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조직에는 성공한 롤모델이 있나요?
나는 기본적으로 조직 생활이 나름대로 잘 맞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주변에 보면 조직 생활 자체에 힘들어하는 사람들 역시 많았다. (사실 잘 맞다고 얘기하는 사람이 훨씬 드문 것이 사실이고, 나 역시 불만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조직에서 배우고 성장하는 부분에 더 집중하는 편이다.) 조직 생활에 애정과 욕심을 가지며 아주 신입일 때부터도 진지하게 좋은 조직과 좋은 리더에 대해 고민해 온 나는 늘 롤모델들을 찾아다녔고, 왜 항상 결론적으로 조직에서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가에 대해서 많은 생각을 해보았다.
십오 년 되는 기간 동안 가까운 곳부터 먼 곳까지 두루 눈을 씻고 찾아보아도, 잘 나가는 리더로서 승승장구하면서도 위의 신임과 아래의 존경을 동시에 받는 경우는 가뭄에 콩 나듯 너무도 희귀하였다. 주니어 시절 어쩌다 찾게 된 건너 건너 한 분은 승승장구하는 듯 보였으나 결국 아랫사람의 귀책을 본인이 책임지는 것으로 퇴사하고 귀농하셨다는 결말을 듣게 되었다. 그로부터 10년도 더 지나 겨우 알게 된 멀찍이 한 분은 업무와 인간성이 모두 출중하고 위와 아래 두루 완벽한 평가를 받는 정말 드문 케이스였는데, 그분의 말로는 회의를 하던 도중 급작스레 모든 것을 버리고 홀연 퇴사를 하고 인생의 재정비를 하시는가 했는데, 몇 년 가지 않아 오십 초반의 나이에 미혼인 채 암으로 단명하시고 말았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다. 결국 모든 것을 완벽하게 이룬다는 것은 그만큼 자기 자신의 영혼을 갉아먹는 일인 것일까?
내가 리더로서 롤모델로 인정하는 딱 한 분을 직접 모셔본 적이 있는데, 그분은 정규직으로서 갈 수 있는 최고의 지위인 '담당'까지는 도달하였으나 결국은 임원을 달지는 못하고 말았다. 아무리 보아도 그분이 다른 임원들 대비해서 딱 하나 다른 점은, 아랫것들에게까지 인정받을 정도로 '인격적으로까지 너무 훌륭했다'는 것 하나밖에 없었다. 내가 그분의 리더십에 대한 글을 쓴 적이 있는데 엄청난 외부 바이럴에 이어 퍼블리에 초청 기고가 되고, 그 글은 다시 삼성과 엘지 그룹의 사내 교육 자료로 추가 판매까지 될 정도로 객관적으로 누가 봐도 너무도 본받고 싶은 리더십이었다. 그렇게 특출하게 대단한 리더십과 특출난 업무 역량을 모두 갖춘 사람이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이 두 그룹 중 하나에 재직하고 있지만 정작 그분을 최고 리더로 승진시켜 주지 않았다니 이상과 현실이 그리도 괴리가 큰 것이었다.
왜 이렇게 조직에서 업무적으로 특출 나다고 인정도 받으면서도 동시에 인격적으로 훌륭한 사람을 만나기란 어려울까? 나는 근본적으로 리더들이 조직 전체의 분위기나 구성원들의 행복에 대해서는 솔직히 관심이 별로 없고, 인적자원을 성과 달성을 위한 소모품으로만 취급하는 시스템 자체에 있다고 생각한다. 정말 많은 경우, 자신의 조직을 가장 악랄하게 쥐어짜 예스맨을 넘어서 비효율적으로 불필요한 정도까지 몰아붙이는 임원들이 가장 인정받고 승승장구하였다. 조직 전체의 건강이나, 주요 인재들의 잦은 퇴사로 인한 조직 부작용 등은 여전히 오롯이 아랫사람들이 어떻게든 자기들끼리 감당해야 할 몫으로 남았다. 실제로 그 잘 나간다는 임원들 밑에서 정신과 치료, 크고 작은 질병 등의 경우는 다반사고, 극단적으로 자살하는 경우까지도 멀지 않은 곳에서 목도하기 어렵지 않았다.
열정적인 팀장급 이상의 리더가 되면서부터는 ‘위’를 바라보는 리더십을 구현할 것인가, ‘아래’를 위한 리더십을 구현할 것인가에 대해 선택을 해야만 하는 기로가 오게 된다. 둘이 양립할 수 없는 근본적인 이유는, ‘아랫것'들을 위한 고민을 하다 보면 ‘윗분'들이 듣고 싶지 않은 소리들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계속 오기 때문이다. 그것이 실무적으로는 말도 안 되는 업무 지시든, 부당한 조직적인 대우든, 목소리를 내지 않고는 결코 어려움에 빠진 문제를 해결해 줄 수가 없기 때문이다. 상위 리더의 입장에서 본다면 안 그래도 위로 갈수록 쓴소리 들을 일도 없는데, 뭔가 계속 문제에 대한 상기를 시키는 아랫것은 누가 되어도 눈엣 가시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늘 듣기 좋은 소리만으로 본인을 즐겁게 해 주고, 무슨 말도 안 되고 의미 없는 업무를 하라는 지시라도 (어떻게 밑의 애들을 탈탈 쥐어짜서라도) 만들어오는 아랫것이 상대적으로 훨씬 이뻐 보이는 것이다. 특히나 본인이 그 방식으로 성장해 온 사람일수록 더욱 그런 아랫사람에 대한 편향성이 훨씬 더 심하다. 정의보다는 정치가 승리로 이끌 수밖에 없는 구조이다.
아무리 쿨해보이는 문화의 날을 기획하거나 삐까번쩍해 보이는 복지 혜택을 구현한다고 한들, 기본적으로 조직에서 일을 하고 평가받는 시스템 자체에서 ‘정의’가 구현되지 않는다면 조직의 행복지수는 결코 올라갈 수가 없을 것이다. '진정으로 건강하고 행복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시스템에 대해서 오랜 기간 고민을 해보았는데, 그를 위한다면 최소한 이런 것들은 고려되었으면 하는 포인트들이 있었다.
1. 탑다운식 평가로 모든 것이 결정되어서는 안 된다.
평가가 상사라는 한 사람에 의해 탑다운식으로만 이뤄져서는 공정성이 보장될 수 없다. 형식적으로 다면평가라는 것을 도입하는 듯이 보이는 조직들도 결국은 겉으로 '참고만'할 뿐 절대적으로 윗사람의 평가가 거의 절대적이다. 그 '윗사람'이라는 사람이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람이라면 다행이지만, 개인적으로 부패하거나 편파적일 경우도 많기 때문에 어느 조직이든지 묵묵히 일 열심히 하는 사람보다는 늘 정치하는 사람이 상대적으로 잘 나갈 수밖에 없다.
2. 리더라면 업무의 퍼포먼스뿐 아니라, 조직의 행복지수도 구체적으로 함께 평가받아야 한다.
그래도 요즘은 많은 기업들이 형식적으로라도 조직의 건강에 관한 서베이를 하기는 한다. 하지만 '조직 문화에 매우 신경 쓴다는 기업'에서조차 서베이 내용은 매우 모호하게 뭉뚱그려서 평가하도록 되어있어서, 사실 요식행위가 아니라면 무슨 의미가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지칭하는 조직이 팀 차원인지, 본부 차원인지, 회사 차원인지, 그리고 시스템 차원인지 개인 리더십 자체의 차원인지도 명확히 구분된 평가와 피드백이 필요함에도, 책임을 회피하기 위해서인지 구분 자체가 없는 질문이 대부분이었다.
3. 속한 모든 구성원들의 평가가 반영되어야 할 뿐 아니라, 개별 조직의 난이도 역시 감안되어야 한다.
어떤 조직은 상대적으로 일이 적을 수도 있고, 같은 팀 단위라도 절대적인 팀원의 수가 적으므로 상대적으로 개인에 대한 케어가 더 잘 된다. 어떤 조직은 태생적으로 일이 더 많아서 물리적인 시간이 절대적으로 더 많이 들 수밖에 없고, 번아웃이 잘 오기에 퇴사자도 많고, 그래서 남은 사람들에게 일이 더 많이 쏠려서 구성원들이 더욱 불행해진다. 이럴 경우 이상적인 상위 리더라면 그 조직의 어려움을 알아보고 쏠림 현상을 덜어주거나 더 많은 지원을 해주는 것이 그의 역할이라고 생각할 텐데, 대부분의 자기 안위밖에 모르는 리더들은 그런 것에는 관심 없고, 본인 책임은 없는 그 하위 조직 자체의 문제로 블레임 하기에 바쁘다. 거의 중간에 낀 리더만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욕은 욕대로 먹고 또다시 그 조직은 불행의 늪에 빠진다.
구체적인 포인트들을 잡아봤지만 이것은 한두 해 한두 조직을 보고 내린 단편적인 결론이 아니다. 또, 한국 조직뿐 아니라 외국인 중심의 외국 본사 각 조직을 둘러보아도 결론은 똑같았다. 따라서 당신이 속해있는 조직도 이런 아쉬움들이 많이 목도된다면 그건 그곳이 그리 특이한 곳은 아니라는 뜻이다. 어차피 어느 조직이나 비슷한 논리로 돌아가고 있는 것이 맞다면 굳이 이상적인 모습들을 생각해 보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
단지 정의로운 조직을 구현해 보겠다고 내가 겪었던 조직들만큼 거대한 기업을 당장 만들지는 못하겠지만, 그래도 이 세상 어느 곳에서는 상대적으로 조직의 행복과 정의를 매우 중요한 요소로 고려하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리고 내가 담당하게 될 그 어떤 규모의 조직이라도 최대한 그러한 것들을 구체적으로 감안하고 싶은 마음에 머릿속을 다시 한번 정리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