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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바미 Jun 08. 2019

기록의 욕구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한 이유

 사춘기 시절에는 친구랑 싸우거나 속상한 일이 있을 때마다 일기를 썼다. 그때의 일기장은 표출하지 못한 감정의 쓰레기통이었다. 감정의 흔적들은 얼마간 방치되었다가 다시 일기장을 들쳐보고 스스로 수치스러워하며 쓰인 페이지를 뜯어 내곤 했다.

 

 무언가 기록하는 것은 다른 이에게 보일 것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고 누군가 그랬다. 그게 일기라도 말이다. 하지만 매번 쓰고 뜯어버리기를 반복하는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것만 같았다.

 스스로를 내보이는 것이 항상 두려웠던 나였다. 진짜 나를 내보이는 것이 마치 나의 치부를 드러내는 것처럼 부끄러웠다. 어째서 스스로를 그토록 외면했을까?

 

  일기장을 뜯어낼 때마다 무슨 생각을 했었는지 기억을 더듬어보면 멋이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기장엔 대부분  내가 멋없을 때의 상황만 쓰여있었기 때문에 혹여라도 누군가 볼까 봐 뜯어버렸던 것이다.

 나의 멋진 면만 사람들이 봐주길 원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를수록 나는 멋질 때 보다 멋없을 때가 더 많아졌다. 멋있는 인생은 아무나 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그랬던 내가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고 스스의 기록을 남긴다는 것이 아이러니 하지만 매번 뜯어낸 일기장에는 기록의 욕구와 표현의 욕구가 숨어있었는지 모르겠다.




브런치에 작가 신청을 하다.



 오랫동안 손을 놓고 있었던 그림을 다시 시작하고 가끔 반려묘 사진만 업로드하던 인스타그램에 그림을 올리기 시작했다. 딱히 지인들에게 사생활을 오픈하기 싫어서 연락처를 차단하고 새로 만든 계정이었다.

 sns를 통해 나처럼 개인적으로 작업을 하는 사람들의 작업들을 많이 볼 수 있었고 새로운 정보들도 얻을 수 있었는데 브런치도 그렇게 알게 된 정보중 하나였다.


 페이스북 트위터 유저들이 급상승하고 sns의 단점이 부각되었던 시기가 있었다. 뉴스나 생활정보 프로그램에서 이러한 문제를 다루기도 했는데 요점은 인터넷상의 관계 맺기에 대한 허무함,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면서 불안과 우울함을 유발한다는 것이다.

 그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소셜 네트워크가 발달한 오늘날을 사는 것에 요즘은 감사하는 중이다.


 스스로를 내보이는 것을 두려워하는 내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창작물을 선보일 수 있었던 건 내가 모르는 불특정 다수, 나를 모르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브런치에도 어설픈 기록을 남길 수 있었던 것도 같은 이유이다.

 처음 브런치 작가를 신청할 땐 뭐라도 해보고 싶어서였다. 오늘을 살아가는 나는 내일이 되면 과거의 내가 되어 버리기에 오늘의 나를 남기고 싶었다.

 각종 청년지원 프로그램을 신청할 수 있는 나이가 만 34세라는데 (그 기준을 누가 정한 건지 모르겠지만) 올해 생일이 지나면 청년의 기준을 벗어나는 것만 같아 올해 생일을  페이지를 뜯어낸 흔적만 남은 일기장만 가지고 맞이하고 싶지는 않았다.




기록의 욕구



 글을 쓰려고 하면 머리 위에 까맣고 묵직한 것이 짓누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글을 즐겨 쓰지도 잘 쓰지도 못하기에 어쩌면 당연하다.

 처음 글을 발행할 땐 심장이 두근거렸다. 설렘보단 두려움이었다. 자신을 드러내는 글쓰기는 나를 한 겹 한 겹 벗겨내는 행위 같다. 수없이 벗겨내고 난 후에 뭐가 남아있을지는 모르겠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일주일에 한 번은 발행하려고 한다. 점점 발행 날짜가 미뤄지기는 하지만 주말은 넘기 않는 것이 목표이다. 그리 대단하지도 길지도 않은 글을 써내리는 것이 나에게는 큰 숙제 같다.



 누구도 관심 없을 것 같던 글이 누군가에게 읽혔다. sns가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누군가는 공감도 해주었다. 감사하고 신기한 경험이었다.

 처음 목표했던 일 년 동안의 기록을 달성한 나를 가끔 상상해본다. 지금 보다 조금은 성장해 있을 것이다. 자기만족뿐 일지 모르지만 자기만족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몸소 깨닫는 요즘이다.

 평범한 하루하루가 내일의 나를 만들어가기에 내일의 나는 조금 더 나아져 있길 바라면서 오늘도 평범한 문장을 정성껏 써 내려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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