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젠가 나의 것을 한다면 꼭 필요할 일
직장 생활을 꽤 오래 해왔지만, 늘 스타트업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기회가 있으면 '스타트업 얼라이언스' 등 이런저런 강연을 쫓아다닌 것만도 거의 10여 년 가까이 되는 것 같다. 하지만 직장 생활은 나름대로 늘 배울 것이 있어 만족하는 상태였기에 ‘언젠가’라는 막연한 생각만 했을 뿐, 직접 구체적으로 뭔가를 해본 적은 없었다. 그러다 새로운 해가 밝으면서 문득 ‘이번 기회에 짧은 기간 동안 빠르게 사업을 기획하고 테스트해 보는 건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사업에 성공하는 길은 스탠포드에서 강의 제목으로도 있다고 하는 "Fail Fast", 무조건 빨리 실행해 보고 빨리 망해보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이 글은 그 빠르게 망해보는 경험치 1을 추가한 나의 실험 과정과 결과를 정리한 기록이다. 나의 프로젝트는 크게 네 단계로 진행되었다.
이전 글에서 밝혔듯이 내가 주시하고 있는 몇 가지 사회 문제가 있는데, 그중에서 우선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어르신들이 온라인 쇼핑의 혜택을 누리지 못하는 문제’에 주목했다. 그래서 어르신들을 위한 '온라인 대리 주문' 서비스를 구상했다. 아이디어 자체는 간단해 보였지만, 막상 사업 모델을 구체화하니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서비스 비용을 어떻게 책정할 것인가?
지속가능성을 위한 수익성은 어떤 방식으로 확보할 것인가?
추후 스케일업 하게 되면 어떤 방식으로 효율성을 확보할 것인가?
수익성을 시뮬레이션해 보니, 나의 사명감을 충족하기 위해서는 무조건 박리다매 구조로 가야 하는 사업이었다. 주문을 일일이 받아 처리하는 과정을 디테일하게 쪼개보니 예상보다 손이 많이 가는 것도 문제였다. 그래서 여러 가지 포인트들을 구체적으로 고민을 해보았고, 비즈니스 모델을 구체화하게 되었다.
(사업 기획 파트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사업 아이디어가 정리되면, 이제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우선 브랜드 네이밍부터 고민했다. 어르신들에게 친숙하면서도 직관적인 이름이 필요했다. 여러 가지 후보를 AI로부터 제안도 받고 고민하다가 결국은 내 머릿속에서 나온 ‘손품’이라는 이름을 선택했다. ‘손품을 대신 팔아드린다’는 취지를 가장 잘 살릴 수 있는 이름이라 생각했다. 그 외에도 이 단계에서 고민해야 하는 것들은 많았다.
로고는 어떻게 만들까?
핵심 USP(Unique Selling Proposition)는 무엇인가?
고객들에게 어떻게 이 서비스를 소구 할 것인가?
처음엔 로고 역시 AI 도구를 활용해 디자인을 시도했지만, 결과물이 만족스럽지 않아 결국 화가 동생의 손을 빌어 직접 로고를 제작했다. 마케팅 메시지도 여러 가지 테스트해 보며 다듬어 갔다.
(브랜드 및 마케팅 기획 영역의 전체 내용이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제 본격적으로 마케팅을 집행할 차례로, 나는 타깃의 특성을 감안한 '오프라인 광고'와 여러 가지 테스트와 사전 정보를 파악할 수 있는 ‘온라인 광고’를 모두 집행해 보기로 했다.
(1) 오프라인 광고
아무래도 디지털이 익숙하지 않은 연령대의 타깃인 어르신들은 온라인보다 신문이나 전단지를 더 많이 접할 것 같았다. 그래서 지역 신문(교차로)에 광고를 내고, 직접 아파트 단지 우편함에 전단을 배포했다.
지역 신문 광고 게재
주변에 큰 마트 없는 단지에 전단지 200부 배포 (추가로 2,000부 인쇄)
CTA (Call-to-Action) 유선 전화번호 중심으로 광고
(2) 온라인 광고
아무리 온라인 쇼핑을 어려워하는 고객층이어도 주변에서 보듯이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은 대부분 사용한다고 가정했다. 그래서 카카오 스토리와 카카오톡 내 디스플레이 광고를 집행했고, 광고 클릭 시 카카오톡 플러스친구로 연결되도록 했다.
카카오 스토리 & 카카오톡 디스플레이 광고
6가지 마케팅 소구 포인트 메시지 조합 A/B 테스트
주 타깃 65세 이상, CTA는 카카오톡 플러스 친구 프로필로 랜딩
(마케팅 실행 전체 내용이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테스트 결과는 노출량이나 광고 반응률 등은 역시 내가 예상했던 것과 거의 비슷하게 흘러갔지만, 광고를 하는 궁극적인 목표로서의 최종 결과값인 '구매 전환' 결과는 완전히 실망스러웠다.
- 온오프라인 합계 총 64,611회 광고 노출
- 오프라인 광고 반응: 최종 전화 문의 6건으로 유입률 0.02%
- 온라인 광고 반응: 광고 클릭률 1.2%, 카카오톡 플러스친구 최종 방문 유입 120명 내외로 유입률 0.4%
- 최종 구매 전환율: 0%!!!
특히 오프라인 광고의 반응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 충격적이었다. 사실 전화가 온 시점이 이미 실망스러운 온라인 광고 분석이 끝난 후의 뒤늦은 시점이라 콜백을 하지 않긴 했다. 프린트 및 배송 리드타임을 감안하여 광고 집행 중간에 이미 전단지 2,000부를 추가로 찍었지만, 택배가 도착하기도 전에 결과를 보고 나니 배포할 필요조차 없어져버렸다. 온라인 광고도 클릭은 적지 않았지만, 실제 구매 여정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디테일한 결과와 분석 전체 내용이 궁금하다면 여기에서 상세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이 실험의 가장 큰 교훈은 '어쩌면 내가 해결하려 했던 문제 자체가, 실제로는 타깃들에게 큰 문제로 인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나는 ‘어르신들이 기존 장보기 활동은 불편하고, 온라인 쇼핑은 어렵다고 생각할 것’이라고 가정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정작 그분들에게 장보기는 일상의 일부이자, 나름의 즐거움의 영역일 수 있었다. 시장이나 마트에 가는 것이 때로 힘들 수도 있지만, 이를 굳이 외주까지 줄 정도의 ‘성가신 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광고를 돌리고 마케팅을 하기 전에, 고객 인터뷰나 사전 설문을 통해 ‘이 문제가 정말 해결이 필요한 문제인지’ 검증하는데 투자를 더 했다면 어쩌면 불필요한 뒤의 마켓 테스트까지 가지 않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디지털 마케팅에서 잔뼈가 굵은 '나'에게는 고객 인터뷰를 구성하고 한 명 한 명 진행하는 것보다, 빠르게 광고 시안을 만들고 대중을 대상으로 광고를 돌려보는 것이 훨씬 더 쉬운 일이기도 했고, 더 넓은 표본에 기반한, 보다 신뢰할만한 객관적인 결과값을 얻는 방법이었다. 즉, 시장 니즈와 수요 파악 자체를 광고의 방법으로 싸고 빠르게 검증했다고도 볼 수 있다.
결국 나는 총 13만 원 남짓한 돈을 투자해서 (오프라인 6.6만, 온라인 4만, 휴대폰 번호 추가 개통 2.5만) 한 달 만에 내가 생각만 하고 있던 하나의 사업에 대해 기획부터 수요 및 광고 테스트를 끝내고, 추가 투자 없이 빠르게 접는 것으로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당연히 첫 술부터 배부를 것이라 생각하지 않았다. 애초의 목표였던 ‘빠른 검증과 빠른 학습’의 경험치를 한 단계 올렸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길을 한 번 내어 놓았으니 다음번 테스트에 필요한 시간과 에너지는 훨씬 적게 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