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템 결정하기
요즘 '나의 것'에 대한 고민을 진지하게 해 나가면서 아이템을 구체화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가장 이상적인 경우는 직장을 다니는 중 사이드로 짬짬이 이것저것 테스트 해보면서 특정 아이템에 어느 정도의 확신을 가지고 나와서 바로 창업하는 케이스가 많은 것 같다. 하지만 나의 직종과 포지션은 개인적으로 할애되어야 하는 시간조차 업무를 가득 채우고도 모자랐기 때문에 그것이 애당초 불가능했고, 인생에서 생각지 않은 타임라인에 집중적으로 고민을 하려 하니 뭔가 뜬 구름 속에서 복작거리는데 진척이 팍팍되는 느낌이 잘 들지 않는다.
그래서, 글을 쓴다.
평생 월급쟁이 직장 생활을 하다가 새로운 것을 하려면 옵션이 너무 없거나 반대로 너무 많은 것 같아서 막상 무엇을 해야 할지 잘 모른다. 대체적으로 대기업/글로벌 기업 규모의 팀장 이상 급의 시니어까지 하고 나오는 경우, 본인의 기존 전문성을 이어갈 수 있는 업종을 고르다 보니 대체적으로 컨설팅, 강연 등의 서비스 업종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되는 것 같다. 나 역시 상대적으로 가장 연속성 있는 직업을 고르라고 한다면 그쪽에 가까울 것이나, 나는 서비스업을 메인으로 하고 싶은 사람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 이유는, 강연과 컨설팅은 업의 특성상 끝까지 결과를 책임지기보다는 일회 혹은 다회성의 '제안' 정도로 그치는 일이라서 내게 뭔가 남아서 쌓인다는 느낌이 들지 않을 것 같았다. 아무리 제안 내용이 좋았어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고, 혹 잘된 결과가 있더라도 그것에 대한 기여분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을지도 명확하지가 않을 것 같다. 그러기에 나는 뭔가 실체가 있고 오롯이 내가 한만큼의 결과를 끝까지 볼 수 있는 일이 더 맞을 것 같다. 그리고, 꼭 내가 노동력을 매번 투여하지 않아도 어느 정도 시스템을 갖춰놓은 후에는 충분히 위임이 가능하고, 전 세계 어디서든 확장성이 있었으면 좋겠다. 또, 아무리 AI와 신기술이 좋다지만 세상에는 아직도 덜 써먹은 적정 기술들이 충만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서비스업보다는 브랜드 제조업으로 마음이 기울었다.
내가 늘 염두에 두고 있는 세상에 기여하고 싶은 세 가지 문제에 대해서 글을 쓴 적이 있다. 1) 환경 2) 코리아 디스카운트 3) 디지털 격차 문제인데, 일단 연초에 3번 디지털 격차 문제에 대해서 퀵한 테스트를 해본 결과 이 문제는 내가 지금 해결하기는 어려운 문제라 판단했고, 이제는 환경과 코리아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있는 중이다. 특히나 환경은 사실 인간의 건강과 너무도 밀접하게 연결이 되어있어서, 그 둘은 세트와도 같다고 생각된다. 환경에 안 좋은 것이 인간에게 좋을 리가 없기 때문에, 환경 호르몬과 같은 것들은 모두 결국 인간에게 돌아온 결과라고 생각된다. 또한 아직도 충분히 그 가치를 인정받지 못한 한국의 것들을 더 널리 알리고픈 마음도 여전하다.
환경적으로만 본다면 최대한 무엇이든 제조를 안 하고 최대한 소비를 덜 하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이미 판도라의 상자를 연 인류의 삶에 거의 불가능한 일이 되어버린 것 같고, 이왕 써야 하는 것이라면 최대한 환경을 덜 오염시키고, 인간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방향으로 소비하게 할 수는 없을까? 매일 써야만 하는 세제만이라도 고체로 바꿀 수만 있다면 그에 상응하는 플라스틱 병의 소비가 줄어들 테고, 특히 직접 섭취하게 되는 주방 세제에 녹아 있는 미세플라스틱 흡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게다가 합성 세제는 환경도 오염시키고, 직접 섭취하게 되면 당연히 건강에도 해로우니 천연으로 만들어 널리 퍼트리자. 이런 생각으로 한동안 고체 주방 세제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였다. 여러 가지 종류를 사서 써보기도 하고, 직접 만들어보기도 했다.
고체 주방 세제뿐 아니라 고체 비누, 샴푸, 컨디셔너로 싹 바꿔서 살아보니 제품 자체가 가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액체 세제의 고체화가 궁극적으로 확산되는데 한계가 있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생각해 보면 나도 예전부터 반복적으로 겪었던 문제인데, 고체로 넘어왔다가 늘 비누가 무르고 그 주변 환경이 지저분해지는 것을 참지 못하면 그다음에는 다시 액체 세제로 넘어오게 되는 수순이었다. 그래서 온갖 종류의 비누 케이스 테스트 역시 시도해 보았다. 플라스틱, 규조토, 스테인리스 등의 여러 소재부터 비누망, 도자기 접시, 링, 컵, 꽂이, 수세미 등 다양한 종류를 다 테스트해 보았지만 근원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은 구글에도 아마존에도, 우리 집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챗GPT와 상의해서 그나마 디자인과 기능적으로 베스트라 뽑았던 안은 오히려 완전 초반에 직관적으로 만들었던 버전이었다.
그러다 보니 이미 설거지 비누 제조사는 많고, 궁극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비누'보다는 '케이스' 혹은 '스탠드' 쪽으로 초점이 바뀌고 있었다. 그런데 이 부분은 어떤 방식으로도 애초에 ‘짓무르는 비누의 불편함’이라는 문제가 완벽하게 해결되지는 않는 데다가, 디자인적으로 개인의 취향에 크게 좌우되며, 심지어 비즈니스적으로는 더 큰 문제가 있는 것이 ‘재구매를 기대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이었다. 특히나 친환경적인 소재인 세라믹이나 스텐과 같은 재질로 제조를 하면 재구매가 거의 일어나지 않아야 정상이었다. 아예 고체 세제가 메인이고 서브로 도구를 판매하게 된다고 해도 둘의 소재가 너무 달라서 초기 일인 사업자가 시작하기엔 좋은 방향이 아니었다. 내가 북극성으로 생각하는 히어로 코스매틱스도 여드름 패치 하나로만 아마존을 제패할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그 패치는 한국에서 제조되어 미국으로 갈 동안 최소한의 부피와 무게로 배송 물류비가 그야말로 최저였다.
제조 비즈니스에서 중요한 것 두 개를 뽑으라고 한다면 나는 마진율과 재구매율이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규모의 경제를 달성할 정도로 박리다매의 사업을 할 것이 아니라면, 마진율을 중요하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 꼭 명품 정도의 고가의 제품이 아니더라도 가격에서 원가, 그리고 물류 등의 비용은 적게 차지할수록 마진율이 올라갈 것이다. 그 기준으로 본다면 환경적인 가치를 제외한다면 비누 역시 좋은 아이템은 아니다. 기본적인 판매 가격도 높지 않고, 부피와 무게도 작다고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끊임없이 신규고객을 창출하는 것보다는 잘 맞는 고객이 계속 반복구매 하도록 하는 것이 당연히 비즈니스적으로 훨씬 더 효율적이다. 물론 모든 지표는 다 상대적인 것이지만.
아마도 친환경, 친건강적인 미션에서 출발을 하지 않고 애초에 철저히 비즈니스적인 관점에서 마진율과 재구매율에서부터 출발했더라면 비누와 같은 아이템에 고민을 할 리도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여전히 일상생활에서의 친환경과 친건강이 중요하다. 그래서 다음 넘어간 아이템은 디퓨저였다. 옥시 사태에서 보았듯이 생활 속 화학 제품을 직접 흡입하는 것이 얼마나 안 좋은 지를 알 수 있었는데, 정작 디퓨저는 라벨을 까보면 거의 다 건강을 해치는 화학물질 덩어리가 대부분이었다. 그것이 계속 체내에 쌓여서 어떤 안 좋은 영향을 주는 지도 잘 모른 채, 우리는 계속 굳이 구매하고 흡입한다. 특히나 차량과 같은 좁고 밀폐된 실내 공간에서의 흡입은 그 해악이 더 클 것이다. 이 영역에서 조금이라도 자연 친화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은 어떨까?
우리 시아버지는 월남전쟁 참전 후유증으로 봄 시즌만 되면 천식과도 같은 기침이 아주 심하시다. 그런데 장성의 숲에 편백 나무로 직접 지으신 별장에 가면 그나마 호흡기 질환이 훨씬 가라앉는다고 하시며 계절마다 피신을 가신다. 같은 냄새를 맡아도 어떤 냄새는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게 아니라 치유하는 힘이 있다. 바로 자연이 주는 힘이다. 실제로 우리나라에는 편백나무가 가득한 "치유의 숲"이라는 것이 장성을 포함한 몇 군데나 있다. 이 스토리와 향기를 팔아보는 것은 어떨까? 아직 아마존에는 천연 편백 향이 그리 많이 퍼져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아마 소비자들에게 익숙하지 않다는 리스크 역시 분명히 존재할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친건강에다 한국적인 아이템이라니, 나의 미션 측면에서는 이보다 더 잘 맞는 소재가 있을까?
자동차용 디퓨저로 시작하여 잘 될 경우 편백 소재의 확장을 가져가는 경우를 고민하고 있는데, 그러려면 우선 자동차 방향제가 성공해야 한다. 그런데 자동차 방향제는 실내 장식품과 같은 주관적인 오브제의 역할을 한다는 점 외에도 고려해야 할 몇 가지 기술적인 요인들이 있어서 고민을 하고 있다. 자동차의 실내는 주차 공간에 따라 얼마든지 온도가 올라갈 수 있어서 밀랍 왁스와 같은 일부 천연 소재를 사용하기에 한계가 있고, 대부분 용량이 작아서 계속 발향원 교체나 리필을 해야 하는 귀찮음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지속기간이 길어지려면 몸에 안 좋은 화학 물질이 안 들어갈 수가 없는데, 그 점을 충분히 설득력 있게 전달할 수 있을까? 그 외에도 제작에는 여러 가지 고려 사항들이 있어서 요즘은 계속 그런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제목처럼 이것은 한 사람이 무엇인가를 시작해 보겠다고 하는 여정의 기록이다. 모두들 본인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동기도, 진행하는 방법도 속도도 다 다르겠지만, 어떤 사람은 이렇게도 가고 있다는 것을 누군가는 언젠가 참고할 일도 있겠지. 그 과정의 끝에는 뭐가 있을지 나도 모르겠다. 하지만 시작이 없다면 끝도 없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그렇게 나는 이미 어딘가로 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