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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부요곰 Jun 19. 2019

영어공부를 위해 집을 팔다

토익 320점 받던 나의 영어 극복기

스물여섯, 토익 320점. 인생이 망했다고 생각했다.


토익점수가 나오지 않으면 대학교 졸업조차 시켜주지 않을 정도로 영어의 중요성이 강조되던 때, 나는 취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때 나의 영어에 대한 스트레스는 어마어마했다. 영어 때문에 수능 점수도 타격을 받았는데, 대학교 졸업과 취직까지도 영어가 발목을 잡았다. 휴학을 하고 영어공부에 올인 했지만, 토익점수는 겨우 320점. 그냥 찍어도 이것보단 잘 나온다고 하는, 말도 안 되는 점수를 가지고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것보다 더 열심히 해야 하는 건지, 내가 방식이 잘못된 건지, 아니면 언어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나란 인간은 평생 영어가 불가능한 건지조차도 알 수가 없었다. 앞이 보이지 않는 터널 속에서 방향 감각마저 잃고 헤매는 기분이었다. '내 인생은 어떻게 될까?' '내가 다른 것을 잘한다 해도 결국 영어를 못하면 빛을 발하지 못하게 되는 걸까?' 공부할수록 떨어지는 토익 점수를 보니 인생이 점점 우울해져 갔다.


영어공부, 안 해본 방법이 없다. 포기해야 하나?


시험이 아닌 영어 그 자체의 실력이 늘면 영어 시험들도 쉬워질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영어라는 언어를 극복하기 위해 온갖 수단을 동원했다. 문제지를 풀고, 단어를 외우고, 개인 과외를 하고, 회화 학원, 원어민 어학원 등도 다녔다. 많은 돈과 시간을 투자했으나 결과는 좋지 않았다. 선생님이 설명해 주는 것들을 달달 외웠으나 이해되지 않았고, 외운 문장들로 대화를 했으나 그때뿐이었다. 시간이 지나자 공부한 것들이 손안의 모래처럼 흘러나가 버렸다. 문제를 풀 때도 단어만으로 지문 내용을 유추하며 푸는 수준이었으며, 문법 문제는 풀 엄두도 내지 못하고 항상 찍었다. 회화도, 시험도 전혀 늘지 않았다. 나에게 영어라는 존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대야 할지 모르는 막막한 대상이 되었다. 매일매일 받는 스트레스에 점점 더 신경이 날카로워졌으며 날 괴롭히는 영어에 대한 적개심도 커져만 갔다. 



| 집을 팔다.


내가 대학을 다니던 때 역시 취업난이 극심했다. 취직을 하기 위해서는 영어 점수가 반드시 필요했다. 토익이 최소 600점은 나와야 지원 자격을 얻을 수 있었고, 합격하기 위해서는 최소 800점이 넘어야 했다. 토익만이 아닌 오픽이나 토익 스피킹 같은 회화를 본다고 하는 회사도 있었으나 영어에 대해서는 모든 것이 젬병인 나에게는 상관이 없는 일이었다. 무언가 특출나지 않은 내가 영어 없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용접 기술을 배우든가, 공사장이나 공장 등을 전전하는 삶뿐이었다. 

마지막 시도 후에도 안 되면 용접기술을 배우자.


그렇게 마지막 다짐을 하고, 최후의 방법으로 어학연수를 택했다. 가장 비싸고 리스크가 큰 방법이었다. 집이 잘사는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부모님께서는 살던 집을 팔고 작은 집으로 이사를 하셔야 했다. 지방의 집값은 높지 않아서 추가로 대출도 받아야 했다. 다행히도 아버지께서는 계속 직장을 다니고 계셨고, 빚도 조금씩 갚아나가실 계획이었기에 길거리로 나앉을 수준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자식 공부시킨다고 그렇게 큰돈을 덜컥 투자하는 일이 보통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아서 미국으로 건너갔다.



| 3달 만에 극복한 영어, 한국 영어 교육에 분노하다.


돈 들여서 어학연수를 가니까 당연히 극복했겠지.

라고 생각하실 분들이 많을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다. 돈을 들였고, 어학연수를 왔고, 나는 영어를 극복했다. 하지만 내가 말하고 싶은 말은 "영어 정복을 위해서 반드시 어학연수를 와야 하느냐"라는 것이다.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제대로 된 교육을 만난다면-. 


미국 어학원에서 배운 영어는 굉장히 간단했다. 문법을 공부하긴 했지만 문법인지 인식도 못 하고 넘어갈 정도로 쉬웠다. 수업은 쉽게 익힌 문법을 연습하는데 집중되어 있었다. 연습은 시간이 걸리는 일이었지만, 원리를 배웠기에 어렵지 않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영어 노이로제가 있던 내가 즐기면서 공부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요인은 영어 공부의 '목적'이 한국 학원들과 달랐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는 영어의 주목적이 취업이나 졸업이었다. 즉 시험에 집중된 교육이 주를 이루었고, 따라서 수강생의 시험 점수가 높을수록 좋은 학원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미국에서 어학원들은 학생의 말하기 실력으로 평가받는다. 그래서 미국 어학원에서는 말하는 방법 그 자체에 집중하여 학생들이 말을 잘 하는데 신경을 쓴다. 말하는 것과 관련 없는 복잡한 문법은 제외되었다. 가르치는 것은 말하는데 쓰이는 기초 원리뿐이었다. 시험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에 맞고 틀리고도 중요하지 않았다. 의미 전달만 되면 다 맞는 말이었다. 정답을 강요하고 틀리면 빨간 줄이 그이는, 사람을 위축시키는 한국식 영어 교육과는 천지차이였다.


"영어"

말하기 위한 수단으로써, 말하는 도구로써,

가르쳐 주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이렇게까지 힘들진 않았을 텐데….


영어를 극복하고 난 후 느낀 감정은 행복이 아니라 분노였다. 기계 같은 한국식 영어에 대한 분노. 20년 넘게 힘들어하고 스트레스받으며 괴로운 시간을 보낸 것이 너무 억울해서 화가 정말 많이 났다. 영어를 언어로써, 말하기 위한 수단이자 도구로써 가르쳐 주는 사람을 단 한 명이라도 만났다면 내가 이렇게까지 힘들고 고통스럽지 않았을 텐데…. 영어를 가르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은데 왜 단 한 명도 제대로 가르치지 않는 걸까? 내가 만나지 못한 걸까? 잘 가르친다면 유명했을 텐데…? 왜 한국과 일본만 유난히 영어를 못할까? 여러 가지 생각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 어학연수와 영어 극복과 내가 깨달은 것들


누구나 아는 이야기지만, 어학연수를 간다고 해서 드라마틱한 변화가 있는 것은 아니다. 잘 들여다보면 어학원을 다니는 것을 제외하고는 한국의 삶과 크게 다를 게 없기 때문이다. 영어로 말을 하는 시간도 학원 친구나 원어민 선생님이 있는 수업에서 말하는 게 전부였다. 학원 밖에선 가게에서 물건 살 때 정도나 반복적으로 하게 되는 간단한 회화를 할 뿐이다. 


돌이켜 보면 미국이라는 장소가 그렇게 중요하진 않았다. 미국에 있든 한국에 있든 제일 중요한 핵심은 말하는 방법의 습득, 그리고 그것을 연습하는 일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말하는 방식을 이해시켜 주는 학원을 찾아야 한다. 시간적, 금전적 문제로 인해 혼자서 공부를 해야 한다면 스스로 그 원리를 깨우쳐야 한다.) 단순히 외우는 것이 아닌, 이해가 되어야 연습을 할 수 있고, 그 연습이 영어실력 향상에 도움이 되는 것이었다. 단어를 외우고, 발음을 고치고, 표현을 익히는 것들도 물론 중요하다. 그러나 그 이전에 말을 할 줄 알아야 이런 것들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아무리 노력해도 영어가 안 될 때, 영어를 말하는 원리를 이해하는 일을 가장 먼저 했어야 하는 것을…. 집안의 기둥뿌리를 뽑고, 이 머나먼 이만 리 타국에 와서야 겨우 깨달은 것이다.




| 영어 극복. 그 후의 인생

영어가 인생의 걸림돌에서 인생의 무기로 탈바꿈하다.


영어를 극복한 후의 내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어학원을 다니다 공부에 뜻을 두어 미국 주립 대학으로 진학했다. 영어가 해결되고 나자 다른 공부는 크게 문제가 되지 않았다. 다만 돈은 한동안 문제였었다. 학비 문제로 사립 대학교는 쳐다보지도 못했고, 주립대를 가야 했다. 그래도 한국보다 비싼 등록금과 생활비 때문에 부모님은 더 많은 빚을 내야 했다. 조기 졸업을 위해 밤낮으로 공부를 했으며 취직 스펙을 쌓기 위해서 여러 가지 대외 활동들로 삶을 가득 채웠다. 그 결과 학교를 졸업하기 전 해외 리크루팅을 나온 국내 대기업 S사에 취직을 했다. 그리고 취직 후, 해외 파견을 통해 번 돈으로 1년 만에 남아있던 빚을 청산했다. 인생에 있던 족쇄들이 다 떨어져 나가고, 인생에서 처음으로 자유로워진 기분이 들었다. 


입사 후 놀란 점 중 하나는 대기업에도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는 분들이 꽤 많다는 것이었다. 승진 점수를 위해 OPIC을 계속 보지만 성적이 안 나와 고생하시는 분들, 해외 출장이나 파견 시 의사소통 문제로 힘들어하거나 업무가 매끄럽지 못한 분들, 계약서 검토나 이메일 송부 같은 업무에서도 영어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 분들을 보았다. 국내 최고 대기업에 다니는 분들도 여전히 영어에 대한 고민을 품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분들이 영어를 외우며 시간과 돈, 에너지를 쏟고 있을 때, 상대적으로 영어가 편했던 나는 제2 외국어를 비롯한 자기발전에 시간과 열정을 쏟을 수 있었다. 



| 마무리하며


지금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내가 배웠던 방식으로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연봉과 타이틀을 포기하고 처음부터 시작한다는 것이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부모님과 지인들의 만류도 심했다. 직장을 다니면서 이 일을 병행하려 했지만 야근과 주말 출근이 많던 나로서는 두 가지를 해 낼 수가 없었다.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던 시점에서 영어를 극복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는 요청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영어에 대한, 잘못된 교육에 대한 복수심 때문인 것 같기도 하다. 나처럼 영어로 인해 인생의 시간과 돈, 에너지를 낭비하시는 분들이 더 이상 없도록 만들고 싶었다. 재미있게도, 수강하신 분들 중 꽤 많은 분들이 수업을 들은 후에 "이게 다야?", 혹은 "화가 난다."라고 말씀해 주신다. 내가 느꼈던 분노를 그분들도 느끼는 것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혼자 조금은 뿌듯해진다. 


왜냐하면 그분들은 더 이상 영어 때문에 힘들어하지 않아도 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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