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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일하는 삶

남의 일 vs 나의 일을 하는 것 사이

이런저런 고민의 흔적들

by 투명물고기

1. 내 일을 할 사람


나는 언젠가는 '나의 일'을 할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한다는 것'은 확정인데 늘 따라다니고 있는 질문은 '언제'와 '무엇'이냐의 문제일 뿐이다. 나의 일을 하고 싶은 가장 큰 이유는 일반적으로 말하는 '빨리 큰돈 벌어서 더 이상 일하지 않는 은퇴'하고 싶은 것과는 정반대로, '일을 최대한 오래 (가급적 평생) 하면서 사회의 일환으로서의 역할을 하면서 보람을 느끼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타고나길 기본적으로 게으름을 피우기보다는 조금이라도 생산적인 일을 하는 것을 훨씬 더 선호한다. (물론, 생산성은 관점에 따라 몹시 주관적인 개념일 것이다.) 그래서 한 아이를 오롯이 잘 키워내는 것도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아이는 적당히 내버려 둬도 알아서 주체적으로 잘 클 것이라 믿고, 아이와 함께 내 일도 동시에 키워나갈 수도 있다면 당연히 나는 고민 없이 후자를 선택하는 사람이다.


2. 내 일을 해야 할 이유


피고용인으로서 남의 일을 하는 것은 언제가 되었든 분명한 데드라인이 존재하고, 그 데드라인은 대체적으로 내가 아닌 남에 의해서 결정된다. 그래서 내가 일하고 싶은 만큼 일하려면 남 아닌 나의 일을 하는 방법밖에 없다는 생각이다. (물론, 원하는 것 대비 능력이 부족하면 그 둘 어떤 경우에도 통제권은 내가 가질 수 없을 가능성도 매우 크다.)


‘유효기간 결정권’과 ‘평일 시간의 통제권’을 내어준 반대급부로 일정 기간 동안 안정적인 소득이 따박따박 들어온다는 것은 분명히 큰 메리트이긴 하다. 특히나 인생에서 그 무엇보다 '안정'과 '예측가능한 수입'이 몹시 중요한 시기에는 더 큰 장점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적으로 나는 그런 것에 큰 가치를 두는 사람이 아니기에 공무원과 같은 옵션은 애초에 인생에서 제외했던 것이 아닌가? 그런 가치에 초점을 맞춘 삶이라면 내가 애초에 배제했던 옵션의 삶과 얼마나 다른 것인가?


3. 금전적인 계산, 향후 예상 수입


내가 말하는 일이 평생 돈을 벌어도 되지 않는 상황에서 무료 봉사를 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금전적인 계산은 떼어놓을 수 없는 부분이다. 해외 MBA를 준비할 때에 조금 준비하다 포기를 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포도 우화의 여우처럼 하는 이야기가 있다. "ROI가 안 나온다." 학비에 들어간 돈, 공부를 하는 동안 벌지 못할 돈을 생각하면 투자 대비 효율이 안 나온다는 것이다. 하지만 나의 계산으로는 인더스트리를 바꾸고 업무를 바꿈으로 해서 연봉 상승분으로 몇 년 안 가서 이미 투자 이상으로 회수하였고, 이후 한 번 더 점프를 하면서 인생 그 어떤 투자 이상의 효율을 보였다.


10년이 지난 이제는 연봉은 맞춰 주기 어렵겠다고 말하는 헤드헌터들이 더 많아졌을 정도로 몸값이 올랐는데, 달리 말하면 피고용인으로서는 더 이상 연봉이 떨어질 가능성이 오를 가능성보다 더 높다는 것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큰 가치는 '성장'인데, 과연 이것이 성장하는 방향인 것인가? 당연히 올라갈수록 시간과 에너지는 더 많이 필요할 텐데 시급으로 치면 몸값이 점점 낮아지는 꼴일 것이다. 그리고 이미 과표구간이 올라간 이상 더 벌어도 손에 쥐는 것은 차이가 점점 없어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했다.


4. 시간적인 계산, 같은 시간의 가치


매일매일 커가는 아이, 그리고 하루가 다르게 늙어가는 부모님들을 보면서 시간이 빠르게 가고 있음을 매순간 느끼고 있다. 혹시 내게 시간이 아무리 많이 남았다고 한들 아이의 다섯 살, 그리고 부모님의 70대와 같은 시간은 다시 오지 않는 정말 유한한 시간이다. 최근에 나와 비슷한 또래 페이스북 일촌 한 분은 열정적으로 건강히 살고 있다가 3개월 전 말기 뇌종양 진단을 받고 그 사이 온갖 항암치료, 수술 등을 하면서 오른쪽 전면 마비가 왔다는 소식을 전하기도 하였다. 우리는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인지 아무도 모른다. 우리가 만일 사실은 모두 시한부 인생과 다름없다는 것을 알게 되어도 쓸데없는 정치질, 아무도 읽지 않을 보고서 작성, 잠시 발표할 장표의 beautification에 그렇게 많은 인생을 할애할 것인가?


내가 '남의 회사'에 출근을 하지 않음으로 아끼는 시간을 한 번 계산해 보았다. 매일 화장 등의 준비 포함해서 왕복 2시간, 퇴사 이후 즉시 의미 없어질 90%의 인간관계들과의 점심 및 중간중간 잡담 시간 1시간 반, 지나고 보면 아무 필요도 없었고 업무 진행에 전혀 도움도 안 되는 이메일, 메신저 등의 커뮤니케이션 시간 2시간으로 최소한 5시간 반, 즉 평일 하루 깨어있는 16시간의 34%가 되는 시간이다. 이 시간이 전부가 아니다. 출근을 위해 시즌마다 옷, 화장품, 신발 등을 쇼핑해야 하는 시간, 그리고 뻣뻣해진 뒷목을 풀어주기 위한 주기적인 마사지, 도수치료 등에 물리적인 시간이 추가로 들어간다. 결코 적은 시간이 아니다. 이런 시간들을 차라리 정말 의미 있는 비즈니스 활동으로 꽉꽉 채우면 훨씬 더 생산적이지 않을까?


5. 그럼에도 내 일을 바로 시작하지 못했던 이유


사실 '내 일'은 언젠가는 어차피 할 일이었기 때문에 꼭 지금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했다. 애초의 개인 욕심 혹은 야망으로 커리어적으로 한 단계 정도 더 밟아서 C레벨을 달아보고 그 이후에 시작해도 늦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도 있다. 실제로 그런 기회들이 지난 몇 달간 계속 손끝에서 거의 잡힐 뻔하다가 날아간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계속 그런 잡힐지 아닐지도 모르는 나비들을 쫓으면서 앞으로도 같은 시간을 더 낭비할 것인가?


만일 지난 몇 달간을 차라리 그런 데에 에너지를 낭비하지 않고 바로 무언가를 시작했더라면 지금 내 손에는 무엇이 있을까를 생각해 본다. 별 대단한 게 여전히 없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실패라도 했다면 그 경험치는 오롯이 내 것이 아닌가? 사업은 무조건 많이 실패해 본 놈이 더 잘할 수밖에 없는 것이라는데. 남은 반백년동안 어차피 내 것을 할 사람이라면 그전에 어디까지 갔다 온 것인지가 중요할까? 아니면 차라리 조금이라도 더 빨리 시작했는지가 더 중요할까?


6. 내가 찾은 롤모델, 북극성


믿을 수 없게도 5년 정도만 지나면 내가 벌써 한국 나이로 반 백이 되는 나이가 된다. 5년이면 내가 롤모델로 삼고 있는 '히어로 코스메틱스'가 무에서 시작해서 6 억 달러 이상의 밸류로 대기업에 매각된 시간이고, 또 다른 북극성인 '동구밭'이 발달 장애인 고용을 목적으로 한 비즈니스 모델로 연간 100억 원 이상 안정된 매출을 입증한 시간이다.


어쩌면 그들은 정말 나와는 DNA가 남다른 '타고난' 사람들이라서 성공한 것일까? 그동안 여러 사업모델들을 연구하다가 알게 된 히어로 코스메틱스의 창립자는 사실 나와 많은 비슷한 경로를 거치게 된 사람이라는 것이 고무적이었다. 개인적으로 알지는 못하지만 같은 MBA 학교 선배이기도 한 그녀도 평생 일반 대기업 직장인 마케터 커리어였고, 심지어 나보다 먼저 같은 회사에서 일했던 적이 있고, 그곳에서 똑같이 "여긴 공산당 같다"는 평가를 내린 적이 있는, 큰 기업에서의 갑갑함도 느꼈던 자유 영혼이었다. 어쩌면 성공한 사업가라는 스테레오타입 역시 결과론적으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이야기일 지도 모른다.


결론적으로 나는, 만일 내가 피고용인으로서 원래 원하던 타이틀까지 찍지 못하고 바로 내 것을 하게 되더라도 크게 미련을 갖지는 않기로 했다. 내 인생에서 수많은 실패들이 있었는데, 늘 돌이켜보면 꼭 필요한 시간이었고 다 이유가 있었다. 그래서 그런 경로로 가게 된다고 해도 분명히 이유가 있기 때문이라고 믿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더 나았던 것으로 만들어 내는 것'이 사실 나의 주특기이다.)


그렇게 바로 나의 아이템을 시작하기로 했고, 혹시라도 중간에 정말 아까울 자리로 연락이 온다면 나의 추후 아이템에 도움이 될만한 경우에만 가능성을 보기로 할 것이다. 머릿속을 정리했으니 이제는 이미 첫 삽을 떠 둔 나의 아이템에 집중하는 시간을 가지도록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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