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투명물고기 Jul 02. 2024

대체되지 않을 인간의 영역을 상상해 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들

요즘은 AI가 별의별 영역까지 다 침범(?)하고 인간보다 훨씬 더 빠르고 정확한 결과값을 가져오기 때문에, 이제는 대체되지 않을 영역을 찾는 것이 어렵거나 심지어 거의 없을 것이라고 단정하는 주장들도 많이 보게 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계가 끝까지 점령하지는 못할 인간의 성역과 같은 부분이 분명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근에 정리해 본 세 가지 영역에 대해서는 그래도 인간의 고유성을 가져갈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1. 감(感)의 영역


'감'이라는 글자는 한국어에서 상당히 많은 단어에 쓰이는데, 이 중에서도 나는 한국어의 관용적인 표현인 '감이 온다', 혹은 '촉이 온다'라는 표현을 먼저 떠올려보았다. 사실 우리가 외부 자극을 받아들이는 여러 가지 감각들을 오감이라고 한다면 로봇에게는 카메라로 시각을, 마이크로 청각을, 각종 센서로 후각/미각/촉각의 기능들을 이제는 충분히 수행할 수 있음직해 보인다. 하지만 인간에게는 '오(五)'감 외에도, 여섯 ‘육(六)’감 그리고 고기 '육(肉)'감이라는 것이 있다. 머리로 계산해서 나온 것이 아니라 직관적으로 혹은 몸이 느끼는, 논리적인 언어로 설명할 수 없는 감각이라는 것이다.


아마 이것이 없었다면 우리말에서 '왠지'라는 단어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뚜렷한 이유나 징후도 없었는데 '왠지 불길한 징조' 혹은 '왠지 좋은 일이 생길 것 같다'거나 '왠지 마음에 든다/안 든다'거나 등등 그냥 느낌이 그렇다는 뜻으로 많이 쓰인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그런 느낌이 맞아떨어지는 경험을 누구나 살면서 한 번도 아닌 수 번을 해보지 않았던가? 혹시 그러한 느낌마저도 과거의 축적된 경험이나 누적 지식 데이터 값의 결과라고 주장하려면, 아마도 감이 좋은 정도는 나이와 경험치에 비례하거나, 객관적으로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일수록 감이 좋아야 한다. 하지만 소위 감 좋은 사람들이라고 하는 사람들은 그런 것과는 전혀 관련이 없어서 패턴을 말하기가 어려운 게 사실이다.


2. 공(共)의 영역


'함께'라는 뜻의 공(共)과 '느끼다'는 뜻의 감(感)이 만나서 '공감'이라는 단어를 형성하는데, 위에서 언급했던 '감' 외에도 '공'의 영역은 아마 기계가 인간보다 더 잘 채울 수는 없는 부분일 것이다. 최근에는 AI와 연애하는 것도 유행한다는 말까지 있기는 한데, 개인적으로는 이것은 신기함에서 비롯한 트렌드 같은 것이지 궁극적으로 인간과 하는 연애를 대체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에 다마고치라는 것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을까? 한마디로 얘기하자면 주머니 속의 병아리 키우기 게임 프로그램인데, 굳이 병아리 똥을 치우지 않아도 되고, 죽는 꼴을 보지 않아도 되고, 필요할 때만 꺼내봐도 되는 매우 편리한 애완 기기(?)였지만 한 때의 유행으로 금방 사라졌다. 그리고 수십 년이 지난 지금, 기계로 키울 수도 있지만, 실제 살아있는 애완동물을 키우는 숫자는 오히려 예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많아졌다.


어떤 분이 꾸준히 회사 내 조직 생활에 대한 글을 열심히 쓰시는 것을 보았다. 몹시 맞는 말들이었지만 나는 그분의 글을 굳이 시간 들여 읽어 보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분은 사실 평생 1인 기업 전문직이라 진짜 회사 내 조직 생활을 그렇게 겪어봤을 리가 없기 때문이다. 같은 얘기를 하더라도 진짜 해본 사람이 하는 것과, 해본 적도 없는 사람이 상상만으로 하는 것은 결코 같은 이야기가 아니다. (물론 아예 경험 없는 사람이 상상만으로 매우 그럴싸한 소설이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쓰는 것은 자기 계발 글과는 전혀 다른 장르이자 이야기다.) AI는 아마 몹시 좋고 좋은 이야기들을 쏟아낼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많은 피땀이 들어가야지' 가능이나 한 것인지, 그런 사건을 겪으면서 내가 '얼마나 슬프거나 혹은 감동했는지' 이 세계의 느낌으로 결코 나와 함께 존재하지 못할 것이다. 이해하지 못하는 자와의 대화는 피상적이고 원론적일 수밖에 없다.  


3. 행(行)의 영역


나에게 애정이 딱히 있는 것도 아닌 누군가가 너무도 맞는 말을 가득 늘어놓으며 당위성에 근거한 훈계를 해대면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누가 모르냐고요." 사실 세상에 일어나지 않은 많은 일들은 몰라서가 아니라 알지만 하지 않거나 못해서인 경우가 많다. 물론, 무지로 인해서 인지조차 못하여 애초에 할 수가 없는 부분도 당연히 존재하겠지만, 그런 부분보다 알면서도 못하는 것이 아마도 훨씬 많을 것 같다. 예를 들어, 우리는 모두 어떻게 하면 지금보다 더 건강하고 성공적인 삶을 살 수 있을지 너무도 잘 알고 있다. 실제로 그렇게 달성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미 숨기지 않고 그들의 비결을 만천하에 공개하고 있고, 우리는 그들의 스토리에 열광한다. 그들과 우리의 단 하나의 차이라면 그들을 실행했고, 대부분의 우리는 그냥 아는 것으로 그친다.


아마도 세상의 모든 지식을 게걸스럽게 삼키고 있는 AI는 실존하는 그 어떤 일개의 인간보다 많이 알고, 맞는 말을 많이 해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그것이 온라인에 갇힌 허황된 메아리로 끝나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면, '누군가'는 실제 삶의 공간에서 그것을 구현하고 행해야 그 지식도 주장도 의미가 되어 살아 숨 쉴 수 있다. 그리고 그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것은 인간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물리적인 공정을 처리할 때조차 기계를 많이 이용한다고 하더라도, 궁극적인 '목표를 세우고',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얼마의 자원을 투자하여' '어떤 방식으로 진행할지' 최종 오더를 내리는 것은 인간이 계속할 것 같다. 기계는 스스로 수많은 지식 중 특별히 어떤 것을 선택해서 이 세상에서 꼭 만들어내 보겠다는 궁극의 목표를 세우거나, 스스로 자원을 소유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론을 내려본다면, 인간이 기계와 대비해서 더욱 가치가 있을 영역은 더 이상 논리가 아닌 '인간적인 느낌을 가지는 것'이고, 인간계에서 '직접 경험해 보고 타인(人)을 공감'하는 것, 그리고 원대한 '목표를 세우고 자신이 가진 자원을 활용해서 실천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다시 스토리로 한번 정리해 보자면, '객관적으로는 터무니없이 원대해 보이지만, 왠지 될 것 같은 감이 오는 목표를 세우고, 자신이 가진 여러 자원들을 결집하여 인간의 보편적인 니즈에 기반한 무언가를 실제 구현해 나가는 것'이 몹시 인간적인 모습이 아닐까. 그리고 추가로 '그 경험을 바탕으로 또 다른 열정적인 모험가들에게 영감을 불러일으키고 도움도 줄 수 있는' 그런 삶, 어떨까? 기계를 두려워하거나 원망하거나 회피하는 역할보다 훨씬 더 멋진 인간의 시나리오가 아닐까?

미드저니로 직접 그려본 인간과 로봇의 구도, 로봇은 조연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AI가 등판하면 전문 지식이 필요 없어질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