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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글쓰는 변호사 Feb 21. 2024

당신의 인생드라마는 무엇입니까

2024. 2. 18.

형 그리고 형의 친구들을 만난 자리에서 드라마 얘기를 하다가(왜 드라마 얘기가 나왔는지는 모르겠다.) 각자의 인생드라마를 언급하게 되었다. 누군가는 감우성, 손예진의 <연애시대>를, 누군가는 노희경 작가의 <우리들의 블루스>를, 아저씨들이라서 그랬겠지만, 이선균과 이지은의 <나의 아저씨>도 빠지지 않았다. 나는 <연애시대>는 아직 보지 않아서 모르겠고, <우리들의 블루스>는 나쁘지는 않았고, 이병헌의 연기는 빛이 났지만, 그 촌스러운 감성은 때때로 견디기가 힘들었다. <나의 아저씨>는 재미있게 보았고, 군데군데 울컥하기도 했고, 여운이 많이 남아서 좋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는데, 왜 좋았느냐고 자문해 보면 그 이유를 정확히 대답하기는 어렵다.


인생 영화, 인생 드라마, 인생 소설, 인생 음악, 인생 미술 등 주로 예술의 영역에서 '인생@@'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종종 받는다. 나름대로 영화, 드라마, 소설, 음악, 미술을 모두 즐기는 편인데도, 그 질문에 단 한 번도 속시원히 대답해 본 적은 없는 것 같다. 어쩐지 그 질문에 대해서는 단 한 작품만을 언급해야 할 것 같은데, 나는 도무지 다른 좋은 작품들을 버릴 자신이 없다. 그리고 내가 경험한 어떤 작품도 다른 모든 경쟁작을 제치고 우뚝 설만큼 모든 측면에서 완벽한 작품은 없었다. 가령 소설을 예로 들어보자. <데미안>을 인생 소설로 꼽기에는 무게감이 좀 떨어진다. <죄와 벌>은 어떤가. 어떤 면에서 보면, 다소 유치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드라마도 마찬가지다. <나의 아저씨>? 늙은 아저씨들의 판타지라고 볼 여지가 충분하다.


어떤 영화나 드라마, 소설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기억력의 한계도 물론 있겠지만) 특정 장면을 사랑한다. 그러니까 조금 엉성한 영화라고 하더라도, 재미있다가 끝으로 갈수록 늘어지는 드라마라고 하더라도, 중언부언 장광설을 늘어놓는 소설이라고 하더라도, 어떤 특정 장면 한두 개가 좋다면, 만족한다. 내가 사랑한 바로 그 장면에 대한 기억은 오래간다. 가령 <하얀 거탑>에서 장준혁이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에서 신문지를 거꾸로 들고 있는 장면이나 밤에 어머니가 홀로 계시는 집에 들어가지 못한(혹은 않은) 채 그 앞에서 눈물을 삼키는 장면을 어떻게 잊을 수 있겠는가. 그리고 어쩌면 특정한 한 장면 속에 작품 전체가 들어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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