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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Feb 09. 2024

날개

<이상 소설 전집>/이상/권영민 책임 편집/민음사/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를 아시오? 나는 유쾌하오. 이런 때 연애까지가 유쾌하오." 한국문학사에 길이 남을 유명한 문장으로 이상의 소설 <날개>는 시작한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 '나'는 천재이다(저 유명한 문장이 담겨 있는 <날개>의 머리글은 소설 본문과 구별된다. 따라서 여기서 '나'가 작가인 나인지 화자인 나인지는 불분명하다. 그러나 화자인 '나'로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고, 나아가 작가인 나의 정체성과 화자인 나의 정체성을 공유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어떤 천재인가? '나'는 논문도 많이 쓰고, '시'도 많이 썼다고 하는 것으로 보아 문학의 천재일 가능성이 높다. 그런데 현재 박제가 되어 있는 상태이다. '나'는 무기력증에 빠져 아무런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소설 속 화자('나')가 왜 그와 같은 박제 상태가 되어버렸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다소 심각한 정신적 위기 상태에 처해 있다. "나는 가장 게으른 동물처럼 게으른 것이 좋았다. 될 수만 있으면 이 무의미한 인간의 탈을 벗어 버리고도 싶었다. 나에게는 인간 사회가 스스러웠다. 생활이 스스러웠다. 모두가 서먹할 뿐이었다." (91쪽) '나'는 사회부적응자이고, 타인과 어울리지 못하고, 살아있는 것이 낯선 자이다. '나'에게는 삶 자체가 어색할 따름이다.


나아가 '나'는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자이다. "나는 거기 아무 데나 주저앉아서 내 자라 온 스물여섯 해를 회고하여 보았다. 몽롱한 기억 속에서는 이렇다는 아무 제목도 불그러져 나오지 않았다. 나는 또 나 자신에게 물어보았다. 너는 인생에 무슨 욕심이 있느냐고. 그러나 있다고도 없다고도, 그런 대답은 하기가 싫었다. 나는 거의 나 자신의 존재를 인식하기조차도 어려웠다."(114쪽) 자신의 지난 인생을 되돌이켜 보아도 뭔가 툭하고 걸리는 것이 없다. 기억할 만한 뚜렷한 사건도, 삶을 풍성하게 해주는 의미 있는 사건도 솟아 나오지 않는 것이다.


이 정신적 위기 상태, 삶의 교착 상태에 돌파구가 있을까. "육신이 흐느적흐느적하도록 피로했을 때만 정신이 은화처럼 맑소." 아내가 준 아달린(수면제. 그러나 '나'는 아내가 아스피린을 준 것인지 아달린을 준 것인지 확신하지 못한다.)을 한 달 가까이 먹고 낮이나 밤이나 잠에 취해 몽롱한 상태로 지내다가 '나'는 어느 날 갑자기 집을 뛰쳐나가 어느 산속 벤치에서 일주일을 내리 잠을 잔다. 수면제와 잠에 위해 육신은 무너져 내리도록 피곤했겠지만, '나'의 정신은 무척 맑았을 것이다. 은화처럼 맑은 정신. 거기에 돌파구가 있지 않았을까.


그 후 '나'는 얼빠진 사람처럼 아무 목적 없이 시내를 쏘다니다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 미스코시 백화점에 옥상에 올라가 있다. 옥상에서 내려다본 거리에는 사람들이 바글바글거린다. 좁은 어항에 갇혀 있는 금붕어 같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끈적끈적한 줄에 엉켜서 헤어나지들을 못한다.(114쪽)" 어둡고 침침한 거리 '회탁의 거리'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회심한다. 인간 사회도, 생활도, 모든 것이 서먹했던 '나'는 "피로와 공복 때문에 무너져 들어가는 몸뚱이를 끌고 그 회탁의 거리 속으로 섞여 들어가지 않는 수도 없다"(114쪽)고 생각한다.


'나'는, "온갖 유리와 강철과 대리석과 지폐와 잉크가 부글부글 끓고 수선을" 떠는 것 같은, "그야말로 현란을 극한 정오"에, "머릿속에서는 희망과 야심의 말소된 페이지가 딕셔너리 넘어가듯 번뜩"이면서, 불현듯 겨드랑이에 가려움을 느낀다. 박제가 되어버린 천재는 이제 다시 날아오를 준비를 한다. 그래서 '나'는 걷던 걸음을 멈추고 간절한 마음으로 이렇게 외쳐 보고 싶었던 것이다.


날개야 다시 돋아라. 
날자. 날자. 날자. 한 번만 더 날자꾸나. 
한 번만 더 날아 보자꾸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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