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 첫 사업 맨땅에 헤딩하는 여정의 기록
망한 치킨집의 밀도가 가장 높은 곳이 수원이라는 우스갯소리가 한 때 있었다. 수원에 있는 삼성 본사에서 고급 인력으로 높은 연봉을 받으며 맨날 야근하면서 다른 인생을 생각해 볼 겨를도 없는 삶만 살다가, 갑자기 어느 날 목돈의 퇴직금을 들고 회사 밖에 나와서 자영업을 하려고 보니 가장 만만해 보이는 치킨집을 열었다가 다들 망하는 절차를 밟는다는 것이다. (아마 요즘은 치킨이 커피로 바뀌지 않았나 싶다.)
하긴 반도체 정밀한 공장에서 아무리 정교한 생산 일을 잘 운영했거나, 무수한 서류더미를 그 누구보다 빠르게 검토하고 설득력 있는 보고서를 아무리 잘 써낼 줄 아는 직장인이었다고 한들, 그 스킬들이 정교하게 닭을 잘 튀기거나, 일반 대중 상대로 닭을 잘 파는 데 써먹기 용이한 기술들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어쩌면 대기업 직장이라는 테두리에서는 수십 년의 경력자였을 지라도, 치킨집 업계에서는 한갓 신입사원보다 못한 처지였을 것이다.
나 역시 십수 년의 화려하다는 커리어를 뒤로하고 새로이 제로에서 뭔가를 짓겠다고 시작하려 하니 비슷한 느낌이다. 대기업에서 하는 일이란 이미 인지도는 충분한 상태에서 약간 새로운 무언가를 출시하거나 기존의 것을 더 팔아보겠다고 하는, 기존의 쌓인 브랜드 기반 위의 확장정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타트업의 가장 큰 챌린지는 '인지도' 그 자체를 만들어가는 것이고, 그와 동시에 '존재의 이유'부터 세상에 설득을 하는 일이 업무의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또한, 대기업에서 하는 일이라는 것은 거대한 조직의 아주 일부분을 주로 담당하는 것이라, 내가 아무리 마케팅 커리어에서 많은 업무를 돌면서 거의 다 겪어 봤다고 한들 회사의 전체 업무 기준에서 봤을 때는 결코 많은 부분이라고 할 수가 없다. 심지어 마케팅 업무 자체를 수행함에 있어서도, 대부분 끝단의 실행은 '대행사'라는 조직의 손을 빌려서 완성을 했기 때문에, 실상 직접적으로 당장 써먹을 수 있는 경험이 얼마나 될까 싶기도 하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렇게 AI의 도움을 쉽게 받을 수 있는 세기의 타이밍에 내 커리어의 전환을 꿈꾸게 된 것이다. 내가 직접 디자인을 하거나 모델 촬영을 해본 적은 없었지만, 이제는 대행사 대신 AI를 조금 부리면 충분히 해낼 수 있게 되었다. 그래도 여태 해온 것들이 있어서 AI가 대신 만들어오거나 분석해 온 자료들의 평가나 비판, 판단을 하는 것은 여전히 나의 전문이니 큰 조직에서 있을 때보다 업무의 퀄리티가 굳이 낮아질 이유도 없게 되었다.
나에게는 이미 기본적으로 세명의 풀타임 팀원이 있다고 생각을 한다. 같은 내용이더라도 꼭 ChatGPT, Claude, Perplexity 이 셋에게 교차 검증을 하는 것은 기본이다. 오늘도 아마존 판매 데이터를 뽑은 뒤, 내 기준으로 선별한 일부의 정제 데이터를 가지고 셋에게 어떤 시장의 진입을 추천하는지에 대해서 의견을 물어보니 각각 다른 이유로 다른 것들을 추천한다. 인간 세계를 대충만 아는 신입, 중고 신입, 매니저 이렇게 셋을 모아놓은 팀이라 생각하고 내가 잘 리드해야 한다. 그리고 어쨌거나 결국 최종적인 판단과 선택은 인간의 몫이다. 큰 조직에서 리더가 하는 일이 바로 그런 것이다.
직접 제조자가 되려고 이런저런 것들을 알아보니, 현대 기술은 이미 너무도 표준화되고 발전되어 있어서 공산품인 이상 엄청나게 제품의 퀄리티가 차이가 나는 분야는 거의 없는 것 같다. 그것이 건강기능 식품이든, 화장품이든, 일상 생활용품이든 대부분의 분야가 다 마찬가지이다. 결국 프리미엄 한 이미지를 위한 마케팅/브랜딩에 투자를 많이 하거나, 아예 비슷하니 가격으로 승부를 보기 위해서 원가 경쟁을 하는 업체들이 시장의 지배자가 된다.
결국은 이래저래 쓸 수 있는 돈이 많거나, 대량으로 생산/유통을 할 수 있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는 큰 업체들이 계속 승률이 높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신생 브랜드들이 떠오를 수 있는 방법은 차별화된 제형, 디자인으로 신선함을 주거나, 하나하나 맞추기에는 단가가 안 나와 대기업이 '굳이' 손을 대지는 않는 니치 한 시장을 발굴하는 것이다. 최근 몇년래 화장품계에서 떴다 싶은 휩드, 아렌시아와 같은 업체들이 독특한 질감을 가지고 단기간에 부상한 것이 단적인 예라고 생각한다.
시중에 있는 향수/디퓨저/방향제 시장은 건강에 득이 될 리가 없는 인공적인 합성향 위주의 제품이 지배적이다. 아이를 임신하기 위해 이것저것 알아보던 때에 제일 먼저 끊어야 하는 것이 향수라는 것이 당시 충격이었다. 미국에서는 팝콘 공장에서 '팝콘향'이라는 식품 첨가물 등급의 인공향 테스트를 수년간 직접 담당하던 사람의 폐가 완전히 망가져서 불구 수준이 되었다는 것도 보았다. 이렇듯 우리는 '가짜 향'을 통해 잠시 기분이 좋아지는 듯한 착각을 위해서 나도 모르게 건강을 희생하고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거나 알게 되어도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것 같다.
마케팅적으로 조금 더 생각해 보면, 이런 향수/디퓨저와 같은 품목은 필수재라기보다는 사치재에 가깝기 때문에 감성적 소비가 주를 이루게 되고, 그래서 이성적으로 건강의 위험성을 따지고 드는 것 자체가 애초에 크게 효과적으로 전달되기가 어렵다. 최근 제조사들과 통화, 미팅하면서 조사를 하고 있는데, 천연으로 제작할 경우 원가가 최소 50%에서 많게는 수십 배까지 비싸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 니치 한 시장은 애초에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에 형성되기가 매우 어려운 것이었다. 결국 내가 설정한 '건강과 친환경'이라는 미션을 포기하지 않는 한, 나의 브랜드는 태생적으로 카테고리에서 낮은 가격으로 승부를 보는 제품이 될 수가 없게 되었다.
어째서 비싼 브랜드는 전부 오히려 몸에 더 해로운 것일까? 화해에서 화장품을 조금만 검색해 봐도, 샤넬, 디올 등 명품 브랜드일수록 몸에 해로운 성분이 더 잔뜩 포함되어 있다. 향수/디퓨저 시장 역시 마찬가지일 것이라 생각한다. 시장 조사 차 백화점 1층을 한 바퀴 도는데 너무 향들이 요란하고 인위적이라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브랜드도 좋으면서 성분까지 좋은 제품은 정말 만들기 어려운 것일까? 하긴 둘 다 하기에는 마케팅비와 원가가 둘 다 훨씬 더 많이 들 테니, 그중에서 고르라면 결국 당장 감성적 판매에 직접 도움이 되는 마케팅비에 투자를 한 것일 것 같긴 하다.
내가 닿고자 하는 타깃은 남들에게 보이기 위한 소비보다는 자신 내면의 행복을 다지는 데에 관심이 더 크고,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에 가치를 느끼는 나와 비슷한 결의 사람들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하늘을 볼 줄 알고, 길 가다 예쁜 꽃을 만나면 코를 대고 향기를 한 번쯤 맡으며 계절의 아름다움을 느끼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이 집과 차와 같은 공간에서도 진짜 자연의 향을 누릴 수 있도록 하면 어떨까? 그런데 과연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나는 이런 사람들의 숫자는 그래도 자신을 위해 꽃을 구독할만한 사람들의 숫자 정도는 될 것이라고 본다. 꾸까의 월 구독자는 4만 명, 월 방문자수는 3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국내가 이 정도니 생각보다 작은 시장은 아닐지도 모른다. 앞으로는 어떻게 그들에게 효과적으로 닿느냐, 어떻게 가치를 전달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