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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투명물고기 Jul 18. 2024

AI 시대, 앞으로는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을까?

실시간 통번역의 시대가 왔다

AI의 발전으로 우리의 삶이 편하게 된 분야가 여럿 있지만, 그중에서도 실시간 통번역이 가능해진 것은 분명히 많은 사람들이 체감할만한 순기능이라고 생각된다. 실제로 최근의 일본 여행에서는 메뉴판도 그냥 스캔하면 다 이해가 가고, 시골의 일본 어르신들께도 폰 하나만 갖다 대면 나의 의사를 전달할 수가 있어 세상 정말 좋아졌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개인적으로 나는 대학에서 언어를 전공한 사람이기도 하고, 각 나라의 언어를 조금씩이라도 맛보는 것을 좋아해 왔는데, (디폴트인 영어, 전공인 불어를 제외하고도 중국어, 일본어, 독일어, 이태리어를 어떠한 형태로든 짧게는 한 학기 길게는 1년씩 배웠고, 태국 여행한다고 태국어 책도 사서 아주 잠시 독학하여 현지에서 택시 타고 물건 사는데 써먹은 적도 있다.) 그렇다면 나는 여태 앞으로의 시대에는 필요도 없을 짓들을 하는데 인생만 낭비한 것일까? 앞으로 우리 아이들은 정말 외국어를 배울 필요가 없는 시대가 올까?


1.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의미 (수단)


어느 채용 공고의 그 어떤 포지션의 요구 사항에도 늘 으레 포함될 법한 그 요건,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는 사람'이란 무엇일까? 단지 우리는 한국어를 모국어로 유창하게 말을 다 할 수 있으니 누구나 다 (국어)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사람의 요건을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까? 자고로 말이란, 같은 내용도 사람에 따라 너무도 다르게 표현되고 전달되며, "아 다르고 어 다르다."라는 오랜 속담처럼 아주 사소한 부분으로 뉘앙스가 180도 바뀌기도 한다. 같은 문장도 전후 맥락에 따라서, 그리고 그 의도에 따라서 수십 개의 다른 표현으로 통번역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가장 커뮤니케이션을 잘한다는 소리를 들으려면 그 수십 개의 버전 중에서 어떤 것을 골라야 한다는 말인가? AI가 골라준 것이 가장 최선의 버전이라고 믿고 그냥 그대로 던지면 외국어로까지 커뮤니케이션 잘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전혀 다른 업무만 하던 사람이 그 분야에서 잘했다는 이유로 전혀 모르는 분야의 리더로 와서 팀 전체를 대혼란으로 빠트리는 사태, 직장인이라면 다들 한 번쯤 직간접적으로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AI를 개개인이라는 조직의 팀원으로 잘 부려먹으려면, 리더는 시키는 그 일에 대해서 우선 먼저 잘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애초에 제대로 시키고, 혹시 의도하는 방향대로 일이 진행이 되지 않고 있을 때에는 빠르게 다시 가이드하여 제대로 인도할 수도 있다. 사람이 What을 결정하고, AI는 How를 제일 잘 안다고 하지만, AI가 제시할 수 있는 How의 시나리오는 무궁무진하다. 그 수많은 가능성 중에서 결국은 어떤 것을 골라낼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인간의 진짜 실력인 시대가 오고 있다. 타인과의 커뮤니케이션에 있어서도 내가 그 타인의 언어를 아는 상태와 모르는 상태에서 AI를 활용한 버전의 수준은 현격하게 차이 날 수밖에 없다.


2. 언어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하나의 세계 (목적)


외국어를 한다는 것은 단지 일차적인 내용 전달을 외국어로 치환한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한 나라의 언어라는 것은 결코 단순하게 한순간에 형성된 것이 아니다. 내가 보는 언어란, '문화가 살아 숨 쉬고, 민족의 온기가 느껴지는, 오랜 역사의 흐름 속에서 다져진 하나의 우주'이다. 한때 불어를 잘하고 싶어서 늘상 배경 음악처럼 틀어놓고 지내던 시절이 있었는데, 어느 순간 의식적으로 이해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냥 언어가 귀에 들어와 꽂힌다는 생각이 들게된 날, 나는 갑자기 개안을 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봉사까지는 아니어도 적록 색맹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어느 날 여태 못 보던 색깔을 선명하게 보게 되는 느낌이랄까? 나는 그때 생각했다. "아, 나는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을 수 있을 하나의 세계를 더 얻었구나."


그 세계는 남들에게 가시적으로 보이지는 않을 수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나에게 많은 것들을 안겨주었다. 하다못해 지금 발레를 배우는 데에도 용어를 들으면 상대적으로 금방 동작을 유추해서 따라 할 수가 있고, 명품이나 예술 등의 제목만 들어도 무엇을 의미하려 했는지도 바로 느껴지기도 한다. 가장 인상 깊었던 지점은 빅토르 위고의 레미제라블을 원서로 읽게 되었을 때였는데, 한국어로 어릴 때부터 읽어도 와닿지 않던 대목들이 소름 끼치도록 와닿게 되는 신기한 경험이었다. 왜 그가 세기의 위대한 국민 작가인지는 더 이상 설명이 필요하지가 않았다. 이런 표면적인 것들 말고도, 불어를 통해 내게는 남들이 모르는 비밀의 다락방이 하나 생겼다. 지치거나 마음의 안식처가 필요할 때면, 파리의 소르본느 앞 광장 어느 이름 모를 카페에서 커피를 딱 한잔만 하고 돌아오면 나는 완전히 회복될 것만 같은 것이다. 실제로 그런 장면을 구체적으로 상상하며 마음의 안식을 얻기도 한다. 제2의 고향이 마음속에 세워지게 된 것이다. 지나가다 불어가 들리면 마치 고향 사람이 지나간 듯 반갑고, 혼자 몰래 미소 짓게 되는 부작용도 생겼다.


3. 언어를 배우는 것은 고도의 지적 활동 (부산물)


나이 들어서 치매 예방에 가장 좋다고 입증된 것이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글쓰기'와 '외국어 공부'라고 한다. 그만큼 언어를 배운다는 것은 두뇌를 복합적으로 사용하는 고도의 지적 활동이라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언어를 공부하는 것은 '이제 거의 불필요해질 스킬을 연마하는 데에 시간을 낭비'하는 것이 아니라, '두뇌의 근육을 다양하게 발달시키는 고도의 훈련'이라는 것이다. 앞으로 AI가 판치는 세상에서 더욱 인간에게 중요해지고 있다는 성향인 '호기심'을 발굴하는 데에도 언어는 좋은 도구가 될 것이다. 이 말은 왜 저 언어에서는 저렇게 표현되었을지, 왜 저 언어에서는 저리도 많은 시제가 사용되는 건지, 왜 이 언어에서는 있는 표현이 저 언어에서는 뭉뚱그려서 구분조차 안 되는 것인지, 왜 이 언어에서는 이 글자가 이렇게 소리가 나고 저기서는 저렇게 소리가 나는 것인지 끝도 없이 신기하고 의문 투성이인 세상이 열릴 것이다.

 

또한 나는 살아있는 언어를 더 잘 배우고 싶어서 고민하다가 창의성과 끈기가 더 단련되는 경험을 하기도 하였다. 스무 살이 넘어 난생처음 나간 해외인 프랑스에서, 현지 언어도 유창히 안되고, 이렇다 할 경험도 없던 학생이었던 내가 현지 인턴십을 얻기 위해서 생각해 낸 방법은 '콜드 콜'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어디서 그런 배짱이 나왔는지.) 당시에는 인터넷도 너무 비싸고 구글조차 상용화되지 않았던 시절인데, 무작정 전화 부스의 노란색 파리 시내 전화 번호부 책을 집어 들고 여기저기 전화해서 숙식 제공 조건의 (쥐꼬리) 유급 인턴십을 구할 수 있었다. 이후 한국에서는 졸업 후 10년 넘게 불어를 쓸 일이 아예 없다가 '한국에 있는 프랑스 사업가 모임'이라는 커뮤니티를 발견하여, “그 어떤 요건도 해당되지 않는 네가 왜 들어오려 하냐”는 리더를 끈질기게 설득하여, 유일하게 프랑스인도 아니고 사업가도 아닌 채 멤버로 활동한 적도 있다. 나는 그때도 지금도 여전히 불어를 완벽하다고 할 정도로 한 적은 없지만, 그래도 내게는 여전히 제2의 고향이자, 숨겨둔 나만의 안식처 같은 공간을 더 잘 유지하고 싶은 마음에 고민하다 보니, 평소라면 생각지도 못할 방법들이 튀어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얻어진 친구, 네트워크, 커뮤니티 등은 덤이다.



나는 앞으로 우리 자식 세대에는 아이들이 더욱 외국어 공부를 많이 하고, 그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다양한 것들을 더 많이 느끼게 되면 좋겠다. 앞으로의 인간이 기계와 달리 더욱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분야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이어주는 '높은 수준의 세련된 커뮤니케이션'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무리 멋진 아이디어와 전략이 있더라도 그를 바탕으로 인간의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은 결국 인간이다. 그리고 같은 언어로 이루어진 세계를 공유한다는 것만큼 상대에 대한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없을 듯하고, 언어를 배우는 그 과정에 있어서 얻어지는 정성적이고 부수적인 것들도 상당히 많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히, 앞으로 언어를 습득하는 과정에 있어서는 AI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꼭 외국인을 만나지 않아도 대화를 연습할 수 있고, 첨삭자를 찾지 않아도 1초 만에 피드백을 받고 발전시킬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세상에서, 배우고자 하는 의지만 있다면, 더 많이 다양한 인간들과 긴밀히 연결될 수 있는 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 아들도 앞으로 살면서 다양한 언어를 배우고, 그를 통해 더 크고 오색 찬란한 세상들을 자기의 것으로 만들었으면 좋겠다.

미드저니에서 한시간 걸려 뽑은, '서로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소년 소녀가 소통하려는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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