈음에 난다. 회사에서 업무를 마무리 하던 중 문자가 하나 날라왔다. 'OO회사 Career에 최종면접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라고. 

대기업은 채용시스템이 체계적으로 되어있다. 문자에서 바로 합불을 알려주지 않는다.

갑자기 심장이 터질 듯 뛰었고 나는 스마트폰을 들고 바로 화장실 제일 끝칸으로 들어가서 로그인 하고 눈을 감고 간절히 기도 후, 실눈을 뜨고 확인을 했다.

대한민국 회사원이라면 모두가 아는 이 한장은 퇴사할 때만 사용할 수 있는 유명한 짤

합격을 했다. 나는 대기업 퇴사를 하지만 다시 대기업을 간다. 이제는 이곳에서 벗어나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심장, 광화문으로 간다. 12월 31일 근무를 마지막으로 회사가 1년을 마무리 하는 종무식을 하면서 내 짐을 모두 싸서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3일을 쉬고 1월 4일 새로 입사하는 회사에서 다시 2개월간의 신입사원 연수를 시작했다.


10. 인생 2회차라는 이런 느낌인걸까

신입사원 연수에서 인생 2회차 느낌이 났다. 아니 연수받는 내용 레파토리가 똑같잖아!!!!! 춤추고 노래하고, 술먹고, 춤추고, 노래하고, 술먹고.



작가의 말, (취업준비생 또는 이직을 고민하는 이에게 던지는 말)

대학을 졸업하고 첫 직장을 어디로 가느냐가 굉장히 중요하다. 아니 콕 찍어 어디라기 보다는 최소한 대기업에 해당하는 곳에 가는 게 중요하다. 처음에 중소기업으로 취직하면 다음에 대기업 가기가 정말 힘들다. 하지만 첫발을 대기업으로 시작한 사람은 다음에 다른 대기업에 쉽게 갈 수 있다.


우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다. 대한민국은 남들의 시선을 굉장히 중요히 하는 사회풍습을 갖고 있다. 나는 괜찮다고 생각할 지언정 나를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을 무시하면서 살아가는것은 결코 쉽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처음보는 사람들끼리도 '저는 어디어디 다닙니다' '이분은 어디어디 다니시는 분이야' 라고 소개 하는 순간 상대방은 나를 무시할 수도, 나를 존경할 수도 있게 된다. 나의 직장, 신분에 따라서 얻는 어드밴티지가 있다면 반드시 가져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너무 속물적이라 생각할 수도 있다. 하지만 생각해 봐라. 대학교 때는 그런게 없었는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포항공대, 카이스트 출신과 지방의 이름 모를 전문대 출신 대학생이 있다고 한다면, 대학생 끼리도 급나누기가 심하지 않은가.

 

대학교 티어등급, 대학교도 등급을 나누는데 회사는 더 심하다


우리는 고등학교 졸업을 하면서 수능이라는 것을 통해 이미 쓴 현실을 맛보았다. 누군 이름만 들으면 과외 학생들이 몰려들고, 꿈과 낭만의 대학축제와 대학로, 연애를 할 수 있었지만 누군가는 지방 한 구석에서 이름도 모를 학교를 다니고 있다. 인생의 두번 째 기회가 찾아온 것이다. 내 신분세탁을 할 수 있는. 그렇기에 반드시 사회에서는 대기업으로 인생 첫발을 시작하길 바란다.


나는 그렇게 경력 만 1년을 채운다음 대기업을 퇴사하고, 더나은 삶을 위해 또다른 대기업에 입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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